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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600725
한자 李奎善
이칭/별칭 이귀선(李貴善)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기도 화성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이혜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85년 5월 5일연표보기 - 이규선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19년 3월 28일 - 이규선 송산면 독립만세운동 주도
활동 시기/일시 1923년~1928년 - 이규선 대한민국 임시정부 군자금 모집 활동
활동 시기/일시 1931년 1월 29일 - 이규선 군자금 모집으로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12년형을 판결받아 복역
몰년 시기/일시 1941년 9월 15일연표보기 - 이규선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68년연표보기 - 이규선 건국훈장 독립장 추서
거주|이주지 경기도 수원군 송산면 중송리[현 경기도 화성시 송산면 중송리] 365번지지도보기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대표 경력 송산면 독립만세운동 주도|대한민국임시정부 군자금 모집

[정의]

경기도 화성시 송산면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이규선(李奎善)[1885~1941]은 1885년 5월 5일 태어났다. 본적은 경기도 수원군 송산면 중송리[현 경기도 화성시 송산면 중송리] 365번지이다. 이귀선(李貴善)이라고도 불렸다. 1919년 3월 28일 홍면옥(洪冕玉)·홍효선(洪孝善)·예종구(芮鍾九) 등과 함께 송산면의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3월 28일은 송산면 사강리(沙江里)의 장날이어서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었는데, 그 곳으로 가서 만세를 부르라고 하였다. 또한 서신면(西新面)·송산면(松山面)의 주민 200여 명을 집합시키고 태극기를 들고 독립만세를 고창하였다. 만세시위를 저지하던 일본인 순사부장 노구치 고조[野口廣三]를 처단하였으며, 체포망을 피하여 만주로 망명하였다. 1923년부터 1928년까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밀령을 받아 세 차례에 걸쳐 입국하여 군자금을 모집하였으며, 1928년 8월 사리원에서 체포되어 10일간 구류 처분을 받기도 하였다. 1931년 1월 군자금 모집을 위한 대대적인 활동을 전개하다가 체포되었고, 1931년 1월 29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12년의 판결을 받았다. 이후 서대문형무소에서 복역하다가, 1941년 9월 15일 옥사하였다.

[상훈과 추모]

옥중 순국한 사실이 확인되어 1968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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