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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501123
한자 音樂
영어음역 eumak
영어의미역 music
분야 문화·교육/문화·예술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전라남도 진도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보형

[정의]

소리를 갖가지 형식으로 결합하여 나타내는 시간예술.

[개설]

진도지역의 고유한 예술문화가 담겨있는 음악으로는 민요, 농악, 무가, 잡가, 판소리, 시나위, 산조, 삼현육각 등을 들 수 있다.

속담에 ‘진도에 와서 다섯 가지 자랑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진도가 섬이라 여느 섬처럼 문화예술이 미비한 줄 알고 다섯 부문에서 함부로 자랑하다가는 망신당한다는 뜻이다. 여기서 다섯 가지는 문자·그림·글씨·소리·춤이라 한다. 그러므로 진도에서 소리자랑 하지 말라는 것은 진도의 음악이 대단하다는 말을 두고 이른다.

예술문화가 단시일 내에 생성되는 것이 아니므로 진도의 풍요로운 문화예술은 진도의 풍토와 역사에 기인한 것이지만 진도의 음악에 관한 자세한 기록은 많이 남아있지 않다. 예로부터 명인·명창들이 많이 배출되었으나 근래에 진도에서 배출된 소수의 명인·명창들을 중심으로 구전되는 자료만 남아있을 뿐이다. 더구나 삼현육각(三絃六角 : 한국 악기편성법의 한 가지로서 육잡이 혹은 육잽이라고도 함)과 관련해서는 일찍이 전승이 끊어져 그 실체를 밝힐 수 있는 자료가 부족하다. 다만, 진도의 음악문화에서 나타나는 민요, 무속음악, 농악이 다른 도서지역과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풍부하게 전승되어 그 특성을 밝힐 수 있다.

[종류 및 특징]

1. 민요

진도에서 전승되는 민요를 보면 도서지역이라는 선입견을 깨고 농요(農謠)가 풍성하게 전승되고 있다. 그리고 일부 도서지역에 어요(漁謠)가 전승되고 있고, 놀이요도 풍성하며 그리고 전문적인 소리꾼이 부르는 잡가 또한 대단히 성창된다.

① 농요

진도에서 농요가 큰 비중을 이루는 것은 진도지역이 대체로 평야가 많고 농토가 비옥하여 예로부터 이르기를 ‘진도에서 생산되는 곡물만으로도 진도 주민들이 3년은 살 수 있다.’는 말이 전해지듯이 농업이 성하기 때문일 것이다.

진도는 여느 육지와 같이 도작(稻作) 농업이 주를 이룬다. 진도지역에 전승되는 농요도 다른 한국의 농요가 흔히 그렇듯이 김매기 소리[除草謠]가 주를 이루고, 다음이 모심기 소리[移秧歌]·모찌는 소리·도리깨질 소리 등 많은 종류의 농요가 전승된다.

이것들은 속도에 따라 일 절차에 따라 분화되어 모찌는 소리는 긴 모뜨는 소리·자진 모뜨는 소리, 모심는 소리는 긴 못 소리·자진 못 소리로, 김매기 소리는 긴 절로 소리·중 절로 소리·자진 절로 소리·장원질 소리 등으로 다양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들의 장단은 느린 것과 빠른 것, 그리고 12박자, 6박자, 4박자 등 다양한 장단에 남도 토리인 육자배기토리와 남도경토리로 구성되어 음악적으로 다양한 변화를 주고 있다. 진도 농요의 특성 때문에 진도 농요 가운데 전라남도 진도군 지산면 인지리의 농요가 ‘남도들노래’라는 이름으로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런 민요는 실제 농사 작업에서 떠난 지 오래이며, 요즈음에는 축제로 연행될 뿐이다. 진도에서는 도작요 외에도 목화를 재배하는 민요로 화중 밭 매는 소리도 유명하다. 진도의 화중 밭매는 소리는 염장·매화타령·방애타령·도화타령·자진방아타령 등으로 구성된다. 화중 밭매는 소리는 원래 사당패나 초라니패와 같은 소리패들이 부르는 놀이요에 근원을 두는 것이지만, 음악적 감성이 뛰어난 진도 사람들이 이것을 변화시켜 진도 농요로 정착시킨 것이다.

진도 화중 밭매는 소리는 장단도 다양하고 경토리로 된 것을 전라도 지역의 남도 토리로 변환시켜 소리의 토리도 다양하고 음악성이 대단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금 진도에서 목화 재배는 거의 하지 않으며, 화중 밭매는 소리가 농요로 불리지 않은지 오래이다. 다만, 몇몇 소리꾼이 기억할 뿐이다.

