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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평동 위련대」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101702
한자 大坪洞-臺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경상북도 경산시 대평동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곽현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2002년 - 「대평동 위련대」 이용석으로부터 채록
수록|간행 시기/일시 2003년 - 「대평동 위련대」 『경산의 전설과 민담』에 수록
수록|간행 시기/일시 2005년 - 「대평동 위련대」 『경산 지방의 설화문학연구』에 수록
수록|간행 시기/일시 2009년 - 「대평동 위련대」 『경산문화대사전』에 수록
관련 지명 위련대 - 경상북도 경산시 대평동
채록지 경상북도 경산시 대평동 지도보기
성격 지명 유래 전설|단맥 설화
주요 등장 인물 마을 사람|길손|과객
모티프 유형 지명 유래담|풍수담

[정의]

경상북도 경산시 대평동 월연원 터에 풍수와 관련해 전해오는 이야기.

[개설]

경산시 대평동 월연원 터에는 마을의 흥망성쇠와 관련된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채록/수집 상황]

「대평동 위련대」 설화는 2002년 이용석[남, 당시 76세]에 의해 채록되었으며, 2003년 경산문화원에서 간행된 『경산의 전설과 민담』에 설화의 내용이 수록되었다. 또한 2005년 간행된 이동근·김종국의 『경산 지방의 설화문학연구』와 2009년 경산시립박물관에서 발간한 『경산문화대사전』에도 이와 같은 설화가 수록되어 있다.

[내용]

조선 시대에 오늘날의 대평동 남쪽에 월연원(月淵院) 터가 있었다. 월연원은 나그네를 위한 일종의 객사(客舍)로서 ‘위련대’라는 명칭은 이 월연원이 바뀐 것으로 추정된다. 월연원을 중심으로 자리 잡은 마을이 있었는데, 이 마을은 찾아드는 과객이 너무나도 많아 걱정이 태산이었다. 어느 날 한 길손이 찾아왔을 때 이러한 사연을 말하였더니 마을 앞을 흐르는 남천을 막으면 될 것이라고 하여 남천을 막았더니 과객은 찾아들지 않았으나 마을이 차차 줄고 쇠퇴해지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할 수 없이 마을 사람들은 현재의 대평동으로 옮겨 살게 되었다고 한다.

[모티프 분석]

「대평동 위련대」 설화의 주요 모티프는 ‘지명 유래’, ‘풍수에 의한 흥망성쇠’ 등으로, 오늘 날 마을 주민들이 대평동에 모여살고 있는 유래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월연원 터 근처에 위치한 남천을 막자 마을이 쇠퇴하였다는 설화의 내용은 우리 민족의 풍수관념과 관련이 있다. 지세의 변화와 풍수의 조화가 인간의 생사를 비롯해 지역의 흥망성쇠까지 결정한다고 여기는 것이다. 「대평동 위련대」 설화는 풍수에 따라 마을의 흥망성쇠를 결정하는 남천을 막아버림으로써 마을이 쇠퇴하였다는 단맥 설화이자 대평동의 유래를 설명해주는 지명 유래담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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