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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마을-자연과 지리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005T05002
한자 義新面 斜上마을-自然과 地理
이칭/별칭 비끼내,빗내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전라남도 진도군 의신면 사천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철웅

[자연과 지리]

사천리전라남도 진도군 의신면에 속하는 지역으로서, 내가 비껴 흐르므로 비끼내, 또는 빗내라고도 하고, 이를 한자로 사천(斜川)으로 표기한 것이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사상리와 사하리, 논수동을 합쳐 지금의 사천리가 되었다. 진도읍에서 군도9호를 따라 왕무덤재를 넘어서, 논수동에서 좌측으로 군도15호를 따라가면 나오는 사천리는, 진도읍 남동방향으로 직선거리 4㎞ 지점에 있다. 의신면 소재지에서는 북북동 방향에 위치하며, 동쪽은 두무골재를 경계로 향동리와, 서쪽으로는 왕무덤재를 넘어 진도읍 쌍정리와 인접하고 있다. 북쪽과 남쪽은 산줄기로 가로막혀 있고 의신천으로 빠져나가는 하곡 남서부에 침계리로 가는 곡저가 빠져나가고 있다. 사상리는 진도군 최고봉인 첨찰산(485.2m)의 서남비탈면에, 의신천 상류인 사천을 따라 좌우 곡지에 동-서로 길게 입지하고 있다. 사하리는 북북서-남남동 방향의 빙골을 따라 길게 뻗어내려 사천저수지 위쪽에서 사상리와 마주친다. 마치 진도의 물그릇 구실을 톡톡히 하는 사천 제1저수지 끝에서 두 마을은 ‘V’자 모양으로 곡지를 따라 입지하고 있는 것이다.

진도에서 가장 높고 사천리의 배산을 이루는 첨찰산을 중심으로 수리봉-양미굴-왕무덤재-남산 줄기가 서서남진하면서 북쪽을 감싸고 있고, 덕신산의 앞산 산줄기로 거의 둘러싸여 있다. 오직 출구는 의신천을 따라 내려가는 남서부만이 터진 곳이라 할 수 있다. 앞쪽에는 첨찰산-두무골재-덕신산-앞산 자락이 남쪽 벽을 형성하고 있다. 첨찰산 485m를 필두로 하여 100~300m의 낮은 산지이지만, 마을에선 보면 제법 산세를 보이고 있다. 사천리는 마치 이들 산사에 떠있는 배 모양의 하곡지가 남동-북서 방향으로 자리 잡은 형태이고 그 중앙부에 사상마을이 자리하고, 운림산방과 쌍계사는 마치 배의 선두를 지휘하는 듯한 형국이다. 따라서 진도군에서 가장 뛰어난 산수의 조화를 보이는 이곳이 남종화의 산실이 될 만한 경관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지질적으로 보면 사천리는 산줄기로 둘러싸인 데다 풍화된 여귀산 응회암과 화강암의 풍화층이 두꺼워 함수층을 이루면서 토산으로 식생이 안정되어 있다. 또 그로 인한 수원도 풍부하여 사천은 항상 옥계탕영(玉溪濯纓)이라 할 만한 것이고, 이 물을 가두어 진도의 제1의 수원지를 형성한 것이다. 하지만 골짜기로 유입된 비구름이 압축되어 폭우시에는 지류들이 합류하는 사상리에서 쉽게 범람할 수 있는 여지가 있어, 인간의 자연에 대한 태도 여하에 따라 좋고 나쁨이 갈라질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현재 상류부에 쌍계사와 운림산방 등 진도군 내 유수의 관광지가 자리하고, 식당·민박 등 위락시설들이 들어서면서 한편으로 상수원의 수질오염이 염려되고 있다.

사천리 역시 사계절 특성은 일반 진도군의 날씨와 비슷하나, 다만 산으로 둘러싸여 낮과 밤의 일교차가 크고 큰 저수지가 입지하여 안개 발생 빈도가 높다. 또 일찍 해가 지는 관계로 자칫 일사량이 부족할 수 있다. 겨울에는 차가운 북서계절풍을 남산-양미굴- 수리봉의 산줄기가 배산이 되어 바람막이를 하고 있어 배산임수형 촌락입지를 전형적으로 하고 있다. 다만 산지에 접해서 차가운 하강 기류가 밤 사이에 내려오게 되면 기온의 변화가 커서 조심해야 한다.

