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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경산 일대에 설치되었던 지방 행정 구역. 경산군(慶山郡)은 1308년(충선왕 복위 1) 충선왕이 복위하면서 왕의 이름을 피휘(避諱)하기 위해 기존의 장산군(章山郡)을 고친 것이다. 지금의 경상북도 경산시 남천면, 압량읍과 동 지역 일부, 대구광역시 수성구 일부를 관할하였다. 1308년 충선왕이 복위하자 기존 장산군의 ‘장(章)’이 왕의 이름인 ‘장(璋)’과 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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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부터 1895년까지 경상북도 경산시 일대에 설치되었던 지방 행정 구역. 경산현(慶山縣)은 1317년(충숙왕 4) 기존의 경산군(慶山郡)을 승격시키면서 처음 설치되었다. 지금의 경상북도 경산시 동 지역[신천동·남방동·내동·여천동·유곡동·점촌동 제외]과 남천면, 압량읍 북부 지역, 대구광역시 수성구 욱수동·신매동·삼덕동·성동·연호동·고모동·시지동·매호동·사월동·가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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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8년부터 1392년까지 경상북도 경산 지역의 역사. 고려 시대 경산 지역에 두어졌던 지방 행정 구역으로는 장산군(章山郡)[경산군(慶山郡)], 하주(河州)[하양현(河陽縣)], 자인현(慈仁縣)과 구사부곡(仇史部曲)·안심소(安心所)·양량촌부곡(陽良村部曲)·이지부곡(貍只部曲)·이지은소(梨旨銀所)가 있었다. 이 가운데 장산군은 지금의 경상북도 경산시 동(洞) 지역 서부와 남천면, 압량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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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경산군에 봉해진 문신. 김이(金怡)[1265~1327]는 원나라 간섭기 때 활동한 문신이자, 춘양 김씨(春陽金氏) 가문의 시조이다. 충렬왕과 충선왕 부자간의 갈등과 입성 책동(立省策動)을 막아내는데 공을 세웠다. 1320년(충숙왕 7) 경산군(慶山君)에 봉해졌다. 김이의 본관은 춘양(春陽), 자는 열심(悅心)·은지(隱之), 호는 산남(山南)이다. 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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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 시대 경상북도 경산시 진량읍 일대에 설치되었던 신라의 지방 행정 구역. 마진량현[혹은 마미량현(麻彌良縣)]은 본래 압량국(押梁國)[혹은 압독국(押督國)]의 일부였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 따르면 신라 지미왕(祗味王)[재위 112~134]이 정벌하였고, 후에 압량군[혹은 압독군]의 영현(領縣)으로 설치했다고 한다. 757년(경덕왕 16) 여량현(餘糧縣)으로 개칭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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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 경산 지역에 설치되었던 특수 행정구역. 고려 시대 향(鄕)·소(所)·부곡(部曲)·장(莊)·처(處) 등의 부곡제(部曲制) 영역은 지방제도 하에서 주(州)·부(府)·군(郡)·현(縣) 등의 하부구조였다. 이 가운데 향·부곡은 주로 농업에 종사하는 지역으로 고대부터 존재하였지만, 수공업 생산 등을 담당했던 소를 비롯한 장·처 등은 고려 시대 이후 성립된 것으로 보인다. 현재 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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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경상북도 경산 출신의 왕비. 순비 노씨(順妃盧氏)는 남편인 정창부원군(定昌府院君) 왕요(王瑤)가 공양왕[재위 1389~1392]으로 등극하자 왕비가 되었다. 경산현(慶山縣)은 왕비의 고향이라 경산군(慶山郡)으로 승격하였다. 순비 노씨의 본관은 교하(交河)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의열공(懿烈公) 노영수(盧潁秀), 할아버지는 강평공(康平公) 노책(盧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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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 시대부터 현재까지 경상북도 경산 지역의 역사. 팔공산 자락에 자리 잡고 있으며 금호강이 관통하는 경산은 고대 압독국(押督國)의 문화가 꽃피웠던 곳이다. 삼국 통일 과정에서는 신라의 전략적 요충지였으며, 고승(高僧) 원효(元曉)가 배출되었다. 고려 시대에는 『삼국유사(三國遺事)』를 편찬한 일연(一然)이 경산에서 탄생하였다. 조선 시대에는 경산현(慶山縣)·하양현(河陽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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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 경상북도 경산시 일대에 설치되었던 지방 행정 구역. 이지은소(梨旨銀所)는 영주(永州)[지금의 경상북도 영천시]의 속현(屬縣)이었다. 그러나 고을 사람들이 국가의 명령을 어겼다는 이유로 백성들의 재산을 몰수하고 이지은소로 강등되었다. 이지은소는 현재의 경상북도 경산시 와촌면과 영천시 신녕면·청통면 일대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 시대 소(所)를 포함한 부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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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부터 조선 전기까지 경상북도 경산시 일대에 설치되었던 지방 행정 구역. 