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500831
한자 珍島素浦乞軍農樂
영어음역 Jindo Sopogeolgun Nongak
영어의미역 Sopo Farmer's Music in Jindo
이칭/별칭 소포 농악,진도 걸군 농악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작품/민요와 무가
지역 전라남도 진도군 지산면 소포리
집필자 이윤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문화재 지정 일시 2006년 12월 27일연표보기 - 진도소포걸군농악 전라남도 무형문화재 제39호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진도소포걸군농악 전라남도 무형문화재 재지정
문화재 지정 번호 전라남도 무형문화재
성격 농악

[정의]

전라남도 진도군 지산면 소포리에서 행해지는 진도군의 대표적인 농악 중의 하나.

[개설]

진도의 소포걸군농악은 구전되는 계보로 보아 100여 년간 기능이 끊이지 않고 계속 유지되고 있으며 자체 보존회도 구성되어 있다. 1988년 제17회 남도문화제와 1995년 제23회 남도문화제에 진도군 대표 민속팀으로 참가해 장려상을 받은 바 있는 진도군의 대표적인 농악대다. 2006년 12월 27일 전라남도 무형문화재 제39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전라남도 무형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채록/수집상황]

소포걸군농악은 1967년 문화재관리국의 『무형문화재 조사보고(호남편)』를 통하여 소개되기 시작했다. 소포걸군농악은 1978년, 전 진도문화원장 차근현(車根炫)이 이전에 농악대 집사를 맡아오던 당시 97세의 주찬계(朱贊桂)[1896~1980]로부터 받은 제목 미상의 농악관련 문헌과 주찬계의 구전을 바탕으로 재현시켜온 농악이다.

차근현은 이보다 10여 년 전인 1967년 제1회 옥주문화제 때부터 집사를 30여 년 간 계속해왔다고 하는데 그것으로 보면 소포마을에 전승되어온 소포농악에다 차근현이 말하는『소포걸군악보』 책의 내용을 복원하여 보강한 것이라 할 만하다.『소포걸군악보』는 농악의 진법기록으로 임진왜란 당시 얻어먹고 돌아다니면서 농악으로 가장을 한 의병들의 작전놀이 기록이라고 주장되기도 하는데 농악과 관계되는 진도의 또 다른 문헌들과 마찬가지로 군악적인 성격이 강한 진도농악의 특성을 증명해주는 자료라 하겠다.

『진도군 향토사료 영인본』 2집에는 이 책과 함께 『군고청령 및 진법(軍鼓聽令及陣法)』이라 명시된 박정규의 기록과 해남 황산면 옥연리의 김수영이 1964년 설쇠인 박정규씨의 구술을 중심으로 기록한 「농악대 상식서」가 실려 있는데 다른 마을로 걸립을 갈 때 알아야 할 사항들을 적은 것이다. 이 두 문헌은 모두 진도군 진도읍 박복남 소장 자료들이다.

[구성]

소포걸군농악은 수십 명으로 농기수(農旗手)를 비롯하여 영기(令旗)·상쇠·중쇠·징수·설장구·중장구·종장구·설북·중북·종북·설소고·소고·창부·조리중·포수·집사 등으로 편성되어 있다. 각 지역의 농악은 연희를 중심으로 하지만, 소포걸군농악의 경우에는 적을 색출하는 진법의 걸군악이었다.

소포걸군농악을 치는 순서로는 당맞이(들당산)굿, 문재비굿, 샘굿, 가정굿, 새립(사립)굿, 마당굿, 휘안굿, 마당인사굿, 날당산굿 순이다.

[내용]

(1) 소포걸군농악의 과정

① 당제사 : 모든 군중이 제관을 모시고 제물을 마련하여 당나무에 가서 제사상을 올리고 5회 제배를 하고, 군중은 당나무를 둘러쌓고 서서 1회 제배를 한다. 그리고 집사[祭官]는 “당할머니, 오늘부터 소포걸군농악을 치게 되오니 끝나는 날까지 당할머니께서 많이 도와주시기를 축원합니다.”라고 축문을 읊는다. 농악대는 축문이 끝나면 일채부터 삼채까지를 치면서 당에서 내려온다.

