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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장마을-역사와 언어-유래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005T03004
한자 郡內面 龍藏마을-歷史와 言語-由來
이칭/별칭 용정,오룡쟁주,오룡장주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 용장리 용장마을
집필자 황금연

[용장리의 역사와 유래]

용장리(龍藏里)는 현재 행정구역상 진도군 군내면 속해 있다. 용장리는 법정리이며 동시에 행정리이기도 하다. 용장리는 1914년 행정구역개편 때 기왕의 용장리세등리 일부를 병합하여 군내면에 편입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용장리는『호구총수』(1789)의 기록에 의하면 진도군 군내면(郡內面) 27개 마을 중의 하나였다. 이 자료에는 용정리(龍井里)로 마을 명칭이 나타난다. 이는 『진도군지』(1999)에서도 확인된다. 『호구총수』에 용정으로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상당 기간동안 ‘용정’이라는 명칭으로 불렸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에 다시 용장리로 바뀌게 된다.

『구한국지방행정구역명칭일람』(1912)에 다시 군일면(郡一面)에 소속된 채 용장리로 나타난다. 아마도 1895년 전국이 23부제로 행정구역이 개편될 때 기존의 군내면이 군일면과 군이면으로 바뀌면서 용장리로 바뀐 것으로 보인다. 다시 1914년 전국 행정구역폐합 때에 군일면의 용장리세등리 일부를 합하여 용장리라 하고 군내면에 소속되었다.(『신구대조 조선전도부군면리동명칭일람』(1917) 참조할 것).

한 가지 주지할 일은 『호구총수』의 기록에 의존하여 용장리의 최초 마을 이름이 ‘용정(龍井)’이었을 것이라는 추정은 금물이다(용장리 마을 자료에 적혀 있다). 용장리라는 직접적인 마을 이름은 확인할 수 없으나, 1270년 8월 김통정, 배중손 등이 이끈 삼별초군이 주둔한 지역인 용장평(龍藏坪: 현재의 군내면 지역)에 왕온(王溫)을 모셨다는 『고려사』의 기록이나, 『여지도서』(1757)의 진도군 편에 있는 ‘용장성(龍藏城)’의 기록으로 미루어, 이 지역이 용정 이전에 용장으로도 쓰였을 것으로 추정하기 충분하다.

용장마을의 유래에 대해 『진도군지』(1999)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이 마을은 1000년경에 형성되었으며, 최초의 마을 주민은 홍(洪)씨라고 한다. 또한 이 마을은 오룡쟁주(五龍爭珠), 오룡장주(午龍藏珠)라 하여 명당이 있다고 전하면서 산세를 용(龍)으로 본다. 한때는 마을 이름을 용정(龍井)이라고도 했다.

이 마을은 고려 때에는 진도군의 소재지였으며, 마을 이름은 용이 구슬을 감추고(藏) 있다는 뜻이며, 용정은 용이 물을 좋아하기 때문에 우물 정(井)자를 붙였다고 한다. 한편, 미간행 진도군지(503쪽)에는 마을의 입향조를 남양홍씨로 구체적으로 기술하고 있어 『진도군지』의 기록을 보완하고 있다. 다만 마을 형성시기가 1772년에 이루어져 현재에 이르고 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앞서의 기술한 내용을 참고할 때 마을 형성 시기에 대한 기록은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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