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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600414
한자 華城 馬霞里 古墳群
영어공식명칭 Hwaseong Maha-ri Gobungun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고분
지역 경기도 화성시 봉담읍 상방길 68[마하리 산40]
시대 고대/삼국 시대
집필자 김진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96년 - 화성 마하리 고분군 호암미술관에서 발굴 조사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99년 - 화성 마하리 고분군 서울대학교 박물관 및 숭실대학교 박물관에서 발굴 조사
문화재 지정 일시 2003년 8월 29일연표보기 - 화성 마하리 고분군 사적 지정
소재지 화성 마하리 고분군 - 경기도 화성시 봉담읍 상방길 68[마하리 산40]지도보기
성격 고분군
양식 널무덤|덧널무덤|돌덧널무덤|돌방무덤|독무덤
크기(높이,지름) 198~275㎝[널무덤 길이]|110~165㎝[널무덤 너비]|395㎝[덧널무덤 길이]|240㎝[덧널무덤 너비]|210~410㎝[돌덧널무덤 길이]|120~220㎝[돌덧널무덤 너비]|680㎝[돌방무덤 길이]|475㎝[돌방무덤 너비]
관리자 문화재청|화성시
문화재 지정 번호 사적

[정의]

경기도 화성시 봉담읍에 있는 삼국 시대 고분군.

[위치]

화성 마하리 고분군태봉산[223.8m]에서 남서쪽으로 뻗어 나가는 능선상에 있다. 고분군이 자리한 곳은 해발 80~100m 정도의 구릉상이며, 주변 지역도 비슷한 지형의 낮은 구릉 지대를 형성하고 있다. 고분군이 자리한 구릉은 '말무덤'이라고도 불린다. 고분군의 남쪽에는 마하리 마을 회관을 비롯하여 현대 근린 생활 시설들이 들어서 있으며, 북쪽도 개발되어 원지형이 남아있지 않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화성 마하리 고분군은 경부고속철도 철로 건설 과정에서 조사되었다. 1996년 호암미술관에서 일부 지역에 대해 발굴 조사를 하였고, 서울대학교 박물관에서도 1996년 조사에 착수하였으나 이내 철수하였다. 이후 1999년에 서울대학교 박물관과 숭실대학교 박물관에서 재조사하였다. 조사 결과 호암미술관 조사 지역에서 널무덤 5기, 덧널무덤 1기, 돌덧널무덤 21기가 확인되었고, 서울대학교 박물관과 숭실대학교 박물관 조사 지역에서는 널무덤 10기, 독무덤 1기, 돌덧널무덤 28기, 돌방무덤 1기가 조사되었다.

[형태]

화성 마하리 고분군에서 조사된 고분은 총 67기이다. 67기 중 널무덤은 총 15기이며, 무덤 내부의 한쪽 공간에 토기나 철기 등의 유물을 부장하였다. 서울대 7호 널무덤은 묘의 서쪽 벽체를 굴착하고 부장 공간을 별도로 마련한 형태이다. 덧널무덤은 호암미술관 조사 지역에서 1기 확인되었다. 널무덤보다 규모는 크며, 묘 내부의 나무곽을 ‘ㅂ’자 형태로 짜서 넣었다. 부장 유물은 토기나 벨트. 창, 도끼. 낫, 못, 손칼 등이다.

돌덧널무덤은 49기가 조사되었다. 벽체는 대부분 넓적한 깬돌을 눕혀서 쌓았으나, 서울대 6·7·23호, 호암 5·23호는 돌을 세워서 쌓거나 1단은 세워서 쌓고 2단부터 눕혀서 쌓아 올린 형태이다. 마하리 고분군 돌덧널무덤의 가장 큰 특징은 유물을 넣을 부장 공간을 측면 벽체의 외부에 조성한 것이다. 서울대 18·22·24호, 호암 5·8·12·21호 등은 부장 공간을 측벽 밖이나 모서리 쪽 밖에 만들어 유물을 부장하였다.

돌방무덤은 1기가 조사되었는데, 형태는 장방형이다. 돌방무덤은 연도[들어가는 입구]와 현실로 구분되는데, 연도는 남동쪽 모서리 부분에 치우쳐서 조성되었다. 현실은 깬돌을 8단 정도 쌓아서 벽체를 조성하였다. 바닥에 시상이 확인되는데 4구의 시신을 매장할 수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출토 유물]

화성 마하리 고분군에서는 호형 토기나 깊은 바리형 토기 등이 주로 부장되었다. 철기류는 창·화살촉 등의 무구류, 낫·도끼·손칼·못 등의 공구류, 교구 등의 마구류가 출토되었다. 장신구류는 유리구슬 등이 출토되었다. 돌방무덤에서는 전술한 유물 외에 금제 귀걸이나 청동으로 만든 장신구 등도 확인되었다.

[현황]

화성 마하리 고분군은 발굴 조사가 완료된 후 현지 보존 중이며, 2003년 8월 29일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그러나 사적으로 지정된 구역은 전체 고분군의 일부에 불과하다. 사적 구역 밖에 아직 조사가 진행되지 않은 고분들이 많이 있는데, 사적 구역 서쪽으로 4~5기의 대형 봉토분이 있는 것으로 보고되었다. 또 동편에서도 돌덧널무덤이나 돌방무덤이 다수 발굴되고 있는 상황이다. 잔여 지역에 대한 조사가 진행될수록 유적의 전체적인 모습이 드러날 것으로 기대된다.

[의의와 평가]

화성 마하리 고분군은 한성 백제 지역 묘제가 널무덤에서 덧널무덤, 돌덧널무덤을 거쳐 돌방무덤으로 변화하여 가는 계기적 발전 과정을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 백제 묘제의 변천 과정은 물론 화성 지역 세력의 백제 편입 과정을 연구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유적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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