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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내리-역사와 언어-지명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005T01005
한자 珍島邑 城內里-歷史와 言語-地名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전라남도 진도군 진도읍 성내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정호기박철웅황금연이옥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법정리
면적 198
인구(남) 492명
인구(여) 499명
가구수 411가구

[성내리의 지명]

군강(郡岡)[산] 성안에 있는 산으로 공원이 되었는데, 성이 있다.

성내(城內)[마을] 성내리를 줄여서 부르는 이름이다.

성내리(城內里)[마을] 성안, 성내라고도 부르며 진도읍성의 안쪽에 위치하고 있어 성안 또는 성내리라 하였다 한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 때 마을 이름이 처음으로 명명되었다. 진도군청, 진도등기소, 농협중앙회, 진도교육청 등 행정의 주요 기관들이 들어서 있다.

성동리(城東里)[마을] 성서리 동쪽에 있는 마을이다.

성안(城-)[마을] 성내리를 말한다.

옥거래[옥터][마을] 성동리 북쪽에 있는 마을로 옛날에 옥(獄)이 있었다. 제보자의 말에 의하면 예전에 읍(邑) 관사(官舍) 안에 옥이 있었다고 한다. 현재 이 지명은 거의 기억하지 못한다.

옥터[마을] 옥거래를 말한다. 옥거래 참조.

진도읍성(珍島邑城)[성] 성내리에 있는 진도의 옛 읍성으로 석축(石築)이 150m 가량 남아 있으며, 1437년경에 축조되었다고 한다. 현재 성 앞으로 진도군청 등이 자리하고 있다.

진태[진터] 성서리에 있는 마을이라 『지명총람』에는 기록되어 있다. 진도읍사무소 자료에 의하면, 성서리에 진터(陳-)가 있는데, 조선시대 군사훈련 집회장소로 이용된 곳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일제시대에는 5일 시장으로 이용되었다. 지금은 철마광장이라 명명하여 도로 및 각종 행사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한편 제보자의 말에 의하면 진터거리를‘나뭇거리’라고도 한다. 예전에 시장이 설 때 나무꾼들이 나무(땔감)를 지고 와서 팔았었기 때문에 그렇게 불렀다고 한다. 또한 예전에 진도의 남문이 있었다고 해서‘남문거리’라고도 불렀으나, 지금 젊은이들은 이 명칭을 몰라 거의 잊혀진 명칭이다.

철마광장 조 참고.

철마광장[광장] 현재 군청 앞에 있는 넓은 광장을 말한다. 진도읍 성내리에 소재해 있는 철마산성의‘철마’를 따서 붙인 이름이다. 진도읍사무소 자료에 의하면, 예전에는 이곳이 진터[진태]였으며 일제시대에는 5일 시장터로 이용되기도 하였다.

충혼각(忠魂閣)[비] 군강에 있는, 6·25 전쟁 전사자의 충혼비를 모시고 있다.

향현사[사당] 충혼각 아래에 있는 사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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