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지 사족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800501
한자 在地士族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전라북도 진안군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하태규

[정의]

조선 시대 진안 지역에 근거를 두고 활동하던 지배 계층.

[개설]

재지 사족은 향촌의 지배 세력으로 수도에서 관직에 종사하다가 국가 변란기 또는 정치적 변혁기 등 특정 시기에 본향(本鄕)으로 낙향한 가문과 다른 지역으로부터 처향(妻鄕)·외향(外鄕) 등의 이유로 이주하여 재지 기반을 확보한 계층으로 분류할 수 있다. 16세기 중·후반부터 향촌 사회에서 중소 지주로서의 경제적 기반과 사족으로서의 신분적 지위를 바탕으로 향촌 사회의 운영권을 장악하여 그들 중심의 지배 체제를 구축하였다. 재지 사족은 유향소를 조직하고, 서원을 건립하고, 향약(鄕約)·동약(洞約)·동계(洞契) 등을 실시하면서 향촌의 지배력을 확립하였다.

[진안 지역의 재지 사족]

조선 시대 초기 진안 지방에는 진안현의 토성인 이씨(李氏)·전씨(全氏)·백씨(白氏)·한씨(韓氏)·유씨(庾氏)와 마령 지방의 한씨(韓氏)·송씨(宋氏)·장씨(張氏)·가씨(價氏) 및 용담현의 고씨(高氏)·문씨(文氏)·임씨(林氏)·염씨(廉氏)·가씨(賈氏)·임씨(任氏) 등의 토착 성씨들이 존재하였다.

고려 말기와 조선 초기의 정치적 격변기를 맞아 진안 지역으로 낙향한 전주 최씨 최양(崔瀁)이나 세조 시기 단종 복위 사건을 계기로 진안 마령의 강정리로 들어온 천안 전씨 전극례(全克禮), 같은 시기 진안 지역의 북쪽에 들어온 사천 김씨 김만서(金晩緖) 등 많은 인물들이 진안 지역으로 낙향함으로써 그 자손들이 재지 사족으로 성장하였다. 『진안 군지』에는 진안 지역에 거주하는 재지 사족들의 계파와 내력이 기록되어 있다.

[진안 지역 재지 사족의 동향]

진안 지역의 재지 사족들 중 일부는 문·무과 급제자를 배출하면서 중앙 정계에 재진출하거나 생원·진사를 배출하면서 재지 사족으로서 위상을 유지하였다. 사천 김씨 김수(金粹)·김정(金精)과 함양 오씨 오빈(吳玭)천안 전씨 전동흘(全東屹)동래 정씨 정동협(鄭東俠) 등과 같이 임진왜란이나 병자호란 등 국가가 어려울 때 의병 창의 활동을 전개하였던 인물도 있다.

조선 후기 진안 지역의 재지 사족들은 마령의 구산 서원·영계 서원, 주천의 주천 서원, 안천의 화산 서원, 용담의 삼천 서원 등 각지에 서원을 건립하여 그 기반을 확대·강화하였다.

일본이 국권을 침탈하고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성수면 출신의 최제학(崔濟學)최익현·임병찬 등과 함께 항일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으며, 송병선(宋秉璿)의 문인인 김교성(金敎性)·이기회(李起晦) 등을 중심으로 진안 지역의 선비들과 친친계(親親契)와 현현계(賢賢契) 등을 조직하여 유림 세력을 규합하고 항일 정신을 고취하였다. 일제 강점기에는 경상남도 산청군 단성 지역 출신의 이도복(李道復)마이산에 들어와 지역 사림들과 함께 이산 정사를 건립하는 등 사회 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진안 지역의 재지 사족들은 정치 사회의 변동에 따라 점차 향촌에서의 지배력을 잃고 향촌 사회를 구성하는 친족 집단의 하나로 변질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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