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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600961
한자 新宗敎
분야 종교/신종교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지역 경기도 화성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한상우

[정의]

경기도 화성 지역에서 활동하는 비교적 최근에 형성된 종교.

[개설]

근대 이후 화성시에 중요한 궤적을 남긴 대표적인 신종교로는 원불교,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통일교], 천도교를 들 수 있다. 천도교는 일제 강점기 화성의 민족운동과 사회교육에 중요한 역할을 했으나, 현재 활동 상황이 확인되지 않는다. 화성의 통일교 야목교회는 교단 내에서 성지로 불리며 교단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원불교동탄신도시 건설에 발맞추어 교세를 확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원불교]

원불교는 전라남도 영광에서 출생한 박중빈(朴重彬)[1891~1943]이 1916년 창시한 종교로, 불교계에 만연했던 여러 문제점들을 혁파하고 미래 시대에 맞는 종교를 주장하며 창시되었다. 원불교는 우주의 근본원리인 일원상(一圓相)의 진리를 신앙의 대상과 수행의 표본으로 삼아 낙원 세계를 실현시키려는 이상을 표방하고 있다. 원기 1년이 되는 1916년 이후 원불교는 지속적으로 발전하여, 1924년에는 전라북도 익산에서 불법연구회를 창설하였고, 1938년에는 『불교정전(佛敎正典)』을 간행하였다. 이처럼 원불교는 일종의 민족 종교로 창립되었으며, 현재 군종 장교를 배출하는 등 한국의 4대 종교 가운데 하나로 여겨지고 있다.

원불교는 화성에 화성교당과 동탄교당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 두 교당은 경기인천교구청의 39개 교당에 속한다. 그 가운데 원불교 화성교당은 2001년 1월 12일 설립되었으며, 화성시 남양읍 남양로930번길 34-8[북양리 204-11]에 위치한다. 화성교당은 우주만유(宇宙萬有)의 본원(本源)이자 제불제성(諸佛諸聖)의 심인(心印)이며 일체중생(一切衆生)의 본성(本性)이라고 여겨지는 법신불 일원상(法身佛 一圓相)이라는 진리 아래, 신앙과 도덕 훈련으로써 중생을 낙원으로 인도하는 것을 목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매주 일요일 일반 정례법회와 매월 첫째 주 일요일 월초기도, 둘째 주 보은기도 및 셋째 주 교화단 활동으로 교화 사업을 하고 있으며, 원광 한가족 노인요양시설은 노인요양공동생활가정, 주야간보호, 방문요양 등 지역사회 어르신을 대상으로 노인복지사업 업무를 하고 있다. 또 화성교당은 군종 장교들의 훈련에도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현재의 화성교당과 요양원은 2008년 준공되었고, 교당교도 중 재적교도는 총 221명 활동 교도는 45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화성의 또 다른 원불교 교당인 동탄교당은 동탄신도시 개발과 함께 2014년 03월 14일 경기도 화성시 동탄반송1길 40-12[반송동 4-4]에 설립되었다. 동탄교당에는 약 30명의 교도들이 중심이 되어 원불교 교리를 실천하며 출가 교무와 재가 교도가 함께 정기적으로 법회를 열고 있으며, 천도재, 제사, 수시기도, 개인상담, 마음공부, 선·요가 등을 진행하고 있다. 원불교 동탄교당에는 초대 김혜옥 교무를 거쳐, 현재 2대 최희선 교무가 근무하고 있다.

[천도교]

1860년 최제우에 의해 개창된 동학에 뿌리를 둔 천도교는 민족 운동과 개화 운동에 앞장서 일제강점기 역사에 중요한 발자취를 남겼다. 20세기 초 화성 지역에 전해진 천도교는 화성의 3·1운동 확산에 큰 역할을 하였다. 그 결과 천도교는 일제의 탄압을 받아 큰 피해를 입었는데, 김흥렬을 비롯한 천도교인들이 제암리고주리 등지에서 희생되었다.