사천리를 비껴 흐르는 빗기내, 사천(斜川)인 의신천은 지방2급 하천으로 유역면적 30.03㎢이며, 유로연장 11.89㎞로 진도에서 가장 긴 하천이다. 의신천은 첨찰산 정상부에서 남서쪽으로 뻗은 산줄기를 분수령으로 하여 해발 300m 지점에서 발원하여 남서진하는 줄기와 사천저수지로 흘러드는 청하곡의 줄기가 쌍계사와 운림산방 아래에서 합류하면서 사상마을 앞을 통과한다. 그후 서진하면서 관류하다 사천1저수지로 모여든다. 이 의신천은 다시 남서진하다가 창포리에서 꺾어져 남동진하여 바다로 흘러든다. 이 의신천을 중심으로 둘러싼 분수계 산줄기 안쪽이 의신면이라 할 수 있다. 이 사천1저수지는 1961년에 축조되어 진도군의 식수원으로 활용되고 있어, 부족한 진도군 수자원에 중요한 몫을 하고 있다. 최근 제방을 더욱 높여 사하마을의 일부가 수몰되어 상류 쪽으로 새터를 이루고 있다.

풍화토가 피복된 첨찰산 자락의 남서 비탈면은 진도군에서 가장 식생이 안정되어 있다. 주로 난·온대림의 수종으로 이루어진 식생환경은 한편으로 수자원을 지속할 수 있는 녹색 댐의 역할을 하고 있어 의신천의 수원이 갈수기에도 안정된 하류를 유지할 수가 있다. 따라서 첨찰산 남서기슭에는 동백나무 등 상록수림 군락이 잘 보존된 3,700평이 천연기념물 107호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다. 이곳에는 희귀하고 다양한 식물이 많이 분포되어 있어 자연학습장으로 좋다. 기타 식생으로는 사상마을 초입 하천변에 약 250년 된 높이 14m의 푸조나무 두 그루가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고, 마을 당산나무는 관란정 주변에 자리하고 있다.

사상마을엔 현재 63가구가 빗기내를 중심으로 자리 잡고 있으며 그중 농가는 38호, 비농가는 주로 쌍계사와 운림산방 주변의 상가 및 식당으로 약 25호이다. 현재 인구는 약 150명으로 이중 남자가 82명, 여자가 68명으로 남자가 더 많은 곳이다. 이 마을의 입향조는 평산 신씨이지만 현재의 주요 성씨는 박씨이다. 마을 공동재산으로는 마을회관이 있고, 유물·유적으로는 운림산방, 쌍계사, 상록수림이 있다. 주요기관 및 시설로는 운림산방, 진도역사관, 소치기념관 등이 있다. 반면 규모가 작은 사하마을은 총 가구 30가구 중 농가가 28가구로 절대적으로 농업 중심이며, 인구 71명 중 남자가 38명, 여자가 33명으로 역시 남자가 많다. 논이 밭보다 조금 많은 곳으로, 입향조는 민씨와 박씨이고 현재의 주요 성씨는 김씨와 박씨이다. 마을 공동재산으로는 마을회관이 있으며, 유물·유적으로는 왕온의 묘가 있다. 농경지로는 논이 24㎢, 밭이 21㎢로 논이 약간 많다. 이는 계곡을 끼고 있는 관계로 풍부한 용수공급이 가능하여 일찍부터 계곡을 중심으로 논이 발달했다. 밭은 사력질 토양부와, 일부 구기자,대파,월동배추,표고버섯 등 특용작물을 중심으로 하는 밭 경작이 행해지고 있다. 산록부를 개간하여 점차 밭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다. 하지만 산지로 둘러싸여 있어 임야가 상대적으로 많아 526㎢을 이루고 있다. 주 작물은 주로 논에서 쌀을 중심으로 경작하고, 일부는 보리와 함께 2모작 형태를 띠고 있다. 산림을 이용한 표고버섯을 재배하기도 한다.