② 어요

진도는 도서지역이므로 해안 곳곳에서 어로 작업을 할 수 있지만, 어요는 어업을 주로 하는 조도지역을 중심으로 서남쪽 섬 지역에서 많이 전승된다. 이들 도서지역에서 불리는 어요 가운데 가장 많이 불리는 것으로는 노 젓는 소리, 배 채기 소리, 술비 소리이다.

진도지역 어민들이 배를 저으면서 부르는 노 젓는 소리에는 긴소리와 자진소리가 있다. 술비 소리는 어부들이 그물을 당기면서 부르는 소리이고, 배치기 소리(풍장소리)는 어민들이 배 고사 지내러 갈 때, 그리고 어로에 나가서 만선이 되어 돌아올 때 부르는 소리이다. 이들 어요는 동도토리나 서도토리에 근원을 두고 있지만 진도에 전승되면서 남도토리가 섞여 진도 특유의 특징을 드러내고 있다.

③ 놀이요

진도지역의 놀이요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강강술래이다. 강강술래는 남도의 민속신앙과 놀이에서 발생한 놀이요이고 느리고 빠른 장단에 남도 토리가 어우러져 음악성과 놀이 연출로 유명하다.

진도에서는 강강술래 놀이요에 곁들여서 ‘남생아 놀아라’, ‘개구리타령’, ‘고사리꺾기’, ‘청애엮기’, ‘덕석몰기’, ‘기와 밟기’ 등이 첨가된다. 때로는 ‘남한산성 도적이야’, ‘밭갈이 가세’, ‘손치기 발치기’, ‘문 쥐새끼 ’, ‘술래잡기’ 등을 곁들여 장대한 놀이판을 연출하고 있다.

④ 장례요

진도지역의 장례요로는 주로 상여소리가 불리고 중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달구질 소리는 잘 불리지 않는다. 대신에 진도 상여소리에는 간암 보살소리, 긴소리, 천근소리, 염불소리, 하적소리 등 많은 소리가 분화되어 장단도 다양하고 소리도 다양하다. 그러나 현재 상여를 매는 일이 별로 없어 상여소리의 전승이 어려운 상태이다.

⑤ 잡가

진도지역의 잡가(통속민요)에는 보렴·화초사거리·육자배기·자진육자배기·삼산은 반락·흥타령·개구리타령·진도아리랑 등이 불려진다.

일찍부터 서울에도 박보아를 비롯한 진도 출신의 잡가 명창들이 활약하여 왔다. 박보아는 진도 출신 명창으로 판소리 잡가에 능하였고 창극에도 능하여 많은 창극에서 이름을 떨쳤다.

2. 무가

진도에서는 박선내를 비롯한 무의식 음악에 기량이 뛰어난 명인이 많이 배출되었다. 진도의 무의식의 종류는 매우 많다. 그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것은 망자의 영혼이 극락에 가도록 천도하는 의식인 씻김굿이다.

진도지역 무의식의 음악 및 무용에 쓰이는 장단에는 살풀이, 자진모리(덩덕궁이), 삼장개비, 흘림, 선부리, 대왕놀이(엇중모리), 흘림, 선부리, 굿거리 등이 있고 그 밖에 진양 중모리도 쓰여 장단의 종류도 많고 노도토리가 주가 되지만 가끔씩 성주풀이토리를 곁들이는 선율성이 보이기도 한다.

3. 농악

진도지역에서 전승되는 농악에는 김맬 때 치는 풍장굿, 정초 가가호호 고사하는 걸궁굿, 동제인 당산굿, 벽사의식으로 치는 도깨비굿이 있다. 진도에서 유명한 것은 창우집단의 본소인 신청에서 행하던 걸궁굿인 신청농악이 유명하였다. 신청농악은 흔히 알려진 우도농악이나 좌도농악과는 편성부터가 다르며, 쇠가락이나 판굿의 판제도 다르다. 그러나 신청농악은 점점 전승이 끊어지고 있다.

걸궁굿의 편성은 집사, 농기 1명, 쇠 3명, 징 1명, 장구 1명, 북 3명, 소고 10~20명, 포수 1명, 조리중 1명으로 구성되는데, 신청걸궁굿은 집사 1명, 영기 2명, 농기 1명, 쇄잡이 1명, 쫑방울 1명, 무동 2동, 쇠 3명, 징 2명, 장구 4명, 북 4명, 소고 8명, 농구 8명, 조리중 1명, 포수 1명, 창부 1명 등으로 구성된다.

4. 판소리

진도지역에는 일찍부터 세습 국악인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어 그 가운데 판소리 명창도 많이 배출되었다. 지금 진도 출신으로 이름이 전해지는 판소리 명창으로 채맹인과 채두인이 있었으나 기악에 전념하였고, 뒤에 박동준, 신치선, 양상식, 허희, 최귀선, 신영희 등이 판소리에 전념하였다. 진도 출신 고수로서 유명한 이는 김득수가 있다.

