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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공채 시집 있습니까』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401095
한자 鄭孔采詩集-
영어의미역 Is There the Collection of Geong Gongchae‘s Poems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유형 작품/문학 작품
지역 경상남도 하동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최영욱하아무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저자 생년 시기/일시 1934년 12월 22일연표보기
저자 몰년 시기/일시 2008년 4월 30일연표보기
편찬|간행 시기/일시 1979년연표보기
성격 시집
작가 정공채(鄭孔采)[1934. 12. 22~2008. 4. 30]

[정의]

1979년 경상남도 하동군 출신의 시인인 정공채가 발표한 시집.

[개설]

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성평리 출신인 시인 성촌(星村) 정공채(鄭孔采)[1934~2008]는 1957년 시인 박두진(朴斗鎭)[1916~1998]의 추천으로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하였다. 정지용(鄭芝溶)[1902~?]-박두진-정공채로 시맥(詩脈)이 이어진다는 자부심으로 전통적인 현대 시작법을 위주로 해서 상징적인 시의 풍성한 아름다움과 움직이는 시에의 역동적인 작품 창작에 매진하였다.

특히 첫 시집이 나오기 전후 20대에는 낭만이 허무를 억제하는 양상을 보이다가, 30대에 들어서서는 시대가 주는 억압과 착잡함이 주요인이겠지만 오히려 허무가 낭만을 압도하는 경향을 보여 주었다.

정공채는 1960년 4월 14일 시 「하늘이여」를 『국제신보』[현 『국제신문』] 조간 제1면 사설란에 발표하여 4·19 혁명 최초의 항거시를 쓴 사람으로 널리 알려졌다. 「하늘이여」는 3·15 부정 선거에 항거해 일어섰다 죽은 김주열(金朱烈)[1943~1960]의 죽음에 격분해 쓴 시이다. 당시 하동군 북천 출신의 작가 이병주(李炳注)[1921~1992]가 『국제신보』 편집국장으로 재직하고 있었는데, 파격적으로 사설란을 비우고 정공채의 시를 실었던 것이다.

이어 1963년 장시 「미팔군(美八軍)의 차(車)」를 『현대문학』에 전재하였는데, 이후 11개 일본 문학지에 번역되었고, 이 여파로 7년간 필화의 고통을 당하기도 하였다. 조지훈, 조연현, 김현승, 김용호 등 당시 시인과 평론가들이 「미팔군(美八軍)의 차(車)」는 반미성이 아니라 역사의식에 바탕을 둔 민족시라는 평가를 함으로써 감옥행은 면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정공채는 이러한 이유 때문에 직업을 선택하는 데도 자유롭지 못한 삶을 살아야 하였다. 그 후 1989년에 시집 『사람소리』를 내면서 정공채는 작가의 말을 통해 “민족의 주체성을 기린 서사적 서정시가 왜?”라며 항변하기도 해 눈길을 끌었다.

등단 22년 만인 1979년 유림사에서 『정공채 시집 있습니까』를 낸 이후, 『해점』, 『아리랑』, 『사람소리』, 『땅에 글을 쓰다』, 『새로운 우수』 등의 시집과 노천명(盧天命)[1911~1957], 오상순(吳相淳)[1894~1963], 전혜린(田惠麟)[1934~1965] 등의 평전, 그리고 소설 『초한지』 등을 발표하였다.

『민족일보』 기자, 문화방송 프로듀서 등을 거쳐 한국문인협회 이사,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이사, 한국현대시인협회 회장 등을 역임하였으며, 현대문학상 시문학상, 한국문학상, 편운 문학상, 한국문인협회 본상 등을 수상하였다.

[구성]

시인 자신의 이름이 들어간, 약간의 자조와 그만큼의 오기가 담긴 제목의 『정공채 시집 있습니까』는 세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1부에는 단시(短詩) 「선생님, 비에 젖읍시다」, 「망향(望鄕)」 등 30편이 수록되었고, 2부 장시(長詩)에는 「하늘과 아들」, 「부두(埠頭)」 등 4편이 실려 있다. 마지막 3부에는 대장시(大長詩)라는 소표제를 붙여 논란이 되어 필화를 겪었던 작품 「미팔군(美八軍)의 차(車)」가 수록되어 있다.

[내용]

본문에 앞서 정공채는 ‘시(詩)의 길’이라는 제목의 서문에서 “시(詩)의 길이 있기에 나는 외곬으로 이 길을 가고 있다. 하필이면 가난과 울적으로 쌓이는 시인(詩人)의 길을 가느냐 하겠지만, 나는 이 길이 좋고 거듭 좋아서 고적(孤寂)과 진실(眞實)을 씹으며 생(生)을 만끽(滿喫)하고 있다”면서 “어차피 시의 길을 한 가닥을 오가는 시인의 삶은 더러는 살도 찢겨지고 피도 흘리는 형극(荊棘)의 길이기도 하다. 이만한 고행(苦行) 없이는 내 스스로가 거짓이기도 하다. 괴로움도 오히려 달게 알면서 가고 있는, 외면(外面) 당하기 일쑤인 이 길이 나의 천직(天職)”이라고 자신의 내면을 표현하였다.

