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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500351
한자 檀箕殿
영어음역 Dangijeon Hall
이칭/별칭 기성사(箕聖祠)
분야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전라남도 진도군 진도읍 교동리 275지도보기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이옥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사우|묘당
건립시기/일시 1923년 2월 3일연표보기
관련인물 단군|기자|한승이|박진원|박영배|권현섭
소재지 주소 전라남도 진도군 진도읍 교동리 275

[정의]

전라남도 진도군 진도읍 교동리에 세워진 단군과 기자를 모신 사우.

[개설]

일제는 황국신민화 정책의 일환으로 단군전을 모두 폐지시켰다. 이에 뜻있는 유림들이 중심이 되어 단군전 건립을 극비리에 암중모색하여 오던 중 1919년 3·1 운동을 기점으로 논의가 활성화되었다.

[건립경위]

진도군에서는 1922년 1월 15일 100여 명의 유림들이 단기사 건립을 위해 기성회(회장 박진원)를 발족시켰다. 한승복(한명복이 대리승낙)이 토지와 건축비를 희사하기로 하였다.

단군과 기자를 주벽으로 하고, 동묘에는 봉암서원에 향사한 10인을 봉안하고 서묘에는 향현사에 향사한 10인을 추형하는 것을 계획하였다.

1922년 6월 28일 동문 내에서 옛 향교터에 상량식을 거행하고, 그 이듬해인 1923년 2월 2일 오전 10시에 진도군수 권현섭이 봉안식을 준행하였다. 2월 3일 오전 10시 초대 사장(祠長) 박영배가 첨향례를 봉행했다.

[변천]

그러나 이후 일제 당국의 불허와 감시로 부득이 기성(箕聖)만을 봉안하고 기성사 회의록과 단기전 회의록을 별도로 기록하여 이중 봉안하게 되었다. 광복 후 단군 신위를 합봉하였다가, 단군전을 건립하여 단군 신위와 성상 영정을 따로 봉안하였다.

[의의와 평가]

일제강점기 때 민족정기를 말살하고자 한 일제의 탄압에 맞서 민족정신을 지키고자 하는 진도군민들의 애국심이 단기전의 건립으로 표출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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