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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600433
한자 正祖 初葬地
영어공식명칭 The First Buried Place of King Jeongjo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능묘
지역 경기도 화성시 효행로481번길 21[안녕동 187-1]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박성남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조성 시기/일시 1800년연표보기 - 건릉 조성
피장자 생년 시기/일시 1752년 - 정조 출생
피장자 몰년 시기/일시 1800년 - 정조 사망
발굴 조사 시기/일시 2011년 - 국립문화재연구소 정조 초장지 1차 발굴 조사
발굴 조사 시기/일시 2012년 - 국립문화재연구소 정조 초장지 2차 발굴 조사
이장 시기/일시 1821년연표보기 - 건릉 천장
현 소재지 정조 초장지 - 경기도 화성시 효행로481번길 21[안녕동 187-1]지도보기
출토 유물 소장처 국립문화재연구소 - 대전광역시 유성구 문지로 132[문지동 472]
성격
관련 인물 정조
소유자 문화재청
관리자 문화재청 조선왕릉관리소 서부지구관리소

[정의]

경기도 화성시 안녕동에 있는 조선 후기 정조의 왕릉 터.

[개설]

정조 초장지정조가 사망한 후 처음 묻힌 곳이다. 정조는 1800년 6월 28일 창경궁 영춘헌(迎春軒)에서 사망하였고, 11월 3일 발인하여 11월 6일에 묻혔다. 사도세자의 무덤인 현륭원(顯隆園) 동쪽 기슭 강무당 터에 무덤을 조성하였으며, 능호는 건릉(健陵)이다. 정조의 능이 조성된 지 21년 만인 1821년(순조 21) 3월 9일 효의왕후가 사망하였는데, 이때 건릉의 자리가 좋지 않다고 하여 천장(遷葬)을 결정하고, 효의왕후와 합장하였다. 새로 옮길 곳이 이전의 능과 가까웠기 때문에 석물을 모두 옮겨다 썼다고 한다. 국립문화재연구소는 '화성 융릉과 건릉' 구역 내 정조 초장지로 추정되어온 지점에 대해 사실 관계를 확인하고 정비 복원의 기초 자료를 확보하기 위해 2011년 1차, 2012년 2차 발굴 조사를 진행하였다.

[위치]

정조 초장지는 '화성 융릉과 건릉' 문화재 구역 내 동남쪽 경계 부분에 있다. 2007년 발견한 정조 초장(初葬) 왕릉 재실(齋室) 터 북서 편 인근에 해당한다.

[발굴 조사 결과]

정조 초장지 발굴 결과, 수도각(隧道閣)과 난간석·지대석의 위치, 석수(石獸)와 곡장 자리 등을 확인하였으며, 현궁(玄宮)과 퇴광 시설 등의 구조를 확인하였다. 묘광의 평면 형태는 철자형(凸字形)이고, 퇴광에서 다수의 부장품이 확인되었다.

출토 유물 중 뚜껑 있는 단지는 18세기 백자의 전형을 보여주며, 7개가 일괄로 부장되어 있었다. 또 다양한 종류의 백자 명기가 출토되었는데, 특히 작(爵)은 일반 분묘에서는 확인된 바 없는 유물이어서 주목된다. 궁중 제례악에서 사용하던 악기인 편경(編磬)과 편종(編鐘)도 출토되어 왕릉으로서의 격을 증명하였다.

정조 초장지 발굴 유물은 『건릉산릉도감의궤』의 「퇴광배설도(退壙排設圖)」에 그려진 물품을 구체적으로 확인하였다는 데 의의가 있다. 「퇴광배설도」에 의하면 경서(經書)와 전서(全書) 등의 서책도 부장하였는데, 발굴 조사에서 발견되지는 않았다.

[현황]

정조 초장지는 발굴 조사 이후 다시 흙으로 덮어둔 상태이다.

[의의와 평가]

정조 초장지 발굴을 통해 조선 왕릉의 내부 구조, 부장 양상, 천장 당시의 상황 등을 복원할 수 있게 되었다. 조선 왕릉을 대상으로 한 발굴은 구(舊) 희릉(禧陵)[중종의 비 장경왕후의 무덤]에 이어 두 번째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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