이지현(梨旨縣)은 영주(永州)[지금의 경상북도 영천시]에 예속되었던 이지은소(梨旨銀所)가 1335년(충숙왕 복위 4)에 승격한 것이다. 현재의 경상북도 경산시 와촌면과 영천시 신녕면·청통면 일대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지현은 고려 시대 영주에 속했던 은소(銀所)였다. 그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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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경상북도 경산 출신의 승려. 일연(一然)[1206~1289]은 가지산문(迦智禪門)의 선승(禪僧)이다. 무신집권이 끝나고 왕정복고가 이루어지고 난 후 국왕의 부름을 받았다. 충렬왕 대 국존(國尊)으로 책봉되고, 교계를 주도하였다. 만년에는 삼국 시대의 역사와 문화를 집적한 『삼국유사(三國遺事)』를 편찬하였다. 일연의 속성은 김씨(金氏)이며, 본관은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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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7년부터 1895년까지 경상북도 경산시 일대에 설치되었던 지방 행정 구역. 자인현(慈仁縣)은 757년(경덕왕 16) 노사화현(奴斯火縣)을 개칭하여 설치되었다. 지금의 경상북도 경산시 자인면·남산면·용성면과 진량읍 남부 지역을 관할하였다. 별호는 ‘기화(基火)’ 또는 ‘인산(仁山)’이다. 자인현은 757년 군현제(郡縣制)를 강화하고, 명칭을 한자식으로 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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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0년경부터 1308년까지 경상북도 경산시 일대에 설치되었던 고려 시대의 지방 행정 구역. 장산군(章山郡)은 원래 통일 신라 시대 때 장산군(獐山郡)이 940년(태조 23)에 변경된 것이다. 지금의 경상북도 경산시 남천면, 압량읍과 동 지역 일부, 대구광역시 수성구 일부를 관할하였다. 신라왕조의 멸망과 후삼국 통일 과정에서 신라의 지방 제도는 해체되었다. 따라서 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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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경상북도 경산 출신의 문신. 전백영(全伯英)[1345~1412]은 1371년(공민왕 20) 문과에 급제하였다. 고려 말에서 조선 초에 걸쳐 주로 간관으로 활약하였다. 전백영의 본관은 옥산(玉山)[경산(慶山)], 호는 파계(巴溪), 시호는 문평(文平)이다. 등과록에 따르면 할아버지는 전억령(全億齡), 아버지는 전명도(全明道)이며, 어머니는 남원 양씨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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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경상북도 경산 지역에 정착한 문신. 정연(鄭珚)은 1347년(충목왕 3)의 정치도감(整治都監) 개혁에 참여한 문신이다. 외삼촌인 채하중(蔡河中)의 역모 사건에 연루되어 경산현으로 유배되었다. 정연의 본관은 초계(草溪), 자는 맹순(孟淳), 시호는 양헌(良獻), 봉호는 팔천(八川)이다. 할아버지는 첨의 평리(僉議評理)를 지낸 정선(鄭僐), 아버지는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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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8년부터 1895년까지 경상북도 경산시 일대에 설치되었던 지방 행정 구역. 하양현(河陽縣)은 고려 초 하주(河州)였다. 1018년(현종 9) 하양으로 개칭하고 현이 되었다. 지금의 경상북도 경산시 하양읍·와촌면과 진량읍 북부 지역, 그리고 대구광역시 동구 각산동·괴전동·동내동·매여동·신서동 일대를 관할하였다. 고을 이름인 ‘하양’은 금호강이 굽이쳐 흐르는 북쪽에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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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 경산 일대에 설치되었던 지방 행정 구역. 하주(河州)는 사료상 불분명하지만 대체로 고려 초부터 1018년(현종 9) 하양현(河陽縣)으로 개칭되기까지 설치되었다. 지금의 경상북도 경산시 하양읍·와촌면과 진량읍 북부 지역, 그리고 대구광역시 동구 일부 지역을 관할하였다. ‘하주’라는 지명이 언제 생겼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그런데 하주에 자사(刺史)가 설치된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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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하양이 관향인 문신. 허조(許稠)[1369~1439]는 조선 초기 태조·정종·태종·세종 연간 여러 관직을 역임한 문신이다. 특히 왕조의 예제(禮制)와 법전 정비에 큰 공헌을 하였다. 또한 황희(黃喜)·맹사성(孟思誠)과 더불어 세종 대의 명재상으로 꼽힌다. 허조의 본관은 하양(河陽), 자는 중통(仲通), 호는 경암(敬菴), 시호는 문경(文敬)이다. 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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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하양이 관향인 문신. 허주(許周)[1359~1440]는 고려 말 지양주사(知襄州事)로 있으면서 왜구를 방어하기 위해 성을 쌓았고, 이성계(李成桂) 일파의 전제 개혁에 참여하였다. 조선 개창 후 여러 관직을 역임했으며, 판한성부사(判漢城府事)에 오른 후 관직을 그만 두었다. 허주의 자는 백방(伯方)·백공(伯公), 호는 숙재(肅齋), 시호는 간숙(簡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