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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친회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400211
한자 懇親會
영어의미역 Mutual Aid Association
분야 정치·경제·사회/사회·복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경상남도 진주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김인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협의단체
설립연도/일시 1924년연표보기

[정의]

일제 강점기 경상남도 진주 지역에 있었던 사회 운동 단체.

[개설]

간친회(懇親會)란 일반적인 사전적 정의에 의하면, ‘다정하고 친밀하게 사귀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모임’을 말한다. 그러나 여기에서의 간친회란 특정 모임을 지칭하는 것으로, 1920년대 활발히 전개된 노동·농민운동과 관련된 모임을 뜻한다.

특히 1924년 1월 진주노동공제회(조선노동공제회 진주지부)가 주동이 되어 삼남지역 60여개 단체의 대표자들을 진주에 소집, ‘간친회’를 열고 남조선노농동맹의 조직을 결정한 모임을 의미한다.

[설립경위]

간친회의 결성을 주도적으로 조직한 진주노동공제회는 1920년 서울에 조선노동공제회(朝鮮勞動共濟會)가 조직된 이후 다른 도시지역에 비해 늦게 1922년 2월 진주지부가 결성되었다.

[변천]

조선노동공제회 진주지부(후에 ‘진주노동공제회’로 명칭이 바뀜)는 창립 때부터 진주지역 주변의 농민 문제에 관심을 불러일으키며 실제적인 소작운동에서 크게 활약하였다.

진주노동공제회는 1922년 경상남도 진주군에 속한 면소재지에 출장소를 설립하고, 인근의 하동군과 사천군에 속한 일부 면에 지회를 설치하면서 활동범위를 넓혀나갔다.

[활동사항]

진주노동공제회는 1923년에는 양화직공조합(洋靴職工組合) 등 노동조합을 산하기구로 편입시키고, 진주지역 사회운동 단체연합을 주도해나가기도 하는 등 그 역할이 두드러졌다.

이러한 추세에 힘입어 농민·노동자 등 일반민중의 조직적인 운동이 활성화되었고, 특히 농민운동 분야에서는 1922년 9월에 전국 최초로 소작 노동자대회를 개최하여 정조(定組) 폐지, 지세(地稅)·부가세의 지주 부담, 물품증여 전폐 등의 요구사항을 내걸었다.

군청당국은 지주들을 소집해서 진주지주회(晋州地主會)를 결성하고 농민들의 요구를 수용하였으며, 이에 응하지 않은 일부 지주에 대해서는 강제적인 공동경작운동을 전개하는 등 농민들의 실력 행사도 전개되었다.

이러한 주위 여건에 힘입어 1924년 1월에는 진주노동공제회가 주동되어 삼남지역 60여개 단체의 대표자들을 진주에 소집, 간친회(懇親會)를 열고 남조선노농동맹을 조직하기로 결정하였다.

[의의와 평가]

1924년의 전국적인 조선노농총동맹의 결성은 경상남도 진주지역의 간친회 결성에 큰 영향을 끼쳤다. 한편, 이에 앞서 1922년 4월 25일에 일어나 ‘인간동등(人間同等)·귀천부재(貴賤不在)·봉건타파(封建打破)’ 등의 구호를 내걸었던 형평운동과의 관계도 살필 수 있는데, 간친회는 이러한 맥락에서 농민과 노동자들의 권익을 보호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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