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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500056
한자 巨龍-洞祭
영어음역 Georyong Maeul Dongje
영어의미역 Georyong Village Tutelary Festival
이칭/별칭 거룡마을 산제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의례/제
지역 전라남도 진도군 의신면 거룡리 거룡마을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노소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민간신앙|마을신앙
의례시기/일시 음력 1월 14일|음력 6월 1일
의례장소 거룡마을 제터
신당/신체 산신
제관 마을사람

[정의]

전라남도 진도군 의신면 거룡리 거룡마을 사람들이 공동으로 지내는 제사.

[개설]

거룡마을은 매년 두 번의 동제를 지내는데 음력 정월 대보름에 망제를 지내고 음력 6월 초하루에 충제를 지낸다. 망제는 한 해 동안 마을사람들의 안녕을 빌기 위한 목적으로 정월 대보름에 지냈으며, 충제는 병충해를 적게 하여 농사를 깨끗하고 잘 되게 해달라고 빌기 위해 음력 6월 초하루에 지냈다.

망제와 충제 모두 밤 10시에 제를 올리기 시작하여 11시경에 끝난다. 날짜는 한 번도 옮긴 적이 없으나, 1980년 의신면에서 있었던 이장모임에서 마을 동제를 미신으로 치부하여 2년간 잠시 중단하였다가 곧바로 다시 지내기 시작했다. 현재는 교회나 성당에 다니는 사람들도 산제에 참여할 정도로 마을사람들의 태도는 적극적이다.

[신당/신체의 형태]

망제와 충제 모두 마을 뒷산에서 지내기 때문에 산제라고 통칭해서 부른다. 원래는 산 정상 부근에 제터를 만들어 놓고 그곳에서 제를 올렸으나, 마을에 젊은 사람들이 너무 없어 노인들이 제를 지내다 보니 어려움이 많아 3년 전부터 차를 타고 올라갈 수 있는 곳으로 제터를 옮겼다.

[제관의 선정 및 역할]

거룡마을 동제는 제관 세 명이 지내는데 따로 부르는 이름은 없다. 제일을 2~3일 앞두고 마을에서 덕망 있는 어른이 생기복덕을 따져 가장 알맞은 사람으로 제관을 선정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익힌 제물을 많이 장만했으므로 ‘임사’라고 하여 음식장만 할 사람을 따로 뽑았지만, 요즘은 날 것으로 제물을 하기 때문에 음식장만 하는 사람을 따로 뽑지 않고 제관 세 명이 제물도 장만한다.

[절차]

거룡마을 산제는 제관 세 사람만이 제에 참여한다. 그러나 뜻이 맞는 사람이 있으면 몇 명 더 따라가기도 한다. 제단까지 제물을 차로 운반하고 제관들이 진설한다. 돼지머리와 쌀은 날 것으로 올리고 국은 올리지 않는다. 술잔은 한 개만 준비한다.

제관 중에 나이가 가장 많은 사람이 술을 올리고 축을 읽는다. 축문은 원래 충제와 망제의 목적이 다른 만큼 따로 존재했으나 최근에 와서 두 개의 축문을 한 개로 합치고 우리말로 해석해서 읽는다.

축을 태우고 나면 절을 하고 제사를 마무리한다. 마을사람들 각각의 안녕을 비는 소지는 따로 태우지 않는다.

제가 끝나면 돼지머리에서 코와 귀를 잘라서 제단 옆에 땅을 파고 묻는다. 남은 음식을 주변에 뿌린다거나 하지는 않는다. 망제가 끝나야만 대보름 제사를 지낼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따로 제사가 끝났음을 알리지는 않는다.

[제물/용품/제구]

제물은 진도 읍내장에 가서 장을 보는데 제관 세 명이 함께 간다. 제일 당일 아침에 가서 보아야 하기 때문에 항상 문을 여는 마트에서 살 경우가 많다.