② 당맞이굿 : 당맞이(들당산)굿의 과정은 칠채가락을 치며 행렬 순서대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돌면서 원진형을 이룬다. 원진의 형태가 완전히 되면, 온 군중은 몸 방향을 원진형의 바깥쪽으로 돌아서면서 굿을 중지하고 바른 자세로 서서 사방으로 인사를 1회 한다.

인사가 끝나면 당맞이굿으로 들어간다. 일채를 치며 조리중이 한삼으로 적이 있다고 신호를 하면서 창부를 쫓아간다. 창부는 갈지(之)자로 도주를 하다가 동쪽방향에서 주저앉는다. 군중은 주저앉은 창부를 두고 진(陣)을 친다. 진을 칠 때 또다시 창부는 반대방향인 서쪽으로 갈지자로 도주하다가 주저앉는다.

군중은 일채가락으로 또다시 2차진을 친다. 포위작전인 2차진을 칠 때는 무동, 조리중, 기수 등 온 군중이 진을 친다. 일채부터 오채까지 치는 순간, 창부의 목을 베어 영기에 달고 우측으로 3회를 돌리면 굿을 중지한다. 이때 대포수를 불러 “대포일발 발사하라”하고 명령하면, 군중은 ‘예히’하고 대답하고 포수는 대포일발 발사한다. 굿이 중지되면 집사는 전쟁에 이겼다고 승전고를 하는데, 이러한 진법을 ‘들어가는 진법’이라고 한다.

③ 마당놀이 : 청령의 순서가 끝나면, 인원점검을 위한 마당놀이가 진행된다. 상쇠는 원진형이 되도록 군중을 이끈다. 원진형이 만들어지면 그 자리에서 온 군중은 큰 소리로 “야”하고 주저앉는다. 앉으면 상쇠는 자기 뒤에서부터 5명씩 세워 군중 사이로 돌면서 군중을 일으켜 세워 굿을 따라 치면서 계속 상쇠를 따른다. 끝까지 가면 완전히 일어서서 원형을 이루고 삼채로 굿을 친다.

④ 바탕놀이 : 인원점검을 하는 마당놀이가 끝나면, 다음으로 수색작전을 위한 바탕놀이가 시작된다. 상쇠는 군중을 데리고 삼채를 치면서 정면부터 종대로 세우고, 농기를 데리고 군중 정면에 마주보고 서서 오채가락으로 쇠를 바꾼다. 그 후, 농기는 양팔을 벌리고 늘어서서 상모를 돌리며 머리를 앞으로 숙이고 뒷짐을 지고 달려가서 군중과 마주 친 후, 온 군중과 함께 전진 후퇴를 4회 하고는 원위치에 군중을 세우고 상쇠는 농기만을 또다시 데리고 전면에 늘어선다.

⑤ 농기놀이 : 이어서 놀이는 군중들의 신체 이상여부를 확인하는 농기놀이(노름)가 시작된다. 상쇠는 농기를 군중 대열에서 빼낸다. 나갈 때 뒷짐을 지고 외상모를 돌리며 상쇠를 따른다. 상쇠는 농기를 군중 정면에 군중과 마주보게 세운 다음, 상쇠는 종쇠에게 쇠를 머리 위로 올리며 잦은 가락으로 신호를 한다. 상쇠·종쇠가 서로 신호가 통하는 순간에 농기는 뒷짐을 지고 양상모를 돌려 뒤로 넘기고 양팔로 양띠를 잡고 팔을 벌리며, 머리를 앞으로 숙이고 외상모를 돌리며 일렬로 서서 군중과 부딪히며 주저앉는다.

농기는 주저앉은 채 양띠를 잡고 팔을 벌리고 상쇠를 향하여 약간씩 일어서면서 춤을 추며 일어서서 그 자리에서 왼쪽으로 한 바퀴 돈 다음, 상쇠는 농기를 데리고 춤을 추면서 군중 정면에서 갈지(之)자로 돌아서 원진형을 이룬다.

