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녀로 오해받은 황희 정승 딸」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101215
한자 淫女-誤解-黃喜政丞-
이칭/별칭 음녀로 오해 받아 버림받은 황희 정승의 외동딸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경상북도 경산시 대동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곽현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수록|간행 시기/일시 2003년 - 「음녀로 오해받은 황희 정승 딸」 『경산의 전설과 민담』에 수록
관련 지명 경상북도 경산시 대동
채록지 경상북도 경산시 대동 지도보기
성격 민담
주요 등장 인물 황희 정승|외동딸

[정의]

경상북도 경산시 대동에 전해오는 황희 정승의 외동딸에 대한 이야기.

[개설]

경상북도 경산시 대동에는 음녀(淫女)로 오해를 받은 황희 정승의 외동딸에 대한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채록/수집 상황]

「음녀로 오해받은 황희 정승 딸」 설화는 2003년 경산문화원에서 발간한 『경산의 전설과 민담』에 수록되어 있으며, 정확한 채록 시기는 밝혀져 있지 않다.

[내용]

옛날에 황희 정승에게는 아들이 셋이고 딸이 하나 있었다. 그 중에서 특히 딸이 영특하고, 재주가 비상하여 황희 정승이 아꼈다. 어느 날, 딸이 15세 되던 해에 황희 정승이 딸의 거처에 가 보니 “정이 많으면 두 허리가 딱 붙고, 뜻이 있으면 두 다리가 딱 벌려진다.”라는 글귀만 방에 적혀 있는 채로, 딸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황희 정승이 글귀를 보고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것은 음녀의 글이었다. 황희 정승은 곧바로 두 아들을 불러 이 글귀를 보여주고는 어떻게 했으면 좋겠느냐고 물었다. 위의 두 아들은 여동생을 이대로 두면 위험하니 없애버리자고 말했다. 그리고 셋째 아들은 하나 밖에 없는 여동생을 죽이자는 말에 망설이기는 했으나, 황희 정승의 명령이니 따르겠다며 보름간의 말미를 달라고 했다. 그리고 나서 세 형제가 한참 고민하다가, 셋째 아들이 저녁녘에 여동생의 거처로 갔다. 여동생의 방에 불이 환하게 켜져 있는 것을 본 셋째 아들이 동생을 불렀다. 그리고는 여동생에게 “너의 바느질 솜씨가 뛰어나다는 소문을 들은 내 친구가 베를 갖고 와서 옷을 한 벌 해달라고 부탁하는데, 해줄 수 있겠느냐"하고 물었다. 여동생은 오라버니의 부탁에 사나흘 정도면 된다고 했다. 치수를 어떻게 하면 되느냐고 묻는 여동생에게 셋째 아들은 여동생 체격에 맞게 옷을 지으면 된다고 말했다. 그리고 사나흘 후 옷이 완성되자, 셋째 아들은 만들어진 옷을 친구에게 주는 대신 여동생에게 입어보라고 권했다. 몇 번 거절하다가 결국 여동생이 그 옷을 입었는데, 입혀 놓고 보니 잘생긴 호걸남아(豪傑南兒) 같았다. 셋째 아들은 여동생에게 “네가 여자라 장안(長安) 구경을 못했을 것이니 그 옷을 입고 저녁에 장안 구경을 가자"고 말했다. 그렇게 여동생과 셋째 아들이 함께 장안 구경을 두루 하던 중, 셋째 아들이 그간 있었던 모든 일을 여동생에게 말했다. 방에 붙어있는 글귀 때문에 아버지가 자신을 죽이려고 한다는 것을 알게 된 외동딸이 깜짝 놀라며, 그 글귀는 가위를 보고 쓴 글이라고 말했다. 가위로 천을 자르면 가위의 두 허리가 딱 붙고, 하나의 천이 두 개로 갈라진다는 것이라고 했다. 모든 것이 오해였지만 때는 늦어있었다. 하지만 그 말을 들은 셋째 아들은 여동생을 죽이는 대신 도망치도록 놓아주었다. 그리고 황희 정승과 형제에게는 여동생을 강변에 밀어 죽였다고 말했다.

