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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600912
한자 天主敎
분야 종교/천주교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지역 경기도 화성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정종득

[정의]

경기도 화성시에서 활동하는 로마 가톨릭교.

[화성시의 천주교 현황]

2020년 기준 경기도 화성시에 위치한 천주교 성당은 총 24곳[기산, 기안, 남양, 동탄능동, 동탄반송동, 동탄송동, 동탄숲속, 동탄영천동, 동탄장지동, 마도, 발안, 병점, 봉담, 비봉, 사강, 상신, 서신, 신남, 안녕, 왕림, 은계동, 정남, 조암, 향남]이 있다. 24곳 본당에는 26명의 사제와 12명의 수도자가 화성 지역 천주교 신자들의 신앙생활을 돕고, 지역 선교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화성 지역 성당에서 담당하는 신자 수는 총 47,217명으로, 화성시 인구 대비 5~6% 정도이다. 화성시에는 천주교 성지도 2곳[남양성모, 요당리]이 있으며, 전담사제로 성지마다 1명의 사제가 파견되어 성지 성역화와 성지를 방문하는 순례자를 위한 여러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성당과 성지 외에도 화성시에는 여러 천주교 기관이 자리하여 주어진 역할을 하고 있다. 수원가톨릭대학교[봉담읍]는 사제를 양성하는 신학교로 수원교구, 춘천교구, 원주교구 등의 교구 사제와 수도회 사제가 되고자 하는 이들, 신학과 철학을 배우고자 하는 수도자들과 평신도를 교육하고 있다.

피정 센터로는 ‘갓등이 피정의 집’[봉담읍], ‘기천리 베네딕도 교육원’[팔탄면], ‘아씨시 피정의 집’[팔탄면]이 있다.

이주민 상담 센터인 ‘까리따스 이주민 화성센터’[향남읍], 연구 기관으로 ‘한국 그리스도 사상 연구소’[봉담읍]도 있다.

천주교에서 운영하는 사회복지시설로는 ‘남양그룹홈’[남양읍], ‘행복한일터’[무송동], ‘해뜨는마을’[봉담읍], ‘화성시 서부종합사회복지관’[송산면], ‘화성시외국인복지센터’[향남읍], ‘둘다섯해누리’[서신면], ‘별빛누리그룹홈’[서신면], ‘성녀루이제의집’[정남면], ‘애덕가정’[우정읍], ‘성심어린이집’[향남읍] 등이 있다.

[느지지 출신의 순교자, 장 토마스]

한국 천주교는 ‘103위 성인’과 ‘복자 124위[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가 교황청 시성성의 심의를 통과해, 교황이 집전한 시성식과 시복식을 거쳐 공적으로 경배하고 있다. 1984년 5월 4일 한국을 방문했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서울 여의도광장에서 ‘103위 시성식’을 통해 103위 성인이 탄생시켰고, 2014년 8월 17일에는 교황 프란치스코가 ‘124위 시복식’에서 복자를 탄생시켰다. 가톨릭 교회는 살아있을 때 모범적으로 성덕을 닦은 이와 순교자 중에서, 평판이 높아 본받을만한 인물을 우선 ‘하느님의 종[servus Dei]’으로 선정한다. 이후 시복시성 절차를 거쳐 시복된 ‘하느님의 종’은 ‘복자[福者 Beatus, Beata]’로, 시성된 ‘하느님의 종’은 ‘성인[聖人 Sanctus, Sancta]’으로 지칭한다. 성인은 세계 가톨릭 교회 어디서나 공경의 대상이 되고, 복자는 교황이 허락한 특정 교구와 지역, 국가, 또는 수도, 단체 내에서 이뤄진다. 이러한 절차로 ‘103위 성인’은 세계 가톨릭 교회에서 공적 경배를 하고, ‘124위 복자’는 한국 교회에서만 공적 경배를 하고 있다. 2021년 6월에 한국천주교주교회의에서는 추가로 ‘하느님의 종 이벽 요한 세례자와 동료 132위’ 시복을 위해 시복 예비심사 문서를 교황청에 제출해서 추가 시복시성 절차를 이어가고 있다.

2014년 8월 17일에 시복된 124위의 순교자 중 한 명인 장 토마스[1815~1866]는 경기도 수원 느지지[현 경기도 화성시 양감면 요당리]에서 태어난 인물로, 1866년 병인박해 당시 51세 나이로 순교했다.

시복 절차를 거쳐 느지지[현 가톨릭 화성시 양감면 요당리] 출신의 순교자 ‘하느님의 종’ 장 토마스는 2014년 8월 17일에 복자로 시복되어, 한국 천주교회의 공적 경배를 받고 있다. 장 토마스는 1866년 병인박해로 순교한 성 장주기 요셉의 6촌 형제로, 그와 함께 천주교에 입교해 교회 일을 도운 인물이다. 장 토마스 친척과 친구들은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 교회의 일을 하는 장 토마스를 향해 ‘착한 사람’이라고 일컬었다. 당시 국법으로 금지된 천주교를 믿는다는 것은 잡혀서 배교하지 않으면 죽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장 토마스 역시 포졸에게 체포되어 진천 관아에서 문초와 모진 형벌을 받았다. 청주로 이송되어 문초와 형벌을 받았지만, “만 번 죽어도 천주교를 배반할 수는 없습니다.”라 답하고, 장대(將臺)[현 충청남도 청주시 남문로 2가]에서 51세의 나이로 순교했다.

