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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700478
한자 朴坤
영어공식명칭 Park Gon
이칭/별칭 순원(順元),어변당(魚變堂)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상남도 밀양시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박병련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특기 사항 시기/일시 1834년 - 밀양 어변당 중수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79년 12월 29일 - 밀양 어변당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90호 지정
거주|이주지 연상리 - 경상남도 밀양시 무안면 연상리 지도보기
사당|배향지 어변당 - 경상남도 밀양시 무안면 연상1길 31[연상리 394]지도보기
사당|배향지 덕연서원 - 경상남도 밀양시 무안면 연상리 지도보기
성격 무신
성별 남성
본관 밀양

[정의]

조선 전기 경상남도 밀양 출신의 무신.

[가계]

박곤(朴坤)[?~?]은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순원(順元), 호는 어변당(魚變堂)이다. 경상남도 밀양에서 태어났다. 박곤의 정확한 출생 연도는 알 수 없으나 홍치(弘治) 연간이라는 기록이 있으므로 1488년에서 1505년 사이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한다. 태사 박언부(朴彦孚)의 후손이며, 아버지는 박의번(朴義蕃)이다. 박곤의 아들은 군수 박옥형(朴玉衡)이고, 손자는 첨정 박몽룡(朴夢龍)이다.

[활동 사항]

박곤은 어려서부터 무예와 용맹이 출중하였고, 효심이 깊었다. 연못을 만들고 고기를 길러 부모를 봉양하면서도 소, 돼지, 양고기를 올리지 못함을 안타까워하였다. 지당(池堂)에서 고기가 변하여 붉은 용이 되어 승천하면서 붉은 비늘 한 쌍을 남기는 꿈을 꾸어 지당의 이름을 어변당(魚變堂)이라 하고, 연못을 적룡지(赤龍池)라 하였다.

그 길조에 부응하듯 박곤은 무과에 급제하였고, 1555년 5월 을묘왜변(乙卯倭變) 때 전라도 영암을 침범한 왜구를 쳐서 물리쳤다. 이 훈공으로 함경도 삼수부사에 제수되었다. 박곤은 이약(吏約)을 만들어 아전들이 삼정(三政)에 농간을 부리지 못하도록 하였으며, 학문을 장려하였다.

박곤은 이후 명나라 사신단에 포함되어 종사관으로 갔는데, 박곤의 무용을 높이 본 중국 황제가 자신의 첩(妾) 3명을 내려 주며 귀국을 만류하여 3년여를 체류하였다. 이후 조선에서 사화동(沙火同)이 변란을 일으켰다는 소식을 듣고 청원하여 1588년 귀국하였다. 이후 박곤의 행적은 기록이 없다.

중국 여인들과의 사이에 세 아들을 두었는데, 이 세 아들이 임진왜란 때 도총관 유정(劉綎)의 군교로 자원하여 조선의 동족을 만났다고 한다.

신익전(申翊全)[1605~1660]은 밀양 최초의 『밀양지』에서 “박곤은 무용으로 알려졌으니 역시 잊힐 수 없는 인물이다.”라고 하였다. 그런데 조선 초 동명이인인 죽산박씨 박곤의 행적과 뒤엉켜 있어 여러 곳에서 기록의 혼선을 초래하고 있다.

[상훈과 추모]

박곤이 지었던 어변당임진왜란을 겪으면서도 온전히 남아 1834년(순조 34)에 중수하였으며, 1979년에 12월 29일 경상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이후 1982년에 정부 보조금으로 확장 중건하였다. 어변당경상남도 밀양시 무안면 연상리에 있다. 어변당 옆에 덕연서원(德淵書院)을 세워 봄과 가을에 박곤의 제사를 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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