그렇게 남복(男服)을 입은 채로 도망치던 외동딸은 우물가에서 머슴들을 만나게 되었다. 머슴에게 아침을 얻어먹을 수 있는 곳이 없느냐고 묻자, 머슴들이 가장 큰 집을 가리키며 대감댁으로 가라고 알려 주었다. 남복을 입은 외동딸이 대감댁에 가자 잘생기고 귀한 태가 나는 남아가 찾아왔다며 대감댁 사람들이 모두 놀랐다. 대감이 남아의 이름을 물었지만, 외동딸은 신분이 탈로 날까 두려워 알려주지 않았다. 그렇게 외동딸은 며칠 대감댁에 머물게 되었다. 대감이 남아를 집안에 며칠 두고 살펴보니 영특하고 재주가 뛰어난 것이 인재였다. 대감댁에는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외동딸이 집에 머물며 그 아들과 동고동락하며 함께 지내주기를 바랐다. 덕분에 외동딸은 대감댁에 오래 머물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외동딸이 대감댁에 지낸지 1년 정도 되던 때였다. 대감댁 마님이 외동딸을 오래 보니, 손도 곱고 행동거지도 여성스러운 것이 아무리 봐도 남자가 아니라 여자 같았다. 대감과 마님이 외동딸을 불러 묻자, 외동딸이 그제야 자신이 여자인 것을 밝혔다. 대감은 기뻐하며 외동딸에게 자신의 아들과 혼인해줄 것을 부탁했다. 그렇게 외동딸은 대감댁 아들과 혼인해서 살게 되었다.

그리고 또 시간이 흘러, 외동딸의 신랑이 과거 시험을 치르기 위해 상경할 때였다. 외동딸이 신랑에게 편지를 하나 써 주며 가는 길에 황대감 댁에 들러 이 편지를 전하라고 했다. 신랑이 황대감 댁을 찾아가자, 황희 정승과 위의 두 아들은 이미 죽고, 셋째 아들이 대를 이어 살고 있었다. 신랑에게서 편지를 받은 셋째 아들이 깜짝 놀라며 편지를 보낸 사람이 자신의 여동생이라고 말했다. 그제야 신랑은 아내의 성이 황씨(黃氏)인 줄 알게 되었다. 그 후, 신랑은 과거에 급제하고, 외동딸은 친정으로 돌아와 오라버니와 회포를 풀며 행복하게 살았다고 한다.

[모티프 분석]

「음녀로 오해받은 황희 정승 딸」 설화의 주요 모티프는 ‘딸을 음녀로 오해한 황희 정승’, ‘남장 여인’ 등이다. 황희는 고려 말부터 조선 초 때까지 재상과 삼정승을 하며, 청백리의 표상으로 불린 실존 인물이다. 유명한 인물이다 보니, 이에 얽혀 전해지는 설화도 많다. 「계란 유골」, 「황희 정승과 박광대」, 「황희 정승과 딸」 , 「명판결을 내린 황희 정승」, 「황희 정승 탄생 설화」 등과 같은 황희 정승과 관련된 설화들이 전국적으로 분포해 있으며, 대부분 황희 정승의 청렴함과 뛰어난 자질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런데 경산시 대동에 전해지는 「음녀로 오해받은 황희 정승 딸」 설화는 황희 정승을 부정적인 인물로 나타내고 있어 특이하다. 해당 설화에서 황희는 글귀만 보고 외동딸을 섣불리 오해한 것으로도 모자라, 음녀인 외동딸을 망설임 없이 죽이려고 하는 인물로 등장한다. 다른 설화에서 황희가 중국 사신이 낸 어려운 문제를 재치 있게 해결하거나, 명쾌한 판결을 내려 사람들의 부당함을 해소해주는 지혜로운 인물로 나타나는 것과 대조적이다.

경상남도 진주시에 전해지는 「영리한 정승 딸」 설화에서도 황희 정승과 그 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황희 정승의 분신과도 같은 딸이 황희 정승처럼 지혜롭게 중국 사신의 문제를 해결한다는 내용이며, 정승 딸의 지혜만을 강조할 뿐 황희 정승의 잘못된 점이 나타나거나 하지 않는다.

황희 정승의 딸이 음녀로 오해를 받은 근본적인 원인은 성적 욕망을 암시하는 글귀를 방안에 남겼기 때문이다. 성적인 욕망은 인간의 본능적인 욕망이며 자연스러운 것임에도 불구하고, 황희 정승은 이를 허용하지 않는다. 황희 정승이 지나치게 청렴하고 결백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다른 황희 정승 설화들과 달리, 황희 정승의 청렴결백함을 오히려 부정적인 요소로 보고 있다. 때문에 설화에서 부정적인 인물로 나타나는 황희 정승과 황희 정승에 동조하는 두 아들은 일찍 죽어 천수를 누리지 못하는 결말을 맞이한다. 반면, 선한 인물인 정이 많은 셋째 아들과 외동딸은 해로하여 행복한 결말을 누린다. 황희 정승의 자랑이던 청렴함과 결백함이 오히려 불행을 가져오는 근원이 된 것이다. 이처럼 경산시 대동「음녀로 오해받은 황희 정승 딸」 설화는 청렴함과 결백함도 지나치면 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이야기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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