상쇠는 일채부터 한가락이 끝나면 상쇠는 농기를 데리고 춤을 추며, 갈지(之)자로 군중 정면에서 한 바퀴 돌고 다시 원위치에 와서 다음 가락으로 돌리고 반복하여 12채 가락까지 돌리되 무릎에 손을 잡고 돌리기도 한다. 농기놀이가 끝나면 상쇠는 농기를 군중 원위치에 세운다.

농기놀이에 이어서 신체 이상 유무를 확인하는 장구놀이, 북놀이, 소고놀이가 있다. 상쇠는 각각 장구·북·소고잽이를 정면으로 데리고 나와서 굿거리장단부터 자진장단까지 치며 놀이를 시킨다. 놀이가 끝나면 군중 속으로 원위치 시킨다.

⑥ 날당산 : 날당산은 걸군농악의 후퇴 작전에 사용된다. 상쇠는 종대형의 군중을 삼채가락으로 치면서 군중의 1/3씩 20m 후면 거리로 빼낸다. 상쇠가 군중 뒤로 달려가면서 등을 쇠채로 살금살금 두들기면 그 군중은 굿을 멈추고 뒤돌아서서 20m 후면으로 가서 돌아선다. 상쇠는 또다시 1/2을 등을 두들기면 20m 후면으로 빠져나가고 군중을 또다시 후면 20m로 빼내서 완전히 자리를 옮긴 후 굿을 다시 시작한다.

⑦ 끝인사 준비 : 상쇠는 인원을 편성하고 끝 인사를 하기 위하여 원진형을 이룬 후에 분야별로 원을 형성하고, 삼채 가락으로 한바탕 농악을 치고 나서 원진형으로 다시 이루고 인사를 한 후에 철수한다.

(2) 문재비굿

온 군중은 다른 부락으로 들어갈 때 마을 전면에서 그 마을 사람을 기다리며 당산굿을 치고, 그 마을 가세친 영기를 풀기위한 문자법을 또는 그림으로, 물품으로 상대방의 군중 실력을 점쳐보는 것이 문재비굿이다.

양 마을끼리 서로 통하는 글이[通文法]이 오고가면 영기를 보내어 확인 후 군중은 마을로 들어간다. 들어갈 때 마을에서는 “금고(金鼓) 오신다는 말씀은 들었거니와 오리정문후(五俚町問候)도 못하였고 앉아서 맞이하오니 황공무지하오.”라고 인사를 한다. 여기에 대한 답례로 “귀대촌(貴大村) 성화연유(成化緣由)는 들었거니와 이다지 관대하오니, 도리어 황공무지하오.”라고 답을 한 후에 들어간다.

‘당맞이’는 군중이 행진을 하다가 당이 보이면, 일렬로 서서 칠채 질굿을 중지하고 자진 일채를 치면서 당을 향해서 3회 인사를 하고 다시 행군을 시작한다. 만약 당산을 맞이하지 않았을 때는 군중 중에서 생사자가 발생하고 그렇지 않으면 군물(軍物)이 크게 파손이 된다. 그런 이유에서 당을 맞이하고 가는 것이다.

(3) 샘굿

온 군중은 당맞이 당산을 한 다음 그 마을의 가장 큰 샘으로 가서 샘굿을 친다. “청령 - 어허 그 샘물 잘 난다. 벌떡벌떡 잡수쇼.”라고 외친 다음, 일채가락으로 굿을 치고 나온다.

(4) 가정굿

온 군중은 샘굿을 친 다음, 칠채 질굿을 치며 그 마을 이장댁으로 간다.

(5) 새립(사립)굿

온 군중은 칠채 질굿을 멈추고 육채 가락으로 새립에서 주인을 맞이한다. 주인은 군중을 맞아들이고 재물인 쌀과 청수를 준비한다. 이때 조리중이 재물을 준비하는 주인을 도와준다. 재물은 방문 앞에 자리를 깔고 상위에다 차려 놓는다. 쌀그릇에 수저를 꼽고 거기에 가구주 년 년대로 실을 나누어 수저에 걸어놓고 샘에도 재물을 놓고 성주에도 놓고 외양간에도 놓는다.

