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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500397
한자 獨立運動家
영어음역 Dongnip Undongga
영어의미역 Independence Fighter
이칭/별칭 항일운동가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전라남도 진도군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박주언

[정의]

조선 말,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을 전개한 진도의 인물.

[개설]

진도에서의 독립운동은 조선 말기에서 일제강점기까지 독립운동을 하다가 진도로 유배되었던 독립운동가들의 영향을 받은 지역 인사, 그리고 진도 출신으로 외지에 나가 독립운동에 가담했던 사람들이 귀향하여 벌인 운동에 의해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다음에서는 조선 말기 외세의 침투에 대항하여 국권을 회복하려 한 활동으로부터 일제강점기 국권을 되찾고자 한 항일운동가를 진도 출신의 독립운동가와 진도 유배인 출신의 독립운동가로 구분하여 서술하고자 한다.

[진도에 유배되어 활동한 독립운동가]

조선 말기에서 일제강점기 초기까지 항일운동을 전개하다가 체포되어 진도에 유배된 인물로는 강영화(姜英華)·강인필(姜仁必)·박윤식(朴潤植)·김덕진(金德鎭)·민영팔(閔泳八)·민종식(閔宗植)·양한규(梁漢奎)·이기(李沂)·최동식(崔東植)·이필상(李弼相)·안국선(安國善)·손정도(孫貞道) 등이 있다.

이들은 거의 을사오적 암살단 또는 정부 주요 인사 암살 등 초강경 항일독립운동에 앞장섰거나 그러한 의지를 지닌 사람들이었다. 1900년에 강영화가 진도에 오기 시작하여 1912년 손정도에 이르기까지 계속 진도에 살면서 진도 주민들의 항일의식을 고취시켰다.

1904년 진도에 온 기독교인 안국선도 그러한 노력을 기울였다. 1904년 10월 19일자 『황성신문』에는 ‘진도에 신학 연구와 풍속 개량을 목적으로 친목회가 조직되었는데 그 회원을 대표로 안천강(安天江)이라는 인물과 박봉우(朴鳳禹)·소문규(蘇文奎)·박영배(朴永培)·최기원(崔基元) 등 이십여 인이오, 매월 한 차례 개회하야 강연책선(講演責善)한다.’라는 기사가 실려 있다. 천강안국선의 호이다. 여기서 안국선과 함께 활동인 현지인 박봉우진도읍 북상리 사람으로 후일 아들 박두재(朴斗在)가 진도의 독립운동의 일선에 나서게 된다.

손정도는 1912년 하얼빈에서 조선총독 데라우찌[寺內正毅] 암살모의에 가담했다는 혐의로 체포되어 진도에 유배되었다. 1914년 유배에서 풀릴 때까지 진도에 있는 동안 복음 전파와 독립정신 고취 등 진도 주민의 항일의식 고취에 노력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손정도는 국내에서 1919년 3·1운동에서 참여했다가 상해로 망명하였다.

손정도의 활동과 이력이 진도 현지인들의 정신적 토양으로 작용한 것은 틀림없겠으나 구체적인 영향을 실제로 추적하기는 어렵다. 손정도의 유배 당시 12세였던 정경옥이 그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진도 출신의 독립운동가]

진도 출신으로 외지에 나가 독립운동을 했던 인물로는 영광보통학교 교사로 영광에서 활동한 이병영과 일본 오사카[大阪]형무소에서 생을 마감한 박봉석이 있다. 진도 현지에서는 미국 유학으로 신학대학 교수를 역임한 정경옥을 비롯하여 박종식·박종협·박두재·박동인·박석현·박종준·조규선·곽재술·곽재필·장부전·이재실·박사배·이광우 등이 있다. 또 여성으로는 박종금이 있고, 현재 생존자로 이기환이 있다.

물론 이들만 독립운동을 했던 것은 아니다. 일본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일제의 녹을 먹지 않겠다고 산으로 은거했다가 해방 후에 나와 미군정 때 진도 군수를 역임한 정승한(鄭承漢)이 있다. 또한 진도읍 북상리에서 초기 일본인 이민 오미랑조(吾未朗助)를 총살했던 주민들도 있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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