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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Korean Independent Movement』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600488
영어공식명칭 The Korean Independent Movement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문헌/단행본
지역 경기도 화성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박철웅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간행 시기/일시 1920년연표보기 - 『The Korean Independent Movement』 간행
성격 사진첩
저자 상하이 임시 정부 대한적십자회
간행자 상하이 임시 정부 대한적십자회

[정의]

1920년 대한적십자회에서 간행한 3·1운동 영문 화보집.

[편찬/간행 경위]

『The Korean Independent Movement』는 상하이 임시 정부에서 조직한 대한적십자회가 3·1운동 때 일제가 저지른 만행을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해 1920년 간행하였다. 식민지 조선에는 한국 적십자회를 흡수한 일본 적십자회가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 그러나 일본 적십자회는 1919년 4월 15일 경기도 수원군 향남면[지금의 화성시 향남읍]에서 발생한 제암리사건과 같은 학살 사건들을 묵과하고 있었으며, 되려 서울의 미국 적십자가 피해자들을 원조하고 있는 형편이었다. 이에 대한적십자회는 상하이한인교회를 돕던 조지 필드 피치(George Field Fitch) 목사의 조력을 받아 3·1운동의 모습을 담은 영문 사진집 『The Korean Independent Movement』를 간행하였다. 사진집에는 1919년 4월 15일의 학살 사건으로 잿더미가 된 제암리 일대의 현장 사진도 포함되어 있는데, 스코필드(Frank W. Schofield) 박사가 찍은 것이다.

[서지적 상황]

『The Korean Independent Movement』는 가로 23㎝, 세로 15㎝의 신국판 크기이며, 표지를 포함하여 총 52페이지로 구성되어 있다.

[구성/내용]

『The Korean Independent Movement』는 따로 목차가 있지는 않지만,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서문에 해당하는 첫 부분에는 3·1운동이 발발한 사실과 일제의 탄압 상황, 3·1독립선언서의 공약삼장 및 선언서의 주요 내용을 영어로 번역하여 수록하였다. 두 번째 부분에는 총 34장의 사진이 수록되어 있는데, 3·1운동 시위 모습과 일제의 만행을 담은 사진이 31장이며, 나머지 3장은 대한적십자회와 독립문을 찍은 사진이다. 마지막 부분에는 1919년 7월 1일 발기한 상하이 대한적십자회의 발기문과 발기자 명단, 조직 상황을 서술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The Korean Independent Movement』는 영문으로 간행되어 상하이의 외국인은 물론, 프랑스와 미국의 도서관·대학 등에 다수 전달되었다. 그 결과 상하이 대한적십자회는 일제의 만행을 인도주의적 관점에서 국제 사회에 호소할 수 있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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