이후로도 천도교는 민족운동에 적극 참여하여 신간회 수원지회 창립에 천도교청년동맹 수원동맹 및 남양동맹이 참여하였으며, 신간회의 화성 조직도 천도교인들이 중심이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천도교는 장안면 기린동과 독정리, 우정면 화산리, 영흥도, 동탄면 방교리 등지에서 포교를 진행하여 1920년대 초에는 화성의 남양교구가 경기도 내에서 가장 규모가 큰 교구가 되었으나, 1930년대 초반에는 수원교구와 통합되었고, 현재에는 화성 내에서 교단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는지 불명확하다. 다만 천도교는 3·1운동 당시 희생되었던 천도교 순국 선열들을 기리기 위한 합동위령식 등의 행사를 매년 화성의 제암리 문화관 등에서 개최하고 있다.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일명 통일교]는 평안도 정주에서 태어난 문선명(文鮮明)[1920-2012]에 의해 시작되었다. 1954년 5월 1일 성동구 북학동(지금의 중구 신당동)에서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世界基督敎統一神靈協會), 약칭 통일교라는 이름으로 교단을 창립하였다. 이후 국내는 물론 일본과 미국 등지에서 교세를 확장하여 신도 수가 교단 추산 300만에 이른다고 한다. 2012년 창시자인 문선명의 사망 이후, 문선명의 부인 한학자(韓鶴子)가 총재로 활동 중이며 교명 역시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으로 변경하였다.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의 화성 전교는 차상순에 의해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차상순은 문선명이 북한 지역에서 활동할 당시부터 신도가 된 듯하나, 6·25전쟁 이후 문선명의 생사여부를 모른 상태에서 화성으로 피난하여 매송면 야목에서 기성 개신교 교단인 감리교의 목사로 활동하였다. 이후 문선명의 근황을 확인하고는 자신이 시무하던 교회의 신도들에게 통일교 신앙을 전파하였으며, 1957년 4월 17일 야목 감리교회 신도 120명과 함께 통일교회로 단체로 개종하게 되었다. 이것이 현재 화성시 매송면 야목리 363-1에 위치한 통일교 야목교회의 시작이다. 야목교회는 2012년 새로 건축되었으며, 현재는 황재성씨가 교회장을 맡고 있다.

통일교 역사에서 화성의 야목교회는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장소이다. 우선 야목교회는 집단 개종 이후, 통일교 전교의 중심지가 되어 교리 수련과 전도사 훈련 등을 통해 차세대 지도 양성에 앞장섰다. 1959년에는 교주인 문선명이 직접 야목에서 모내기를 하였으며, 여름에 개최된 제2회 전국전도사수련회에서는 야목의 연못과 바닷가에서 교육과 훈련이 진행되면서 일명 '해양섭리'가 시작된 곳이기도 하다. 이 과정에서는 문선명이 직접 그물을 치고 고기를 잡는 등의 모습을 보이며 전교에 힘쓴 곳이었다. 또 문선명은 야목교회를 자신의 고향인 정주에 빗대어 제2의 정주라고 칭하였으며, 남북의 지도자들이 이곳에 와서 교육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문선명은 1983년에 야목교회를 다시 방문하여 국제수련소와 교회 건축을 지시했다고 알려졌다. 이러한 까닭으로 현재 야목교회는 일종의 통일교 성지로 여겨져 야목성지로 불리고도 있다. 추가적으로 야목교회는 현재 교단에서 참어머니로 불리며 총재를 맡고 있는 한학자가 간택된 장소로도 의미를 가지며, 통일교 새마을 운동의 시발점이라는 점에서도 중시되고 있다.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은 화성에 또 하나의 교회를 두고 있는데, 바로 경기도 화성시 매송면 화성로 2238-16의 화성교회이다. 다만 화성교회의 정보는 교단측의 홈페이지에서도 잘 확인되지 않아 현재 활동 중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참고문헌]
  • 『화성시사』 9(화성시사편찬위원회, 2020)
  • 선학역사편찬원(https://www.tphistory.net)
  •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https://www.ffwp.org)
  • 원불교신문(http://www.wonnews.co.kr)
  • 원불교 중앙총부(http://www.wonbuddhism.or.kr)
  • 천도교(http://www.chondogyo.or.kr)
  • 원불교 화성교당 및 동탄교당 교무 인터뷰(2021.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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