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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600466
한자 韓明胤·密陽朴氏忠烈閣
이칭/별칭 한명윤·박행장 충열각,한명륜·밀양박씨 충렬각
분야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경기도 화성시 양감면 정문회화로 163-1[정문리 189-6]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권기중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축|증축 시기/일시 1945년 5월 - 충열각 중건
문화재 지정 일시 1986년 5월 20일연표보기 - 한명윤·밀양박씨 충열각 화성시 향토문화재 제5호로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최루백효자각 화성시 향토문화재로 재지정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83년 - 유적비 건립
현 소재지 한명윤·밀양박씨 충열각 - 경기도 화성시 양감면 정문회화로 163-1[정문리 189-6]지도보기
성격 정려
정면 칸수 1칸
측면 칸수 1칸
소유자 향남면 한상우
문화재 지정 번호 화성시 향토문화재

[정의]

경기도 화성시 양감면에 있는 조선 전기 충신 한명윤과 부인 박행장의 정려.

[개설]

조선 선조 때의 충신인 한명윤과 그의 부인 열녀 박행장의 충열각이다. 한명윤은 1590년(선조 23년) 영동현감이 되어 선정을 베풀던 중,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으로 활약해 그 공으로 조방장의 품계를 겸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왜적과 싸우다 1593년 10월 52세의 나이로 전사하였다. 한명윤은 출전하는 길에 부인 박행장에게 멀리 피신할 것을 권유했으나 박행장은 피신을 거부했다. 이후 왜적이 침입하자 “내 어찌 구차하게 살기를 원하겠느냐”며 비수로 자결했다고 전해진다. 충신문과 열녀문은 따로 세워지는 것이 보통이나 한명윤·박행장 충열각의 경우에는 부부의 충신문과 열녀문이 동시에 세워졌다. 충열각이 위치해있는 정문리의 지명은 한명윤, 박행장이 정려받은 것에서 유래한 것이다.

[위치]

경기도 화성시 양감면 정문회화로 163-1[정문리 189-6]에 위치한다.

[변천]

현재의 충열각 건물은 1945년 5월 중건되었다.

[형태]

충열각 건물은 팔작지붕에 방풍판이 달린 겹처마집이다. 정문 우측으로 한명윤과 박행장의 행적을 새긴 유적비가 있다. 충열문의 규모는 정면 3.24m, 측면 2.09m이다.

[의의와 평가]

충열각에 나타난 한명윤과 부인 박행장의 일생은 조선 시대 충신과 열녀의 대표적인 모습이라 할 수 있다. 한명윤임진왜란 당시 구국의 목적으로 의병활동을 함으로써 충신의 모습을 보였고, 박행장은 왜적이 침입하자 도망하지 않고 스스로 목숨을 끊음으로써 열녀의 의지를 보였다. 1986년 5월 20일 화성시 향토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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