박동준(朴東俊)은 진도 출신이며 판소리에도 능하였고 가야금산조와 가야금병창에도 능하였다. 박동준의 아우 박남준, 박서준, 박북준이 두루 판소리에 능하였고 딸 박보아는 창극과 잡가에 능하였다.

신치선(申致先)은 전라남도 담양 출신으로 김정문(金正文)에게 판소리를 배워 명창이 되었는데 춘향가, 심청가, 흥보가, 수궁가에 능하였다. 처가를 따라 진도에 와서 살았는데 신치선의 문하에서 신영희가 배웠다.

최귀선(崔貴善)은 진도군 조도면 관매도 출신으로 뒤에 조도 육동리에 살았다. 어려서 임방울과 정응민에게서 잠깐 배웠지만 국악 활동이 싫어서 고향에서 조용히 살았다. 뒤에 독공으로 공부하여 성음이 대단한 경지에 이르렀지만 섬에 은거하였기 때문에 별로 알려지지 않았다.

양상식(梁相植)은 진도 출신으로 처음에는 박동준에게 판소리를 배웠고 뒤에 김정문에게 판소리를 배워 기틀을 잡았다. 1937년 상경하여 조선성악연구회에서 정정열에게 판소리를 배워 이름을 떨쳤고 창극에 능하여 촉망받았으나 안타깝게도 40살에 죽고 말았다.

허희(許爔)는 진도에서 출생하였다. 어려서 김득수에게 판소리를 입문하였고, 강장원 문하에서 오랫동안 판소리를 공부하여 판소리 명창으로 촉망 받았다. 그러나 그 후 창극단 공연에 주력하였고 신병으로 뜻을 펴지 못하고 작고하였다.

김득수(金得洙)는 1917년 진도군 진도읍 성내리에서 출생하였고 본명이 김영수(金永洙)이다. 어려서 채두인에게 잡가와 판소리를 배웠고 오수암에게 판소리를 배워 판소리 명창으로 이름을 떨치며 협율사 공연을 다니다가 조선성악연구회에서 활동하였다. 그 뒤 김득수는 창극 활동에 주력하다가 창극이 쇠퇴하자 고수로 활동하였고 1985년 국가무형문화재 제59호 판소리 고법의 기예능보유자로 인정되었으나 1990년에 사망하였다.

5. 시나위와 산조

진도에서는 시나위 산조의 명인이 많이 배출되었지만, 그 가운데 이름이 알려진 이는 대금산조의 중시조로 알려진 박종기(朴鍾基)를 비롯하여 가야금산조에 채맹인(蔡孟仁)과 박동준(朴東俊)이 있다. 최근에 활동하고 있는 명인으로는 박대성과 박한영이 알려졌다.

박종기는 진도군 신의면 도계리에서 태어났고 진도읍내에서 살다가 20세 전후하여 삼막리로 이사하였다. 어려서부터 대금과 통소를 배웠고 공력을 쌓아 삼현육각, 산조에 능하였는데 대금산조의 경우에는 천하 명인으로 이름을 떨치었다. 한때 조선성악연구회에서 활동하였고 유성기 음반에도 취입하였다. 박종기의 문하에서 한주환이 공부한 바 있는데 한주환의 제자 이생강과 서용석 등이 오늘날 대금산조를 잇고 있어서 박종기는 대금산조의 중시조로 꼽히고 있다.

채맹인은 진도 출신으로 잡가, 삼현육각, 줄풍류, 판소리에 능하였고, 특히 가야금산조에 능하였다. 뒤에 경상북도 대구에서 활동하다가 부산으로 내려가 살다 작고하였다 한다.

박동준은 진도 출신으로 잡가명인 박보아의 부친이다. 가야금산조와 가야금 병창에 능하였고 판소리에도 능하였다. 박대성은 진도에서 태어나 지금 서울에서 활동하고 있는 아쟁산조의 대가이다. 박동준의 아들이며 박보아의 아우이다. 어려서 서울에 올라가 한일섭에게 아쟁산조를 배워 명인이 되었다.

6. 삼현육각

수피리, 곁피리, 젓대, 해금, 장고, 북으로 편성된 음악을 삼현육각이라 일렀는데 이 편성의 음악이 관아의 연향과 민간의 잔치와 큰 굿판에서 연주되었다. 원래 각 지방 삼현육각에는 대영산, 염불, 타령, 굿거리, 길군악 등이 연주 되었지만 지금 진도에서 전승되는 것은 굿거리 등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삼형육각 명인으로는 대금산조의 명인 박종기를 비롯하여 가야금산조로 유명한 채맹인과 채맹인의 아우 채두인 등 몇 명에 불과하다. 채두인은 진도 출신으로 진도 씻김굿의 기예능보유자 채계만의 숙부이며 판소리 잡가에도 능하였지만 특히 삼현육각에 능하였다.