사천리의 생활권은 의신면 소재지가 아니라 교통이 가까운 진도읍권이다. 진도읍과 연결 도로인 군도 9호와 15호가 동서로 통과하고. 군도15호는 사상마을 앞을 관통하고 있어 교통여건이 좋은 편이다. 하지만 의신면 소재지인 돈지마을로 가려면 남쪽의 산지와 저수지가 장애가 되어 비껴 돌아가야 한다.

주변 볼거리로는 남종화의 산실 운림산방과 진도 최대 사찰인 쌍계사가 대표적이다. 이곳은 모두 주차장 등이 잘 구비되어 있고, 주변에 식당과 민박, 상가 등도 10여 채 이상 자리하고 있다. 또 삼별초의 슬픈 역사를 안고 있는 왕온의 묘라고 알려진 왕무덤재가 자리하고 있다. 첨찰산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진도아리랑기념비, 첨찰산의 기상관측소와 난·온대림 군락을 들 수 있다. 또 하나의 자랑거리는 KBS TV 프로그램 '내고향 백년 가약'에서 지어준 민속전수관으로, 국악전수실과 짚공예 실습실을 갖추고 있다. 이곳은 사천리 마을 부녀자 및 인근 마을 주민들이 ‘다시래기’, ‘진도 북놀이’ 등을 연습하며 전수활동을 하고 있는 체험 공간으로 활용된다. 거기다 비끼내를 따라서 마을 앞쪽에 늘어선 장승행렬 또한 이 마을이 진도에서 가장 살아있는 민속마을임을 느끼게 해준다.

이곳 마을에서 가장 자랑할 만한 운림산방은 전라남도 지정 문화재 제51호로 보호되고 있는 곳이다. 운림산방은 조선시대 말기 시·서화에 능했던 남종화의 대가 소치(小癡) 허유(許維) 선생이 말년에 고향에 돌아와 작품활동을 하던 화실의 당호로서, 일명 운림각이라 불리운 곳이다. 이곳에는 허유 선생의 생가, 사랑채, 사당 이외에 2003년 10월 31일 개관한 소치기념관과 진도역사관이 있다.

지명을 살펴보면 진도읍에서 사천으로 넘어가는 산에 고갯길이 있는데 이 고갯길의 중간 부분을 ‘왕무덤재’라고 부른다. 이 고개는 제주로 떠나는 의신면의 금갑포로 통하는 진도의 주요 고갯길이었다. 바로 이 '왕무덤재' 고갯길의 동쪽 기슭에 ‘왕온’의 묘가 있어 왕무덤재가 된 것이다. 또한 이곳 왕무덤재 골짜기를 '논수골' 또는 ‘다구투(茶丘鬪)골’이라 부른다. ‘다구투골’이란 삼별초가 여몽 연합군의 지휘자인 ‘홍다구(洪茶丘)’와 싸운 골짜기란 뜻이다. 이 골짜기에서 삼별초의 왕인 왕온이 홍다구의 칼에 맞아 숨을 거뒀다고 전해지고 있다. 왕온의 무덤은 길이 8.1m, 폭 6.4m, 높이 2m 가량으로 지난 1978년과 1983년 보수되었다. 그리고 왕온의 무덤 밑에는 그가 타고 가던 말을 묻었다는 ‘말무덤’도 있다.

또 다른 지명으로 사천(斜川)은 속칭 ‘빗기내’라고 불리기도 하지만, 빗기내는 ‘핏기내’의 발음이 변형된 것으로 ‘피가 흘렀던 하천’의 뜻이 있다는 설도 있다. 옛날에 삼별초군이 이곳에서 30여 리 떨어진 용장산성에서 퇴각한 뒤, 여몽연합군과 격전을 벌였던 곳이 이곳 마을이었다고 한다. 이곳에서 죽은 사람들의 피가 왕무덤재에 형성된 골짜기에 흘러, 내를 이룰 정도여서 핏기내라는 말이 생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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