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 한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100624
한자 淸州 韓氏
영어공식명칭 Cheongju Han Clan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경상북도 경산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임기원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입향 시기/일시 1600년 전후 - 청주 한씨 한순 입향
본관 청주 - 충청북도 청주시
입향지 경상북도 경산시 상방동 지도보기
세거|집성지 경상북도 경산시 사동 지도보기
성씨 시조 한란
입향 시조 한순

[정의]

한란을 시조로 하고 한순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경산시의 세거 성씨.

[개설]

청주 한씨는 충청북도 청주시를 관향으로 하는 경산 지역의 세거 성씨이다. 경산 지역 청주 한씨는 조선 시대 중기 이후 번성하여 향교의 임원을 역임하는 등 경산 지역 사회에서 영향력을 가지게 되었다. 달성 서씨, 초계 정씨, 아산 장씨와 함께 경산의 4성으로 꼽히기도 한다.

[연원]

청주 한씨는 왕건을 도와 고려 건국에 공을 세운 청주 호족 한란(韓蘭)을 시조로 한다. 청주 한씨는 고려 개국 공신의 후손으로서 고려 시대 동안 권력을 누리며 번성하였다. 14세손 한계윤의 후손들은 부여, 서산, 김천, 경산 등으로 이거하여 세거하였다.

[입향 경위]

청주 한씨 경산 지역 입향조는 한순(韓詢)이다. 성주에 살던 한순임진왜란 때 아버지와 형을 잃고 장례를 치른 뒤, 조카인 한경희(韓景憘)와 한경조(韓景祚)를 데리고 피난하였다. 전쟁이 끝난 후에는 벼슬을 원치 않아 경산현 상방동 장고산(長鼓山) 기슭으로 이거하였으며, 조카인 한경희를 돌보며 독서에 전념하였다. 한순은 자신이 기거하던 집을 ‘고봉초당(鼓棒草堂)’이라 하였다. 경산현령 조형도(趙亨道)가 한순의 효행을 조정에 보고하여 군자감(軍資監) 직장(直長)으로 증직되었다.

한순이 경산 지역에 정착한 이후 조카 한경희의 후손들은 현재의 남천면 금곡리로 이거하였다. 한경희의 손자 한홍익(韓弘翊)은 생원시에 급제하였으며, 지역 유림에서 주요한 역할을 맡았다. 한홍익은 경산향교와 문묘를 옥곡동에서 신교동으로 옮길 때 조성도감(造成都監)을 맡았으며, 고산서원(孤山書院)을 창건할 때도 도감을 맡았다.

[현황]

청주 한씨는 2015년 인구주택총조사 자료에 의하면 경산시에 2,998명이 거주하고 있다. 청주 한씨 집성촌은 대구광역시로 편입된 고산면[대구광역시 수성구 고산동]과 경산시 사동, 상방동 등에 있었지만, 도시 개발로 인해 해체된 이후 사동에 위치한 재실을 중심으로 문중 활동이 이어지고 있다.

[관련 유적]

청주 한씨 관련 유적으로는 한순을 기리기 위해 세운 재실인 산천재(山泉齋)가 있다. 경상북도 경산시 사동 425번지에 있으며, 한순의 아들 한경조가 건립하였다. 산천재의 전신은 고봉초당인데, 사동으로 옮겨와 ‘산천재’로 이름 짓고 문중 서당을 겸해 사용하여 왔다. 이후 건물이 노후되자 1989년에 옛 건물을 철거한 후 1991년에 중건하였다.

산천재는 냉천골의 산기슭에 동남향하여 자리 잡고 있는데, 전면에는 3칸 규모의 산형 대문을 세웠다. 정면 6칸 측면 1칸 반 규모의 팔작지붕 기와 건물이다. 평면은 전면에 반 칸 규모의 툇간을 두었으며, 툇간 뒤에는 우물마루를 깐 2칸의 어칸을 중심으로 좌우에 온돌방 2칸씩을 둔 중당협실형이다. 가구는 오량가이며, 기둥 위에는 삼익공으로 장식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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