[현황]

풍요로운 진도의 물산과 자연환경이 훌륭한 문화예술을 창조해 낼 수 있는 배경이 되었다. 진도 현지에서 만나는 군민 누구나 목청이 대단하고 소리가 뛰어나다’는 말은 진도군민들이 예술에 대한 소양과 관심이 높다는 것을 나타낸다. 진도군민들 중에는 잡가에 특히 능한 소리꾼이 많은데, 근래에 남도민요경창대회에서 진도 출신들이 대거 수상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현재 진도 특유의 음악이 배어든 공연예술 가운데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된 것으로는 진도강강술래, 남도들노래(진도농요), 진도 씻김굿, 진도다시래기 등 여러 가지가 있다.

진도 씻김굿에서는 김대례, 박병천, 채계만 등이 기예능보유자로 인정되었다. 김대례는 진도 출신으로서 평생 무업을 행하였고 국가무형문화재 진도 씻김굿의 기예능보유자로 인정되었다. 박병천(남, 48)은 진도군 지산면 출신으로 지금도 지산면 인지리에 산다. 고등학교를 나와서 18세 때 박동준에게 가야금 초보를 떼었고 30세 때 이매방에게 무용을 배웠다. 집안 어른들로부터 대대로 전승되는 진도무악을 배웠다. 채계만은 진도 출신으로 가야금에 능하였고 진도 씻김굿의 기예능보유자로 인정되었다.

진도의 농악북은 양손에 채를 들고 양쪽을 치는 양북(쌍북)으로 유명하다. 진도의 양북을 치는 인물로는 김행언, 양태옥, 박병선, 박관용 등의 이름이 전한다. 김행언은 진도 출신으로서 진도 양북의 종시조로 꼽히는 명인인 명고수 김득수의 부친이다. 진도의 전통 양북을 익혀 명인이 되어 공연단체를 구성하여 전국을 순회하여 이름을 떨쳤다.

김행언의 아명이 ‘오바’였는데 양북을 잘 쳤으므로 ‘오바야 북처랴’라는 말이 유행하였다고 한다. 김행언은 진도 양북의 시조로 꼽히었던 만큼 김행언의 문하에서 양태옥, 박병천, 박관용 등 여러 명인이 배출되었다.

양태옥은 진도 출신으로 김언행에게서 진도 양북을 배워 이름을 떨쳤다. 박병천은 국가무형문화재인 진도 씻김굿 기예능보유자로 인정된 것으로도 유명하지만, 젊어서 김언행에게 양북을 배우면서 따로 전문적으로 무용도 배웠기 때문에 양북에 멋드러진 춤사위를 곁들여 관중을 매혹시키고 있다. 이로 인하여 진도 양북은 ‘진도 북춤’으로 널리 알려졌다. 박관용은 진도 출신으로 양북을 쳤는데 지방문화재 진도 양북 기예능보유자로 인정되었다.

판소리로 유명한 신영희(申英姬)는 진도군 지산면 인지리에서 출생하였다. 어려서 부친인 신치선에게 판소리를 배웠고 뒤에 안기선, 장월중선, 강도근 등 수많은 명창에게 판소리를 배웠다. 1975년에 서울에 올라가서 김소희에게 판소리를 배워 명창으로 이름을 떨쳤다. 김소희 문하에서 수업하여 현재 국가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춘향가 기예능보유자 후보로 인정되었다.

시나위와 산조에서 유명하였던 박대성은 근래에 일본으로 가서 활약하였기 때문에 이름이 다소 잊혀졌으나 최근에 돌아와 부산에 살면서 교육과 공연 활동을 하여 박대성의 단단한 아쟁산조 기량이 다시 알려지기 시작하고 있다.

박한용은 진도 출신으로 박병천의 장남이다. 일찍이 서울에서 이생강에게 대금산조를 배워 단단한 기량을 지니고 있다. 서울에서 대학교를 다녔고 지금은 국립국악원 악사로 재직 중이다.

[의의와 평가]

진도는 민요, 농악, 무가, 잡가, 판소리, 시나위, 산조, 삼현육각 등 여러 분야에서 훌륭한 문화예술을 키워왔다. 현재 한 시·군에서 다수의 공연예술이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된 경우는 유례를 찾기 어렵다. 그러나 근대화 이후 전통문화가 무너지면서 이런 부문의 연행이 드물어서 전승이 어려운 것은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이다. 앞으로 진도의 전통음악의 전승을 위해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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