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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702006
한자 瞻慕齋[東山里]
이칭/별칭 광명재
분야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경상남도 밀양시 상남면 세천3길 21[동산리 1074]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하강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7세기 초 - 광명재로 건립
개축|증축 시기/일시 1956년연표보기 - 광명재에서 첨모재[동산리]로 개칭하여 중건
현 소재지 첨모재[동산리] - 경상남도 밀양시 상남면 세천3길 21[동산리 1074]지도보기
원소재지 광명재 - 경상남도 밀양시 상남면 세천3길 21[동산리 1074]
성격 재실
양식 팔작지붕
정면 칸수 4칸
측면 칸수 2칸
소유자 광산김씨 밀양 세천문중

[정의]

경상남도 밀양시 상남면 동산리에 있는 광산김씨 입향조 김시성이 조선 후기 건립한 재실.

[개설]

첨모재(瞻慕齋)[동산리]경상남도 밀양시 상남면 동산리 입향조 쌍괴정(雙槐亭) 김시성(金時省)[1579~1631]의 자취가 서려 있는 집이다. 김시성은 광산김씨 전리판서공파[파조 김광리]의 후손이다. 명종 때 합천에서 장인 이원량[여주이씨]이 거주하던 밀양 구대곡[현 용활]으로 이거한 세심헌 김천수(金天授)의 손자이다. 용활에서 상남면 동산리 상세천[윗마을]으로 이사하였다. 이웃한 중세천[중마] 마을의 한복판에 김시성을 추모하는 첨모재[동산리]가 있다.

김시성은 의금부도사를 지내었지만 출세의 뜻을 접은 채 산수에 소요하면서 은거의 즐거움을 누렸고, 한 쌍의 홰나무를 심어서 호로 삼았다. 재실을 건축하여 ‘광명재(光明齋)’라 하였는데, 마을 후손들에게 300여 년 동안 전하였다. 1956년 봄 종중에서 퇴락한 재실을 복원하여 ‘첨모재’라 명명하였다.

기문은 1965년 방후손 김영국(金永國)이 지었다. 한편 시헌 안희원(安禧遠)[1846~1919]의 「김시성 묘갈명」에는 김천수의 5대조 김직(金織)이 밀양 입향조라고 되어 있다.

[위치]

첨모재[동산리]밀양시 상남면 동산리 1074번지에 있다. 세천리 세천마을회관에서 동쪽으로 300m 들어가면 마을 길가의 인산 기슭에 있다.

[변천]

첨모재[동산리]는 김시성이 17세기 초 건립하였으나 오랜 세월로 허물어진 것을 후손들이 1956년 중건하였다.

[형태]

첨모재[동산리]는 팔작지붕의 목조 건물로 정면 4칸, 측면 2칸으로 이루어져 있다, 건립 후 위치나 형태 변경이 거의 없다.

[현황]

첨모재[동산리]는 후손들이 잘 보존하고 있어 건물 상태가 양호한 편이다.

[의의와 평가]

첨모재[동산리]를 통하여 광산김씨의 경상남도 밀양 입촌 내력과 밀양 재지 사족의 변화를 파악할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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