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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702008
한자 陟望齋
분야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경상남도 밀양시 청도면 두곡3길 126-3[두곡리 783]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하강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924년연표보기 - 척망재 건립
이전 시기/일시 1975년 - 척망재 경상남도 밀양시 청도면 두곡리에서 경상남도 밀양시 청도면 두곡리 783으로 이전
현 소재지 척망재 - 경상남도 밀양시 청도면 두곡3길 126-3[두곡리 783]지도보기
원소재지 척망재 - 경상남도 밀양시 청도면 두곡리 안산
성격 재실
양식 목조
정면 칸수 5칸
측면 칸수 3칸
소유자 서흥김씨 밀양 청도문중
관리자 서흥김씨 밀양 청도문중

[정의]

경상남도 밀양시 청도면 두곡리에 있는 서흥김씨의 일제강점기 재실.

[개설]

척망재(陟望齋)가 있는 경상남도 밀양시 청도면 두곡리 듬실마을은 서흥김씨 김익성[1729~1790]의 후손들이 터전을 일군 곳이다. 입향조 김익성(金益聖)은 한훤당(寒暄堂) 김굉필(金宏弼)의 9세손이고, 영남현풍파 김언상의 8세손이다. 1750년(영조 26) 창녕 계팔(桂八)에서 두곡리로 옮겼다. 5세손 두은 김해동[1859~1919]의 아들 김희진(金熙震)이 셋째 형 및 조카들과 함께 부모 묘소가 바라보이는 두곡리 서쪽 안산(案山)에 1924년 첨망소(瞻望所)로 척망재를 건립하였다.

김희진의 다섯 형제는 모두 현명하고 부모를 지성껏 섬겨 주위의 부러움을 샀으나 집안에 화가 겹쳐 두 형과 막내 아우가 연이어 세상을 떠났다. 남은 두 형제가 근검한 생활로 10년 사이 집안이 다시 일어나고 자손이 번성하자 부모와 형제를 추모하기 위하여 재실을 짓고는 척망재라 불렀다. 척망재의 ‘척(陟)’은 『시경』 위풍척호의 ‘척호척기(陟岵陟屺)’에서 따온 것이다. “산에 자주 올라가 고향 쪽을 바라봄”이라는 뜻으로 곧 부모를 그리워하는 것이다. ‘망(望)’은 묘소가 재실로부터 바라보인다는 뜻이다. 기문은 김희진의 요청으로 순재(醇齋) 김재화(金在華)[1887~1964]가 1926년 늦가을에 지었고, 편액은 안종석(安鍾奭)의 글씨이다.

[위치]

척망재경상남도 밀양시 청도면 두곡리 783번지에 있다. 두곡리 듬실 마을회관에서 30m 서쪽으로 ㄴ자 방향으로 꺾어 올라가면 민가 주택 사이에 재실이 있다.

[변천]

척망재는 재실을 창건한 지 50년이 지난 1975년 안산에서 마을 가운데로 이전하였다.

[형태]

척망재는 팔작지붕의 목조 건물로 정면 5칸, 측면 3칸으로 이루어져 있다. 시멘트 담장을 둘렀고, 출입문은 일반 가정 주택처럼 보이는 철 대문이다.

[현황]

척망재는 보존 상태가 양호하나 민가의 생활 공간처럼 활용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척망재를 통하여 서흥김씨의 경상남도 밀양 청도 정착과 밀양 지역 사족의 변화를 파악할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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