정공채는 상징적인 시의 풍성한 아름다움과 움직이는 시에의 역동적인 작품 창작에 주력하였다. 1부의 단시가 주로 상징적인 시의 풍성한 아름다움을 노래하였다면, 2부와 3부의 장시는 움직이는 시에의 역동적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시인의 고향에 대한 애착이나 민족에 대한 사랑, 초기에 노래하였던 낭만성은 한국 문학을 빛내는 금자탑이 되었다. 4·19 혁명 최초의 항거시 「하늘이여」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지금 하늘이여/ 총을 맞은 이 땅의 봄이 마산에서/ 마산에서 핏빛으로 안타깝게 타고 있습니다// 꽃같이 피어오르는 소년을/ 남쪽 바다/ 부두 앞 수면 위로/ 실종(失踪)은 얼굴에 포탄(砲彈)을 박아/ 십칠세(十七世)를 떠올렸습니다// [중략] // 아아/ 자라게 하여 주소서, 하늘이여/ 전쟁에서도 죽음으로 조국을 지킨/ 용감한 이 땅 백성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정공채에게 필화의 고통을 준 「미팔군(美八軍)의 차(車)」는 그 내용이 반미주의 혹은 반정부주의라는 정치인들의 자의적인 해석에 따라 중앙정보부에 출두해서 곤욕을 치러야 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나와 백 년(百年)의 열차(列車)를 타야 할/ 그 여자(女子)는/ 그 사람이 운전(運轉)하는/ 미팔군(美八軍)의 차(車)를 탔다// [중략] // 그리고/ 달리는 바퀴 위의 미팔군(美八軍)의 차(車) 안은/ 이러한 꽃으로 가득 차/ 자본(資本)은 빛나도록 달리고 있다

[특징]

문학 평론가 조남익은 “정공채의 시어는 개방되어 있으며, 현대적인 취향에 적극적이다. 짧게 또는 길게 시행을 바꿔 쓰는 그 리듬이 기교적이지만, 그것이 취약성(脆弱性)을 주거나 공소(空疎)하지를 않은 것이다. 현대어로 무장된 ‘리듬의 힘’이 생동하는 것이다. 즉 재래 서정시에서 나타나던 순미한 단일성의 표현이 그에게 오면 복합적인 발광체(發光體)로서 생동감을 얻는다”고 하였다.

문학 평론가 윤재근은 “정공채 시인은 다정의 소망이 폐허처럼 좌절되지만, 그에게 허무는 삶의 포기가 아니었다. 삶의 욕망이 뜻을 잃어서는 안 된다고 절규하고 있다”고 해석하였다. 시인의 삶이 다정을 바탕으로 삶을 접하였지만 시대정신, 즉 겨레의 삶을 시로써 확인하고부터는 삶에의 절망이 아니라 민족에의 사랑으로 비롯한, 어쩔 수 없는 시인의 신분에서 오는 허무감이 시인을 민족주의자 내지 허무주의자로 내몰았을 확률이 높다.

[의의와 평가]

박두진정공채를 가리켜 “천의무봉(天衣無縫)”의 시인이라 격찬하였다. 또 문학 평론가 윤재근은 “마상(馬上)의 낭만주의자, 측상(厠上)의 민족주의자, 침상(枕上)의 신낭만주의자”라며 정공채를 ‘삼상(三上)의 시인’이라 표현하였다.

이와 같은 찬사를 받은 정공채는 전후파 특유의 도시적 감수성으로 실존적 고독과 고뇌를 노래하는 데 매우 개성적인 솜씨를 발휘하였다. 여자, 사랑, 술, 재즈, 바다, 부두, 자유 등의 주제를 화려한 모더니즘적 어법을 구사하여 스마트하게 형상화하는 기량은 멋 부리는 스타일 이상의 시적 천분을 가늠하게 한다. 특히 반미주의적 메시지가 짙게 깔려 있다는 이유로 필화를 겪게 하였던 시 「미팔군(美八軍)의 차(車)」를 비롯하여 정공채의 강렬한 현실 인식의 시편들이 보여 주는 치열성은 자유분방한 언어의 기교에만 매달리는 시인이 아님을 증명해 준다.

제8회 편운 문학상 심사평에서는 정공채를 다음과 같이 평하고 있다. “삶과 현실의 표면보다 이면을 더욱 예리하게 파헤쳐 그 부조리한 실체를 드러내고자 한 그의 이른바 ‘움직이는 시’에서 우리는 시대의 고통과 개인의 아픔을 한꺼번에 거머쥐려는 복합적인 상상력의 완숙미를 엿볼 수 있다. 비속한 세상살이에서는 비록 패배하였을망정 오만한 정신의 황제로서 독창적인 발상과 메타포의 창조를 통해 한국 문학에 새 숨결을 불어넣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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