(6) 마당굿

온 군중은 간략하게 당산을 하고 벅구놀이(북춤놀이)를 한 다음, 성주굿과 조왕굿을 치고 조왕에서 “청령 - 조왕, 성주 방구석도 니구석, 정제구석도 니구석, 마레(마루)구석도 니구석, 삼사십이 열두 구석, 잡귀 잡귀 몰아라.”하고 말을 하고, 삼채를 치며 나와서 외양간으로 간다. 이때 외양간과 소가 있으면 치고, 외양간에 소가 없으면 안 친다.

(7) 휘안굿

온 군중이 그 집 주위를 이채 가락으로 치면서 “헐싸”하고 외치면서 집을 한 바퀴 돌아서 마당으로 나온다.

(8) 마당인사

“청령 - 유아 군중이 주류 행걸이다가 지산면 소포리 ○○○씨 댁에서 견위적지주명성군지의 후에로 은근 고적하오니, 그 은혜 백골난망이니 너의 등도는 제제 연립하여 분부 청령하라.”하고 말한다. 군중은 “헐싸”하고 일채가락으로 인사를 하고 나온다. 이때 조리중은 “청령 - 조리중은 반침(마루)에 둔 청수를 들고, 해동 조선 전라남도 진도군 지산면 소포리 ○○○씨 댁은 1년은 12달이요, 과년은 13달인데 1년을 하루같이 넘기고 부귀자손 영화 누리기를 신령님께 축원합니다.”하고 말한다. 협세 협세하고 외치면 청수를 지붕 위에 뿌리고 재물(쌀·돈·실)을 걷어 담아서 가지고 나온다. 주인이 내놓은 재물의 용도는 쌀은 식량, 돈은 비용, 실은 옷을 꿰매어 입기 때문이다.

(9) 날당산굿

온 군중은 다른 부락에서 굿을 치고 나올 때에 인사를 하고 간략한 당산을 하고, 상쇠가 농기만을 데리고 마을을 빠져나와 돌아오는 길목에서 굿을 멈추고 기다린다. 종쇠는 군중을 데리고 한마당 치면서 살금살금 마을을 피해 나와 상쇠를 만나서 돌아온다.

(10) 굿을 낼 때

굿을 낼 때는 좋은 날을 받아서 밤 제사를 지내며 낸다. 당제사의 굿을 낼 때 사용하는 제물은 정침한 가정에서 장만하고 제관이 제물을 가지고 그날 손 없는 방향으로 마을과 약간 떨어진 곳에 가서 밤 11경에 모닥불을 피우며 제상을 차린다. 제물은 과일·주포·채소·국·밥 등이다. 걸군농악대는 마을 주변을 우측에서 좌측으로 삼채굿을 3회 달리면서 치고 돌고, 제사 지내는 곳으로 가서 마을과 반대방향으로 일배 절을 한다. 절이 끝나면 한사람씩 모닥불을 넘어서 굿을 중지하고 조용히 마을로 들어온다. 이때 조리중이 청령을 하는데 “해동 조선 전라남도 진도군 지산면 소포리 걸군농악이 끝이 나서 잡귀잡신을 걸게 대접하기 위하여 많은 음식을 장만하였으니, 많이많이 잡수시고 멀리멀리 속구천리 하옵소서.”하고 모닥불을 끄고 제물을 사방으로 뿌리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어서 마을로 돌아온다.

[옷차림]

① 조리중 - 조리중은 얼굴을 어성으로 가장한 광대를 쓰고 도복을 입었으며, 한삼을 흰색으로 길게 달고 머리에는 짚으로 엮은 모자 끝에 흰색 끈을 하얗게 달고, 한삼으로 적의 동향을 아군에게 신호를 하는 역할을 하며 가가호호를 방문한다. 맨 선두에 선다.

② 포수 - 포수는 총을 들고 광대를 썼으며, 머리에 ‘통정대부’라는 벼슬이름을 써 붙인 노루가죽 모자를 썼다.

