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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702013
한자 新溪齋
분야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경상남도 밀양시 초동면 신호2길 5-9[신호리 54]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하강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8세기 - 신계재 건립
개축|증축 시기/일시 1957년 - 신계재 중건
개축|증축 시기/일시 1994년 - 신계재 보수
개축|증축 시기/일시 2019년 - 신계재 보수
현 소재지 신계재 - 경상남도 밀양시 초동면 신호2길 5-9[신호리 54]지도보기
성격 재실
양식 팔작지붕
정면 칸수 5칸[신계재]|4칸[별묘]
측면 칸수 3칸[신계재]|1칸[별묘]
소유자 밀양박씨 인당공파 대종회
관리자 밀양박씨 인당공파 대종회

[정의]

경상남도 밀양시 초동면 신호리밀성박씨 인당공파의 조선 후기 재실.

[개설]

신계재(新溪齋)밀양박씨(密陽朴氏) 인당공파(忍堂公派) 파조 박소(朴昭)[1347~1426]의 후손 박이겸(朴以謙)[1558~1592]을 시작으로 이하 4세 선조를 함께 향사하기 위하여 지은 재실이다.

은산군파 파조 박영균(朴永均)의 장남 송은 박익[1332~1398]의 둘째 아들로 안의현감을 지낸 박소는 스승 포은 정몽주의 권유로 부북 사포에서 춘정 변계량[1369~1430]이 살던 초동 대구령과 가까운 신촌[모선동]으로 이거하였다. 세 아들 중 차남 박중번(朴仲蕃)의 5세손 박이겸(朴以謙)과 박이눌(朴以訥) 형제가 초동 새터[신호]와 새월[신월]에 각각 살았다.

[위치]

신계재경상남도 밀양시 초동면 신호리 54번지에 있다. 초동초등학교에서 신호저수지 방향의 신호리 새터 본동으로 약 100m 가면 마을회관 옆에 재실이 있다. 길가 초입에 신계재 안내판이 있어 찾기 쉽다.

[변천]

임진왜란 때 원종공신으로 통정대부 공조참의에 증직된 박이겸의 5세손이자 파조 박소의 11세손인 덕계 박증엽[1688~1755]이 박소가 살던 새터에 별묘와 함께 봉사청(奉祀廳)으로 건립하여 참의공 박이겸 이하 4대[박효순, 박수견, 박봉, 박승륜]의 묘소에 함께 제향할 때 재숙소로 삼았다.

1868년 서원 훼철령으로 새월의 덕남서원이 해체되는 시점에 신계재의 구 건물을 철거하고 같은 자리에 덕남서원의 건물을 그대로 이건하여 중수하였다. 1957년 또 중수하면서 ‘신계재’라 편액하였고, 내벽에 걸린 「신계재기」는 박이겸의 12세손 박희무(朴熙武)가 족제 박희진(朴熙晉)의 요청으로 1957년 12월에 지었다. 1994년 보수 공사를 하였고, 2019년 서울 화수회 협찬으로 기와를 다시 얹었다. 현재 ‘신계재실(新溪齋室)’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형태]

신계재는 팔작지붕 형태의 목조 건물로, 본채는 정면 5칸, 측면 3칸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별묘는 정면 4칸, 1칸으로 이루어져 있다. 재실 곁에 사당이 붙어 있다.

[현황]

신계재의 재실은 비교적 잘 관리되고 있으나 후손들의 외지 이동과 고형화로 별묘는 기능을 거의 상실한 상태이다.

[의의와 평가]

신계재를 통하여 밀양박씨 인당공파의 밀양시 초동면 신호리 정착 과정과 밀양 재지 사족의 변화를 파악할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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