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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지리 장흥 고씨 집성촌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600866
한자 元池里長興高氏集姓村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전라남도 화순군 능주면 원지리
집필자 최성은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500년 - 장흥 고씨 고익침 원지리 입향
성격 집성촌

[정의]

전라남도 화순군 능주면 원지리에 있는 장흥 고씨 집성촌.

[명칭 유래]

이못 마을은 ‘인물(仁物)’ 즉 큰물에서 변용된 지명으로 큰물을 한자로 표기한 것이 ‘인물’이고 ‘인물’이 ‘이못’이 된 것이다. ‘이못’은 다시 한자로 잉어 이(鯉), 못 지(池)자를 써서 이지리라 한다. 원산은 본디 도르메라 부른다. 마을 앞 조산을 돌아간다는 의미로 ‘도르메’라 한다.

[형성 및 변천]

고익침(高益沈)[1472~1549]을 입향조로 하여 이어오는 전라남도 화순군 능주면 원지리장흥 고씨 집성촌이다. 1500년(연산군 6) 무렵 고익침이 산불악에서 도르메로 입향하여 정착하였다. 후손은 도르메와 이못을 중심으로 세거하고 있다.

고현(高鉉)[1568~?]의 자는 군섭(君燮)이고 호는 심재(心齋)이다. 청남 고명진(高明進)의 아들이며 우계 성혼(成渾)의 문인이다. 성품이 순수하고 경사를 두루 섭렵하였다. 1606년(선조 39) 생원과 진사에 합격하였다. 세자궁에 8년 동안 있으면서 윤지성, 신열도와 더불어 아침저녁으로 강론하니 공부가 더욱 깊어졌다. 1619년에 문홍헌(文弘獻)[1551~1593]을 포증하는 일을 상소하였고 산림에 은거하여 종신토록 자취를 감추고 후학을 가르쳤다.

고경리(高景离)의 자는 광우(光宇)이고 호는 둔암(遯庵)이다. 고현의 아들이며 은봉 안방준(安邦俊)의 문인이다. 병자호란 때 의분을 떨치고 큰 담력으로 안방준을 따라 난을 평정하는데 나갔다. 강화가 이루어졌다는 소식을 듣고 통곡하고 스스로 마음을 다스렸다. 학문을 강론하는 데 의리를 명쾌하게 판별하였으며 강당을 세우고 과규를 만들어 후학을 양성하여 유풍을 진작시켰다.

[자연환경]

원산 마을은 동쪽과 북쪽으로는 산 구릉이 형성되어 있다. 서쪽과 남쪽은 지석천이 흐르며 그 천변에 평야를 형성하고 있다. 지석천을 경계로 능주면, 도곡면과 구분되고 있다.

[현황]

2013년 현재 40가구 66명이 장흥 고씨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1948년에 건립한 장흥 고씨 재각인 경모각이 있다. 1980년 개발 위원장 고광희 공적비가 건립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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