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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500231
한자 金德鎭
영어음역 Kim Deokjin
이칭/별칭 경명(景明),낙계(樂溪)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전라남도 진도군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김정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의병|독립운동가
출신지 충청남도 청양군 적곡(赤谷) 낙지(樂只) 341
성별
생년 1865년연표보기
몰년 1947년연표보기
본관 안동(安東)
경명(景明)
낙계(樂溪)
상훈 대통령표창|건국포장|애국장

[정의]

조선 말기의 의병.

[개설]

충청남도 지역에서 의병을 일으켜 일본군과 맞서 싸우다가 체포되어 진도로 유배되었다.

[생애]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경명(景明), 호는 낙계(樂溪). 1864년(고종 1) 4월 16일에 충청남도 청양 적곡(赤谷) 낙지(樂只) 341번지에서 태어났다. 1906년부터 의병 활동과 독립 운동을 계속하였고, 해방 후인 1947년 3월 7일 향년 84세로 운명하였다.

[활동사항]

1906년 5월 일본군의 공격으로 열세에 빠진 민종식(閔宗植) 부대가 재궐기를 모의할 때 1906년부터 1907년에 걸쳐 민종식 의병부대의 한 진으로 의병을 모집하였다. 또한 곽한일(郭漢一)·박윤식(朴潤植)·김운락(金雲洛)·황영수(黃英秀)·박창용(朴昌勇) 등과 함께 예산(禮山) 공격을 준비하였다.

그러나 일진회 회원의 밀고로 1907년 11월 17일에 일본군과 일진회 회원의 습격을 받아 다수의 동지와 같이 붙잡혀 공주경찰서에 투옥되었다. 법부대신 조중응(趙重應)의 의견에 따라 홍성의병 총대장 민종식은 교수형에, 김덕진이용규·박윤식·곽한일·정재호·황영수와 함께 종신 유배형에 처해져 진도에 유배되었다가 특사로 석방되었다.

1919년에는 홍성군의 임한용, 최중식, 전양진 및 청양군의 안병찬 등과 함께 파리강화회의에 독립청원서를 발송한 혐의로 구속되기도 했으나 이에 굴하지 낳고 독립운동을 계속하였다.

[상훈과 추모]

1963년 대통령표창, 1980년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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