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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600756
한자 洪南厚
이칭/별칭 주범,周範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기도 화성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이혜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71년 4월 17일연표보기 - 홍남후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09년 - 홍남후 사립 명륜학교(明倫學校)의 교사 근무
활동 시기/일시 1919년 3월 28일 - 홍남후 송산면 독립만세시위 참여
몰년 시기/일시 1924년 10월 11일연표보기 - 홍남후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90년연표보기 - 홍남후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출생지 경기도 수원군 송산면 삼존리[현 경기도 화성시 송산면 삼존리] 233지도보기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정의]

경기도 화성시 송산면 일대의 3·1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

[가계]

홍익생(洪益生)의 15세손, 묵재(黙齋) 홍언필(洪彦弼)의 12세손, 인재(忍齋) 홍섬(洪暹)의 11세손이며, 아버지는 홍근(洪瑾)이다.

[활동 사항]

홍남후(洪南厚)[1871~1924]는 1871년 4월 17일 경기도 수원군 송산면 삼존리[현 경기도 화성시 송산면 삼존리] 233번지에서 태어났다. 1909년 공의(公議)에 의해 경기도 남양군에 있는 사립 명륜학교(明倫學校)의 교사로 추천받아 근무하였다. 1919년 3월 28일 홍문선(洪文善)·홍관후(洪寬厚)·홍승한(洪承漢) 등 1,000여명과 함께 송산면사무소 뒷산과 그 부근에서 태극기를 게양하고 만세를 고창하였다. 만세시위를 탄압하기 위하여 출동한 순사 노구치 고조[野口廣三]가 홍면옥(洪冕玉)을 체포하는 과정에서 총상을 입히자, 왕광연(王光演)·홍명선(洪明善)·홍문선· 홍관후 등과 함께 노구치 고조를 처단하기로 결심하고 돌을 투척하거나 몽둥이로 쳐서 처단하였다. 1920년 4월 7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요, 살인, 보안법 위반 등의 혐의로 징역 7년의 판결을 받았다. 복역 중 병을 얻어 1923년 가출옥하였고, 이듬해인 1924년 10월 11일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송산면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한 공적이 확인되어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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