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300393
한자 靖遠樓
영어공식명칭 Jungwonru Gate Pavilion
이칭/별칭 해안루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유적/터
지역 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 중앙2로 22[남동리 1-7]
시대 조선/조선 전기,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변남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469년연표보기 - 정원루 현감 성중성이 건립
관련 사항 시기/일시 일제강점기 - 정원루 해안루로 개칭
소재지 정원루 - 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 중앙2로 22[남동리 1-7]지도보기
성격 문루

[정의]

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 남동리에 있었던 조선시대 해남성의 남문루.

[개설]

정원루(靖遠樓)해남군 해남읍 남동리에 있는 조선시대 해남읍성의 남문루이다. 일제강점기에 해안루로 이름이 바뀌었다. 1469년 건립되었는데 정원루의 건립 시기는 해남읍성의 축성 시기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정원루의 남문 통에는 장시가 형성되었고 냇가에는 홍교가 있다.

[변천]

정원루는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新增)』의 누정 조에 성 남문의 누각이라고 하였다. 1469년에 현감 성중성(成重性)이 세웠으며, 성현(成俔)의 기문이 있다. 그러므로 해남읍성은 남문루가 세워진 1469년에 축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해남읍성의 남문은 지리지 『동국여지지』에 정원루(靖遠樓)로 기록되어 있으며 1872년 편찬한 『호남읍지』에도 정원루로 나온다.

해남읍성은 동문, 서문, 남문이 있었다. 가장 마지막까지 남아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는 남문은 3칸으로, 1칸인 동문과 서문에 비하여 웅대하였다. 일제강점기에 해안루(海晏樓)로 이름이 바뀌었고 모습은 사진으로 남아 옛 모습을 짐작하게 한다. 해남읍성으로 들어가려면 정문 역할을 하고 있는 남문으로 들어가야 하였다. 옛길을 보면 옥천면 영춘을 지나 우슬재를 넘어 신안리 서쪽을 지나 현재의 축협 앞 평동오거리에서 잠시 말에서 내려야 하였다. 말에서 내리는 곳은 ‘벅수거리’라고 불리었는데, 벅수[장승]가 마을 입구를 지키고 있어서 벅수거리라는 이름이 붙었다. 벅수거리에 하마비가 있었다고 하며 말을 내려 홍교다리[남천교]를 건너 읍성의 남문인 정원루를 통과해 읍성 안으로 들어갔다. 남문 통에는 장시가 형성되어 현재도 존재한다. 조선 전기의 문신 성임(成任)[1421~1484]은 시에서 정원루에 대해 “성곽은 바다가 다한 곳에 평평히 임해 있는데, 풍연(風煙) 10리에 나그네가 누각에 오르네.”라고 노래하였다.

[위치]

남문의 위치는 해남군 해남읍 남동리 1-7 인근이다. 남문 밖에 있는 천을 남천(南川)이라 하였고, 남천에 다리를 건설하여 남천교라고 부르다가 홍교(虹橋)로도 불렀다.

[현황]

해남읍성 남문의 위치는 현재 해남에서 가장 번화한 곳 중 하나로 시장이 형성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해남읍성의 공간 구성을 보면 읍성 안의 북쪽 중앙에는 관아를 배치하고 앞으로 남북대로와 동서대로를 두었다. 해남현의 경우도 한양의 남대문처럼 해남읍성의 남문인 정원루를 중심으로 사람들이 붐비었고 남문 통에 시장이 형성되었다. 정원루는 현 시장의 역사성을 알 수 있는 유적으로 가치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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