[갓등이공소(경기도 화성시 봉담읍 왕림리)]

1830년대까지 경기도 화성시 지역의 대표적인 천주교 교우촌이면서 선교사제의 사목방문을 받은 공소는 수원 갓등이와 양간이다. 갓등이공소가 있던 ‘왕림촌’[旺林村, 현 봉담읍 왕림리]은 수원유수 박기수(朴綺壽)가 1831년 편찬한 『화성지[華城誌]』에도 언급될 정도로 유서 깊은 마을이다. 천주교와 관련된 기록은 1839년 앵베르 주교 서한에 처음으로 등장한다. 이후 1888년 갓등이본당[현 왕림성당] 설립 때까지 교우촌 또는 공소 이름으로 ‘갓등이’란 명칭을 찾아볼 수 있다. 이 지역에 교우촌이라 불리우는 신앙공동체가 생겨난 때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현재 확인되는 가장 빠른 기록은 1839년 성 민극가 스테파노와 관련한 내용에서이다. 『기해병오 순교자 시복재판록』이라는 천주교 기록에 의하면, 민극가는 서울에서 갓등이로 이주해 재혼하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했다. 천주교 교리서인 『교리문답』을 가르치고 신자들의 신앙생활을 지도했다는 증언으로 볼 때, 민극가가 갓등이 지역에 살았던 대략적인 시기인 1829년 무렵이고, 이미 그 전부터 신앙공동체가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신앙공동체에 공소가 생긴 것은 선교사제가 조선으로 입국한 1830년대 이후다. 기해박해[1839년] 이전 갓등이공소를 방문한 선교사제는 성 앵베르[范世亨, 라우렌시오, 1796~1839] 주교다. 『앵베르 주교 서한』을 통해 앵베르 주교가 순회했던 지역을 알 수 있는데, 수리산, 은이, 양간에 있던 공소를 거쳐 1839년 1월 25일 갓등이공소에 머물렀고, 이때 서울에서 박해가 일어났다는 소식에 서울로 올라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후 앵베르 주교는 6월 3일 박해를 피해 배편으로 ‘수원 상괴’로 피신했고, 포졸에게 체포된 8월 11일까지 그곳에 숨어있다가 1839년 9월 21일 서울 새남터에서 순교했다. 앵베르 주교의 피신지로 기록된 ‘수원 상괴’의 지리적 위치는 현재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추정지로 경기도 화성시 지역에서는 양감면 용소리우정읍 매향리, 서신면 송교리, 우정읍 운평리, 우정읍 조암리, 장안면 사랑리사곡리 등이 언급되고 있다.

1866년 병인박해 때에는 갓등이 출신 최 야고보가 충청 해미 삼진이로 이주해 살 때 잡혀 순교했고, 청주 출생의 한 안드레아는 갓등이로 피신해 오기도 했다. 한 안드레아는 갓등이에도 박해가 심해지자 다시 남양 안길이[현 향남면 하길리]로 피신했다가 그곳에서 잡혀 순교했다.

[양간공소(경기도 화성시 양감면)]

갓등이공소와 함께 경기도 화성 지역에 있었던 큰 신앙공동체는 양간공소였다. 양간공소는 1838~1839년 기록에서부터 확인할 수 있는데, 수원 느지지[현 경기도 화성시 양감면 요당리] 출신의 성 장주기 요셉과 복자 장 토마스, 장 씨 일가 순교자를 볼 때 1820년대부터는 신앙공동체가 존재했을 것이라 할 수 있다. 기록을 통해 1838년 성 모방[羅伯多祿, 베드로, 1803~1839] 신부가 다녀갔으며, 1839년 앵베르 주교의 방문도 확인할 수 있다. 앵베르 주교의 방문 당시 양간공소 회장은 충청도 정산(定山) 출신의 성 정화경 안드레아였다. 성 정화경 안드레아는 신심이 매우 두터웠으며 자신의 집을 공소로 썼다. 환도골[현 향남읍 백토리] 출신의 김 도로테아 가족은 모두 양간으로 이주해 살았고, 멀리 샘골[현 경기도 평택시 현덕면 기산리로 추정]에 살던 오 바실리오라는 사람이 성사를 보기 위해 양간으로 와 앵베르 주교와 성 정하상 바오로를 만났다는 기록도 찾아볼 수 있다. 1839년 앵베르 주교가 박해를 피해 ‘수원 상괴’로 피신하게끔 도운 인물은 양간공소 회장 정화경과 그 매부 손경서 안드레아였다. 배교한 김여상의 속임수에 넘어가 은신처가 밝혀지자, 앵베르 주교는 정화경 회장을 비롯한 신자들을 놓아준다는 약속을 받고 8월 11일 자진해서 포졸에게 붙잡혔다. 이후 서울로 이송될 때 돌담거리[현 경기도 화성시 봉담읍 유리] 주막에서 정화경 회장을 돌려보냈다는 기록이 있다.

이처럼 경기도 화성시 지역은 유서깊은 교우촌 갓등이와 양간을 중심으로 천주교가 일찍이 자리한 곳이다. 왕림성당갓등이공소에서 1888년 본당으로 승격했으며, 천주교 수원교구에서 첫 본당이면서 모[母]본당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또한, 천주교 신앙을 지키기 위해 순교한 이들이 살았던 곳으로 가톨릭 시복시성 절차를 거쳐 성인과 복자로 공경받는 이들을 탄생시킨 곳이기도 하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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