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산 양지리 유적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101791
한자 慶山陽地里遺蹟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경상북도 경산시 하양읍 양지리 207답 일원
시대 선사/청동기,고대/고대,고려/고려,조선/조선
집필자 이창국

[정의]

경상북도 경산시 하양읍 양지리에 있었던 청동기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의 유적

[개설]

한국주택토지공사 대구경북지역본부가 시행하는 ‘경산 하양(무학)지구 택지개발사업’으로 인해 성림문화재연구원에 의해 2017년부터 2018년까지 발굴조사 되었다. 조사결과 청동기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의 생활 유적, 통일 신라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의 생산유적, 초기 철기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의 분묘 유적이 확인되었다.

[위치 및 현황]

경산시 하양읍 양지리에 있는 하주초등학교 서남쪽의 대규모 아파트 단지 부지에 유적이 위치하고 있었다. 발굴조사 후 2021년 현재 아파트 공사가 계속 진행중에 있으며, 1호 목관묘는 복토하여 현지에 보존조치 되었고, 목관묘가 확인된 Ⅱ-5구역 중 일부에는 양지근린공원이 조성되었다. 목관묘 출토 유물은 현재 경산시립박물관에서 상설전시되고 있다.

[발굴조사 경위 및 결과]

양지리 유적은 2009년 해동문화재연구원의 지표조사를 거쳐 성림문화재연구원에 의해 2017년 5월 29일부터 2018년 2월 5일까지 3개 구역으로 나누어져 발굴조사가 진행되었다. 조사결과 청동기 시대의 주거지 및 환호, 초기 철기 시대의 주거지 및 옹관묘, 원삼국시대의 주거지·함정유구·목관묘, 삼국~통일 신라 시대의 토기 가마·석곽묘·석실묘, 고려~조선 시대의 기와가마·삼가마·수레바퀴·축대시설 등 총 586기의 유구가 확인되었다. 이 외에도 고상식 가옥, 주혈군 23동, 주혈 1327개가 조사되었다. 유구 내부에서 출토된 유물은 615건 705점으로 청동기 시대의 토기류와 식기류 외에도 초기 철기 시대의 점토대토기, 원삼국 시대의 와질 토기, 청동 및 철제 무기류, 각종 위세품, 칠기류, 고려~조선 시대의 기와류 등 매우 다양하다.

청동기 시대의 주거지는 대체로 후기에 속하는 평면 방형으로 소형이며, 송국리 문화권에 속하나 부분적으로 검단리 문화권의 영향이 확인된다. 초기 철기 시대의 주거지는 방형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취락은 군집을 이루고 있다. 원삼국 시대에는 기존의 방형 주거에 새롭게 원형이 나타나며, 부뚜막식 화덕이 만들어진다. 초기 철기 시대의 옹관묘는 기원전 2세기 전반에서 기원후 1세기 후반 사이에 조성되었으며 집단 묘역을 이루고 있다. 기와 가마는 12세기에서 17세기까지 지속적으로 운영되었으며, 특히 12세기 기와 가마에서 출토된 인면 수막새는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닌 유물로 평가된다.

