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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100733
한자 全敬翊
영어공식명칭 Jeon Gyeongik
이칭/별칭 광익(光翼),장산(藏山)
분야 종교/유교
유형 인물/효자·열녀
지역 경상북도 경산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광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27년연표보기 - 전경익 출생
몰년 시기/일시 1893년연표보기 - 전경익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27년 - 『포창완의문』 간행
거주|이주지 경상도 경산현 - 경상북도 경산시
묘소|단소 광곡 - 경상북도 경산시
성격 효자
성별
본관 옥산(玉山)[경산(慶山)]

[정의]

조선 후기 경상북도 경산 출신의 효자.

[개설]

전경익(全敬翊)[1827~1893]은 아버지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였다. 이에 사림들이 전경익의 행적을 기리고자 『포창완의문(褒彰完議文)』을 간행하였다.

[가계]

전경익의 본관은 옥산(玉山)[경산(慶山)], 자는 광익(光翼), 호는 장산(藏山)이다. 아버지는 전인서(全仁瑞), 어머니는 조경헌(曺慶憲)의 딸 창녕 조씨(昌寧曺氏), 할아버지는 전광민(全光敏), 증조할아버지는 가선대부(嘉善大夫) 전봉기(全鳳岐)이며, 부인은 정기전(鄭基銓)의 딸 동래 정씨(東萊鄭氏)이다.

[활동 사항]

전경익은 천성이 순박하고 곧으며 효성이 지극하여, 부인 동래 정씨와 한 마음으로 부모를 섬겼다. 하루는 부창(浮脹)에 걸려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하던 아버지가 생치(生雉)를 먹고 싶다고 말하였다. 전경익은 뚜렷한 방도가 없어 산에 올라 울고 있었는데, 갑자기 수리 한 마리가 날라 와 잡은 꿩을 떨어뜨리고 갔다. 그 꿩을 취해 아버지에게 드리니 차도가 있었다.

이후 전경익은 아버지의 병이 재발하여 위독해지자, 손가락에서 피를 내어 아버지의 입에 넣어 드려 3년을 연명하게 하였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에는 3년간 머리를 빗거나 씻지 않은 채, 정성을 다해 시묘살이를 하였다. 훗날 전경익의 맏며느리 영천 황보씨(永川皇甫氏)도 이러한 집안의 효행(孝行) 이어 받아, 시부모에게 효성을 다했을 뿐만 아니라, 남편 전기상(全箕尙)이 세상을 떠난 후에도 재혼하지 않고 절개를 지켰다.

[묘소]

전경익의 묘소는 경산 지역의 광곡(廣谷)에 있다.

[상훈과 추모]

1925년 전경익의 효행을 기리고자 공부자성적도오륜행실중간소(孔夫子聖蹟圖五倫行實重刊所)에서 『포창완의문』을 간행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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