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전기의 승려. 계월선사는 고려시대 1129년(인종 7)에 쌍계사를 중수하였다. 그 외 다른 행적을 알 수 있는 기록은 전해지지 않고 있다....
고려전기 개국공신. 본관은 진도. 진도김씨 시조 김국빈(金國儐)의 23세손이다. 아버지는 김강수(金康水), 어머니는 화산백(白)씨이다. 부인은 중원지(池)씨이고 아들은 김구석(金九碩)이다. 김경호는 왕건이 나주를 공략하기에 앞서 진도를 칠 때 왕건에 협력한 공으로 939년 옥주후(沃州侯)에 봉해졌다. 그는 가족들과 함께 개경(開京)으로 이거하여 살게 되었다. 큰아들 김구석(金九碩)...
고려 무신정권기에 특수부대였던 삼별초가 몽고의 간섭에 대항하여 일으킨 반란. 무인정권(武人政權) 말기 최우가 집권하여 도적이 횡행하자, 이들을 잡기 위해 용사를 선발, 경찰부대를 조직하고 이를 야별초(夜別抄)라 하였다. 그 뒤 인원이 늘고 기구가 확대되어 좌별초·우별초로 나누어져 편성되었다. 이후에 몽고군에 잡혔다가 탈출해온 군사와 장정들이 새로 신의군이라는 별초부대를...
909년 왕건이 후백제 땅이었던 진도를 점령한 사건. 견훤이 후백제를 세우면서 진도를 비롯한 서남 해안 지역은 그 세력권 하에 들어갔다. 그러나 901년 견훤이 서남 해안 일대의 금성 지역 부락들을 약탈한 사건이 발생하자 금성 지역의 토호(土豪)들은 궁예 정권에 내부(內附)하여 훤호를 요청하였다. 이를 계기로 903년 궁예는 왕건에게 금성 일대를 정복하도록 하였고, 개경 지역 해상...
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 용장리 용장사에 있는 고려시대 약사삼존불. 진도 용장성 아래에 있는 용장사 약사전에 봉안된 삼존석불로서, 약함을 든 본존과 좌우 협시로 구성된 삼존이며 광배와 대좌를 갖추었다. 고려 전반으로 추정되는 고식(古式)이 보이지만 전반에 걸쳐 시멘트로 보수하여 원형의 모습을 많이 잃었다. 용장사 삼존석불은 사실적인 표현보다는 지방화된 개성적인 특징을 보인다. 육계가...
고려전기 진도에 유배된 인물. 고려 인종 때 척신 이자겸의 아들이다. 1126년(인종 4) 이자겸이 척준경(拓俊京) 등의 거사로 붙잡히는 난이 일어났을 때, 그 처와 큰아들 이지윤이 영광으로 유배되고 다른 아들들도 모두 유배되었다. 그 중 이공의는 진도에 유배되었다. 이공의는 진도군에 유배된 인물로는 최초인 것으로 나타난다. 진도가 고려전기라는 이른 시기에 이미 유배지로 활용되었음...
고려 전기의 문신. 본관은 안성(安城). 자는 대년(大年). 아버지는 안성군의 호장(戶長)으로 경군(京軍)이 된 이중선(李仲宣)이다. 고려 16대 국왕 예종의 측근 세력인 한안인의 매서(妹壻)이다. 아버지 이중선이 죽은 뒤 영업전(永業田)을 물려받아 서리(胥吏)가 되고자 했으나 정조주사(政曹主事)가 허락하지 않자 숙종 때 과거에 응시, 급제하였다. 직사관, 지경산부(知京山府)를 역...
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일대의 고려·조선시대 행정구역. 백제 때는 매구리현(買仇里縣)이었다가 신라의 삼국통일 후 지방행정제도 개편으로 757년(경덕왕 16)에 첨탐현(瞻耽縣)으로 개칭되면서 뇌산군(牢山郡)[嘉興縣]의 영현이 되었다. 첨탐현(瞻耽縣)은 고려 전기인 940년(태조 23)에 임회현으로 이름을 바꾸었고 1018년(현종 9) 임회현은 폐현되어 진도현에 합해졌다. 『삼국사기(...
전라남도 진도군에 본관을 둔 성씨. 진도김씨의 시조 김국빈은 중국 후한(後漢) 사람으로 위·촉·오의 세 나라로 갈려 싸우던 건안(建安)의 난리를 피해 고국을 떠나 배를 타고 전라남도 진도군 의신면 죽포(竹浦)에 도착했다 한다. 이 소식을 들은 신라 미추왕(味鄒王)[262~284]의 부름을 받아 경주에서 군국정사(軍國政事)라는 벼슬을 살았다. 실제로 진도를 본관으로 득성(得姓)한 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