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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회현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501218
한자 臨淮縣
영어음역 Imhoe-hyeon
이칭/별칭 매구리현(買仇里縣),첨탐현(瞻耽縣)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
지역 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시대 고려/고려 전기
집필자 김병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행정구역|고지명
관련문헌 『삼국사기(三國史記)』|『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동국여지승람』|『옥주지』
상위행정구역 진도군
설립연도/일시 940년 첨탄현을 임회현으로 개칭함연표보기

[정의]

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일대의 고려·조선시대 행정구역.

[개설]

백제 때는 매구리현(買仇里縣)이었다가 신라의 삼국통일 후 지방행정제도 개편으로 757년(경덕왕 16)에 첨탐현(瞻耽縣)으로 개칭되면서 뇌산군(牢山郡)[嘉興縣]의 영현이 되었다. 첨탐현(瞻耽縣)은 고려 전기인 940년(태조 23)에 임회현으로 이름을 바꾸었고 1018년(현종 9) 임회현은 폐현되어 진도현에 합해졌다.

[관련기록]

『삼국사기(三國史記)』,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동국여지승람』, 『옥주지』, 『진도군지』 등이 있다.

[변천]

삼국시대에 진도는 백제에 속하였다. 백제는 인진도군이라 칭하여 관부는 현 고군면 고성에 두었고 영현으로는 현 고군면 일대와 군내면 방면에 도산현과 현 임회면 방면에 매구리현의 2현이 있었다. 660년(의자왕 20) 백제가 나당연합군에 항복하자 진도는 현 나주에 설치된 대방주현에 속하게 되었다.

삼국을 통일한 신라가 667년(문무왕 17)부터 687년(신문왕 7)에 걸쳐 행정구역의 재편성을 단행할 때, 진도는 9주 중의 하나인 무진주(현재 광주)에 속하였고, 고군면 일대에 진도현을 신설하여 무안군에 이속하고, 도산현을 고산현으로 개칭하고 현 월가들에 관부를 두었으며 매구리현은 봉상리들에 관부를 두었다. 757년(경덕왕 16)에 진도현은 그대로 두고 도산현뇌산군으로 승격·독립시키고 매구리현첨탐현으로 바꾸어 뇌산군에 따르게 하였다.

고려 태조 23년(940)에는 뇌산군을 폐지하고 그 자리에 가흥현·첨탐현·임회현·진도현을 외이현으로 하여 새로 진도군으로 독립시키고 관부를 현재 고성으로 정하여 영현을 3현으로 하였다. 995년(성종 14) 옥주로 개칭되어 전국 14주 중 1주가 되었다. 1018년(현종 9) 옥주를 진도로 고치고 현 고성에 있던 관부를 현 군내면 용장들로 옮겼다.

1270년(원종 11) 삼별초군이 승화후 왕온을 왕으로 추대하고 용장을 도읍으로 정하였으나 여몽연합군이 삼별초군을 토벌함에 진도가 함락되자, 주민의 대부분은 몽고에 잡혀 가면서 진도는 거의 텅 비게 되었다. 더욱이 1350년(충정왕 2) 7월부터 이듬해 11월까지 왜구의 침입으로 모든 주민이 내륙으로 피난하여 금산에 관부를 두어 80년간 진도에 행정기관을 설치하지 않았다.

조선시대에 다시 임회현이 되었으며, 1914년 일제에 의한 행정구역 개편 때 임회면이 되었다. 조선시대에는 상당곳과 여귀산에 봉수대가 설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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