장을 보러 가기 전에 제관들은 목욕을 해야 하며 물건값은 깎지 않는다. 제비로 정한 범위 내에서 제물을 사고, 남은 돈으로는 마을사람들이 함께 먹을 음식도 넉넉하게 산다.

제물로는 돼지머리, 과일, 북어나 오징어포를 준비하고 밤, 대추, 곶감 등을 준비한다. 제물은 과거에 익혀서 장만할 때는 재료들과 필요한 물건을 제단에 가지고 올라가 그곳에서 만들었으나, 현재는 장만할 것이 많지 않으므로 회관에서 준비하여 들고 올라가기만 하면 된다. 예전에는 제일 아침에 누룩에 밥을 섞은 뒤 그날 밤에 걸러서 제주로 사용했으나 요즘에는 소주를 제주로 쓴다. 제기는 마을제사용으로 따로 마련해두고 사용하고 있다.

[부대행사]

예전에 임사가 있을 때에는 제터로 올라가기 전에 임사 집에 금줄을 쳤으나, 요즘은 치지 않는다. 황토는 예전부터 뿌리지 않았다.

거룡마을은 산제를 조용하게 지내기 때문에 굿을 치면서 지낸 적은 없다. 대보름에 하던 매구는 한국전쟁 이후로 하지 않으며, 줄다리기를 하던 풍습도 역시 비슷한 시기에 사라졌다.

[금기]

제관으로 선정된 사람은 산제를 모시는 날까지 개고기도 먹지 않고 몸을 깨끗이 하며 궂은 데에는 가지 않고 부부생활도 하지 않아야 한다. 부인이 월경을 하고 있어도 제관으로 참여할 수 없다.

장을 보러 가기 전에 제관들은 목욕을 해야 하며 물건값은 깎지 않는다. 그 외에 특별한 금기는 없다.

[축문]

축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年 ○○月 ○○日

幼△ ○○는 里民을 대표하여

위소산 신령님께 감히 고하나이다

항상 우리 마을이 평안토록 굽어 살피는 신령님께 깊이 감사드리오며 올해도 좋은 날씨에 때마춰 단비를 내려주시고 순조로운 바람결에 오곡백과는 온들녁에 충만하고 채소가축은 터전에 풍성토록 온갖 병충해를 씻은 듯 걷우셔서 풍년들게 하옵시고 남녀노소 무병장수 하여주시기를 기원하오며 여기에 이민의 지성을 모아 마련한 재수와 맑은 술을 올리오니 흠향하옵소서.

[제비]

동제에 쓰이는 비용은 전통적으로 유지위원회라는 마을 계에서 충당했는데, 입촌 성씨인 오씨가 마을을 떠나면서 땅과 집을 남기며, 자신들의 조상에게 해마다 제사를 지내달라고 부탁하였다. 그 땅과 집을 팔아 나온 수입으로 해마다 오씨 할머니의 제사를 지내고 남은 돈으로 동제도 지내게 되었다.

그런 뒤에 아들이 없던 박씨 할머니가 죽으면서 산 3천 평을 마을에 기증하고는, 오씨 할머니처럼 마을에서 제사를 지내줄 것을 부탁하였다. 그래서 현재 거룡마을의 마을기금은 1천여만 원 정도 된다.

한 번 산제를 지낼 때마다 총 25만 원 정도의 제비가 소요되는데, 양력으로 12월 말이 되면 동계라 하여 마을총회를 열 때 망제와 충제에 쓰인 내역을 공개한다.

[현황]

산제의 제단을 차가 올라갈 수 있는 장소로 옮긴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거룡마을 주민들의 산제에 대한 자부심은 대단하였다. 하지만 마을에 젊은 사람이 매우 적고 노인들이 많아서 앞으로의 전망은 결코 낙관적이지만은 않다.

현재 마을의 존폐를 걱정할 정도로 주민수가 줄어들고 있는 것도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으나, 마을주민 대부분이 산제의 존속을 염원하고 있으므로 쉽게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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