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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환가설지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501528
한자 鐵環架設地
영어의미역 iron chain installation site
이칭/별칭 철쇄가설지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전라남도 진도군지도보기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정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유적
건립시기/연도 정유재란
관련인물 이순신
소재지 주소 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 녹진리

[정의]

조선 중기 정유재란 때 명량해협에 철환을 가설한 곳.

[개설]

1956년 진도교육청 교육감이었던 곽충표는 벽파진이충무공 전첩비를 건립할 때 녹진등대 옆에(현 진도대교 밑)에 ‘정유재란 철환가설지’라는 표지석을 세웠다. 정유재란 시 명량해전에서 순절한 조응량(曺應亮)[?~1597]의 표충비에 명량해협에 철환(鐵環) 또는 철쇄(鐵鎖)를 매설해 놓고 왜선을 유인해 대승을 거뒀다는 내용에 근거한 것이었다.

[현황]

명령해협에 철환가설지가 실제로 있었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다. 이중환의 『택리지』·『호남절의록』, 그리고 김해김씨 감무공파의『창의사적(倡義事蹟)』에 실린 김안방(金安邦)에 대한 기록에는 명량해협에 철환을 가설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이순신의 『난중일기』나 조정에 올린 장계(狀啓)에는 관련 사실을 확인할 수가 없다.

그런데, 이순신은 임진왜란 직전부터 철쇄 가설에 관심을 기울였다. 이순신은 전라좌수영 소포(召浦)에서 돌산으로 연결하려 했는데, 그 거리가 600m가 넘었다. 이에 비하면 명량해협의 폭은 300m에 불과한 점으로 미루어 보아 명량해협의 철쇄 가설 개연성은 높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명량해협의 유속을 이길 만한 철쇄 가설은 현대 과학으로도 불가능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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