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501412
한자 池勇奇
영어음역 Ji Yonggi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전라남도 진도군
시대 고려/고려 후기
집필자 김정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
출신지 충주
성별
본관 충주
상훈 중흥공신녹권(中興功臣錄券)
대표관직 전라도도순문사|안주도부원수|문하찬성사
몰년 1391년연표보기

[정의]

고려 후기의 문신.

[생애]

본관은 충주. 1378년 전라도도순문사로 장흥부에 침입한 왜구를 물리쳤다. 1388년에는 요동(遼東) 정벌에 안주도부원수로 참가했다가 우군도통사 이성계의 편을 들어 위화도에서 회군을 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1389년(공양왕 1)에는 이성계와 함께 공양왕을 세운 공으로 문하찬성사에 발탁되었으며, 중흥공신녹권(中興功臣錄券)을 받고 충의군(忠義君)에 봉해졌다. 공양왕왕익부 사건에 연루되어 진도로 유배되었고, 진도에서 생애를 마쳤다.

[활동사항]

1391년(공양왕 3)에 우왕대에 왕익부(王益富) 사건이 일어났다. 왕익부는 정읍인으로 왕중(王仲)의 아들이다. 1377년(우왕 3) 왕익부는 자신을 제26대 충선왕의 증손으로 자칭하면서, 후사 없이 죽은 공민왕의 제1근친이라고 하였다. 이를 전해들은 우왕은 왕위 찬탈을 꾀한다고 보고 왕익부를 처단하려 하였다. 이때 지용기는 처의 재종 왕익부를 숨겨주었다는 죄명을 쓰고 1391년(공양왕 3)에 곤장 100대를 맞고 진도로 유배되었다.

진도에 온 지용기는 지금의 지산면 거제리 앞 해변가에서 원정(院亭)을 짓고 시를 읊으며 낚시를 하면서 세월을 보내다 일생을 마쳤다. 그가 지은 원정의 터가 ‘지씨원정(池氏院亭)’이란 이름으로 전해졌다. 지씨원정은 조선시대에 유배되어 온 인물들의 강학소로도 이용되었고, 특히 노수신(盧守愼)이 ‘지씨원정’에서 놀았다는 기록이 『옥주지』에 있다. 현재도 지씨원정 터가 전해지고 있다.

[의의와 평가]

역모와 관련되어 유배지에서 최후를 맞기는 했으나 지용기의 행동은 전장에서는 관우(關羽)와 장비(張飛)의 용맹에 비교되었으며, 곽자의(郭子儀)와 이광필(李光弼)과 같은 자질을 소유한 자로 평가되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