Ⅱ-5구역에서는 청동기 시대 수혈주거지 5동, 초기 철기 시대 옹관묘 1기, 원삼국 시대 목관묘 6기, 고려~조선 시대 삼가마 5기, 소토유구(燒土遺構) 2기, 구상유구(溝狀遺構) 11기, 우물 1기, 수혈(竪穴) 146기, 주혈(柱穴) 432기 등 총 609기가 조사되었는데, 이중 고고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는 목관묘에 대해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호의 묘광(墓壙) 길이는 318㎝, 너비는 150㎝, 깊이는 121㎝이다. 목관은 통나무관으로 길이는 273㎝, 너비는 84㎝이다. 묘광 바닥에는 요갱시설이 있다. 유물은 요갱 내부에서 칠초동모(漆鞘銅矛) 2세트, 동과초(銅戈鞘) 1점, 자귀 1점, 도자 1점이 확인되었다. 묘광 벽면에는 동단벽에 4점, 서단벽에 3점, 남장벽에 1점의 판상철부가 기댄 상태로 확인되었으며, 묘광 바닥면에서는 주조철부 15점과 철모 1점이 출토되었다. 목관의 바닥에는 판상철부를 2~3점씩 5열로 깔고 관의 측면과 격벽시설인 판재에 기댄 상태로 판상철부 19점이 확인되었다. 목관 내부에서는 칠초동검(漆鞘銅劍) 2세트, 칠초철검 2세트, 철부 1점, 이체자명 대경(異體字銘帶鏡) 2점, 성운문경(星雲文鏡) 1점, 동탁(銅鐸) 1점, 경식 1세트, 원통형 이형동기(異形銅器) 12점, 마형장신구(馬形裝身具) 1점, 호형대구(虎形帶鉤) 1점, 동포(銅泡) 2점, 칠선자(漆扇子) 3점, 칠기 2점이 수습되었다. 충전토 위에서는 주머니호, 조합식우각형파수부호, 단경호가 각 1점씩 학인되었다. 단경호 안에서는 칠기편과 함께 숭어뼈·복숭아씨·참외씨가 확인되었고, 봉토에서는 단경호 1점과 옹 2점이 수습되었다. 목관과 칠기의 연대측정 결과 기원 전후시기의 안정적인 결과가 도출되었다.

2호는 적석목관묘(積石木棺墓)로 묘광의 길이는 353㎝, 너비는 182㎝, 깊이는 144㎝이다. 목관은 판재형으로 길이는 204㎝, 너비는 64㎝이다. 유물은 목관의 북장벽 쪽에서 판상철부 1점, 남장벽에 연하여 함몰된 적석 사이에서 우각형파수부호가 완파되어 확인되었고, 충전 범위에서 세형동검 1점, 철모 5점, 동과(銅戈) 1점, 재갈 1점, 불명칠기 1점 등이 출토되었다. 목관의 내부에서는 철모 1점, 동포(銅泡) 1점, 검파부속구(劍把付屬具) 1점, 불명청동기 1점 외에 인골이 확인되었다.

3~6호는 규모도 매우 작고, 6호의 소옹1을 제외하면 출토 유물은 없다.

1호에서는 영천 용전리 1호, 창원 다호리 1호, 경주 조양동 38호에서 보이는 최고의 위세품이 모두 확인되었고, 전한경 3점과 칠기 부채 3점, 오수전으로 장식한 칠과초(漆戈梢)는 이 모두를 능가하는 수준이다. 무덤의 주인공은 진변한 성립기인 기원 전후 시기에 경제, 이념, 무력을 모두 갖추고 중국과의 대외 교섭을 이끌었던 국읍(國邑)의 주수(主帥)였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2호에서 확인된 3열의 횡대시설(橫帶施設)은 적석목관묘의 구조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며, 출현기 재갈은 성주 예산 백전리 1호 출토가 유일하였으나 이에 후행하는 재갈 형식이 추가된 의미가 있다.

[의의와 평가]

경산 양지리 유적은 경산 지역의 청동기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의 역사와 문화를 복원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가 될 것으로 판단되며, 특히 목관묘와 그 출토 유물은 경산 지역뿐만 아니라 진변한 성립 시기의 사회를 좀 더 역동적으로 그려낼 수 있는 단초가 될 것으로 생각된다.

[참고문헌]

『경산 하양(무학)지구 택지개발사업부지 내 경산 양지리 유적』(성림문화재연구원·한국토지주택공사, 2020)

최대용, 「경산 양지리 유적 -금호강유역 원삼국시대 최상위 수장묘의 발견-」(『2017 한국고고학저널』, 국립문화재연구소,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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