③ 무동 - 무동은 남아 칠세 옥동 남자아이로서 어깨에 서서 춤을 추며, 서서 연락을 주고받는 역할을 한다. 장삼을 입고 괴물의 모습을 한 가면을 쓴다. 그리고 입에 담뱃대를 물고 손에는 총을 든다. 복색은 남색 쾌자, 검정 남바우를 쓴다(도령복을 입고 배자 모자를 쓴다.).

④ 기수 - 작전 시 선두에서 아군의 진로를 명하며 이끌어 주고, 영기는 항상 바로 세워서 들고 다니는 깃발이다. 흰색 바지저고리 옷차림을 하고 머리에는 고깔을 쓴다.

⑤ 집사 - 작전 시 선두에서 아군의 진로를 명하며 이끌어 주고, 영기는 항상 바로 세워서 들고 다니는 깃발이다. 흰옷에 오색 도포를 입고 머리에는 관을 쓰고 한삼을 달고, 손에는 지휘봉을 들었다.

⑥ 창부 - 창부는 적을 가장(假裝)한 자로서 도복을 입고 머리에는 붉은 모자에 ‘창부’라는 검정색 글씨로 쓴 모자를 쓴다. 장삼을 입고 얼굴에 흰 종이가면을 쓰고 머리에는 모자를 쓴다.

⑦ 쇠 - 쇠는 군중을 통솔하는 첫 신호를 하며, 군중의 동향을 이루는 중대한 역할을 한다. 모자는 돌무채 병거지 상모를 썼다. 흰색 바지저고리 옷차림에 삼색띠를 가슴에 엑스자(×)로 두르고 모자는 돌무채 병거지 상모(전립)를 쓴다.

⑧ 징 - 징은 주야를 막론하고 가장 멀리 들리는 소리로써 상부에 소리로 아군의 동향을 알려주는 역할이다. 흰색 바지저고리 옷차림에 붉은색 또는 청색 쾌자를 입고 삼색띠를 두르며 전립을 쓴다.

⑨ 장구 - 장구는 소리가 연하여 군중의 흥을 북돋아 주며 북의 역할도 한다. ⑧의 복색과 같다.

⑩ 북 - 북은 아군의 사기를 북돋아 적의 진지로 진격하게 유도하는 역할이다. ⑧의 복색과 같다.

⑪ 상모 - 모자이며 적의 방패이다. 머리 꼭대기에는 돌무채를 달고 돌무채 끝에는 흰 닭털 한주먹을 달아 어둔운 밤에 신호표로도 쓴다.

⑫ 소고 - 작은 북으로 북의 역할도 하면서, 적군이 나타나면 농기와 아울러 행동을 한다. 적군을 포위하는 역할을 한다.

⑬ 고깔 - 소포걸군농악에서 상징적으로 볼 수 있는 것은 고깔인데 음양을 나타내고 있다. 목단 꽃은 천하제일의 꽃이요 여자를 상징한 것이며, 담배 꽃은 남자를 상징한 것이다. 이러한 고깔의 모양은 다른 지역과는 확실히 다르다.

[의의와 평가]

소포걸군농악은 진도의 대표적인 농악에 속한다. 정병호가 그의 책『농악』에서 진도의 농악을 신청농악으로 분류한 것을 통해서 볼 때도 진도농악의 변별성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진도의 대표적인 농악인 소포걸군농악은 신청농악의 맥락을 승계한 진도 고유의 농악이라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고 하겠다.

[참고문헌]
이용자 의견
김** 시진 자료 오류입니다. 2017.08.24
김** 사진자료 가운데 베틀노래를 제외한 농악연희 사진들은 소포걸군농악이 아닙니다. 복색, 고깔, 치배 구성 모두 다릅니다.
  • 답변
  • 디지털진도문화대전을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귀하의 소중한 의견을 반영하여 사진자료 배치를 변경하였습니다.
    미흡한 점이 있을 시 보다 상세한 내용을 알려주시면 수정, 보완에 참고하도록 하겠습니다.
    앞으로도 지속적인 관심과 이용 부탁드립니다.
2017.08.24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