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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리 진주 정씨 집성촌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600875
한자 西酉里晉州鄭氏集姓村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전라남도 화순군 백아면 서유리 서유 마을
집필자 최성은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734년 - 진주 정씨 정덕하 서유리 입향
성격 집성촌

[정의]

전라남도 화순군 백아면 서유리에 있는 진주 정씨 집성촌.

[명칭 유래]

서유 마을은 동유 마을 보다 늦게 형성되었다. 동유가 본디 독들이, 닭덜이라 불렸으며 한자로 표기하면서 닭 유(酉)자를 써서 동쪽은 동유, 서쪽은 서유라 불렀다.

[형성 및 변천]

진주 정씨 정덕하(鄭德夏)[1680~?]를 입향조로 하여 세대를 이어오는 전라남도 화순군 백아면 서유리진주 정씨 집성촌이다. 정덕하(鄭德夏)의 자는 군장이고 호는 복암이다. 충장공 정분(鄭苯)의 후손이며 정명좌의 아들이다. 문장이 당대에 뛰어 났으며 1734년(영조 10)에 복천의 산수가 수려함을 사랑하여 나주 삼도 신동에서 네 아들을 거느리고 동복현 외북면에 정착하여 서유 마을이 생겨나게 되었다.

정동한(鄭東翰)[1701~1756]의 자는 내경(乃卿)이고 호는 임천(林泉)이다. 승사랑 정덕하의 아들이다. 처음 박광일(朴光一)에게 배우고 커서는 도암 이재(李縡)에게 수업하여 학문이 깊었다. 백수 양응수(梁應秀), 목산 이기경(李基敬), 활효재 박헌가(朴獻可), 절우 박신극(朴新克)과 교유하였다. 1732년(영조 8) 문과에 급제하여 사헌부 지평, 장례원 판결사를 지냈다. 문집이 있고 문충사에 향사되었다.

죽림 정동윤(鄭東潤)은 정덕하의 아들로 통덕랑이다. 형 정동한(鄭東翰)과 더불어 독실히 경서를 공부하여 동당시에 여러 번 합격하였으나 회시에 매번 낙방하니 사람들이 애석하게 생각했다. 정필충(鄭弼忠)의 자는 사종(士宗), 호는 청계(聽溪)이다. 정동한의 아들로 품성이 정아하고 기국이 뛰어나며 효우가 더욱 독실하여 당시의 모범이 되어 통덕랑에 가자(加資)되었다.

정기충(鄭麒忠)의 자는 사필(士弼)이고 호는 임정(林亭)으로, 정동윤의 아들이다. 백부인 정동한에게 수업하여 행실이 독실하고 조행이 고결하며 통덕랑에 가자되었다. 정갑원(鄭甲源)의 자는 심언(深彦), 호는 도암(道庵)이다. 수산 정재겸(鄭載謙)의 아들이다. 품자가 수미하고 기상이 온화하였다. 경리에 잠심하여 깊은 뜻을 탐색하였다. 효우로 정사를 하여 수신제가에 모범되어 동몽교관으로 증직되었다. 정완표(鄭琓杓)[?~?]는 외북 면장과 북 면장을 역임했고 정용철(鄭鏞轍)[1915~1977]은 북 면장을 역임했다.

[자연환경]

서유 마을의 동쪽으로는 북에서 남으로 흐르는 동복천을 중심으로 진배들이 형성되어 있다. 서쪽에서 동쪽으로 형성된 두 개의 골짜기 입구에 마을이 있다. 동쪽을 제외한 나머지 방향은 대체로 산지로 형성되어 있고 서쪽으로 골짜기에 서유제 저수지가 있다.

[현황]

2013년 현재 50가구 80여 명이 진주 정씨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1986년에 지은 진주 정씨 사당인 추원재, 1992년에 건립한 금계정, 정용식이 건립한 운곡정이 마을에 있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20.10.08 현행화 북면→백아면
이용자 의견
윤** 2020년 1월 1일부터 북면에서 백아면으로 변경 되었습니다. 수정해주세요.
  • 답변
  •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을 이용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기하신 의견에 따라 내용수정을 완료했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2020.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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