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700202
한자 內一洞
영어공식명칭 Naeil-dong
이칭/별칭 내일리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상남도 밀양시 내일동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기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14년연표보기 - 경상남도 밀양군 부내면 내일동 개설
변천 시기/일시 1918년연표보기 - 경상남도 밀양군 부내면 내일동에서 경상남도 밀양군 밀양면 내일동으로 개편
변천 시기/일시 1931년 4월 1일연표보기 - 경상남도 밀양군 밀양면 내일동에서 경상남도 밀양군 밀양읍 내일동으로 개편
변천 시기/일시 1989년 1월 1일연표보기 - 경상남도 밀양군 밀양읍 내일동에서 경상남도 밀양시 내일동으로 개편
성격 법정동
면적 12.09㎢
가구수 1,101가구
인구[남/여] 2,010명[남 969명|여 1,041명]

[정의]

경상남도 밀양시에 속하는 법정동.

[개설]

내일동은 밀양시 동 지역의 중앙에 있다. 남쪽으로 밀양강이 연하여 흐르고 있으며 영남루가 세워져 있다. 동쪽으로 용평동, 서쪽으로 내이동과 접하며, 북쪽에는 교동이 있다. 조선시대 밀양부 읍성이 있던 곳이다.

[명칭 유래]

내일동은 조선시대 읍성 안의 서문내리, 남문내리, 동문내리가 있던 곳으로 지금도 동문안, 서문안, 남문안 동리라는 이름이 사용된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당시 내일동(內一洞)이 되었다. ‘내일’ 이름은 부내면의 중심이면서 첫째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후 ‘내일리’로 부르기도 하였다.

[형성 및 변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서부리와 남부리, 동부리와 노상리, 노하리 및 교동리 일부를 합쳐 경상남도 밀양군 부내면 내일동이 개설되었다. 1918년 부내면이 밀양면으로 개칭되어 경상남도 밀양군 밀양면 내일동이 되었다. 1931년 4월 1일 밀양면이 밀양읍으로 승격되어 경상남도 밀양군 밀양읍 내일동으로 개편되었다. 1989년 1월 1일 밀양읍이 밀양시로 승격되어 경상남도 밀양시 내일동이 되었다. 1998년에 용평동활성동이 행정동인 내일동의 관할이 되었다.

내일동은 조선시대 밀양 읍치의 중심이었던 성곽 안에 형성된 동리이다. 읍성은 북쪽의 아북산(衙北山)[118.6m]을 주산으로 하고 동쪽의 아동산(衙東山)[88.1m] 줄기를 따라 축성되었다. 내부는 객사와 동헌을 중심으로 관아 건물이 배치되어 있었으며, 관아에서 남문과 밀양 영남루에 이르는 도로가 당시 고을의 중심축이었다. 동문과 서문을 잇는 도로가 십자형으로 지나고 있으며, 도로 주변에 동문, 서문, 남문 마을이 형성되었다. 읍성 성벽은 1902년 철도 부설 때 석재로 이용됨에 따라 해체되었으며, 이로 인해 읍성 내외의 구분이 약해지고 시가지가 읍성 바깥쪽으로 확대되었다.

[자연환경]

내일동 동쪽에는 아북산과 아동산을 잇는 산줄기에 읍성의 동쪽 성벽이 축조되어 있으며 동문이 복원되어 있다. 동쪽 산지는 밀양부의 진산인 화악산이 남쪽으로 이어져 옥교산[538.4m]과 추화산으로 연결되는 산줄기의 말단부에 해당한다. 아동산의 남쪽 사면은 밀양강에 절벽을 형성하고 있으며, 영남루가 세워져 있다. 읍성은 산지를 이용하여 평산성의 형태로 축조되었다. 관아와 객사가 산지 서쪽의 평지에 세워져 읍치가 형성되었다.

[현황]

2021년 12월 현재 1,101세대, 2,010명[남자 969명, 여자 1,041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내일동은 조선시대 읍성을 중심으로 형성된 마을이기 때문에 전통적인 옛 모습이 남아 있다. 도시 중심 기능은 내이동삼문동으로 이전되고 읍성과 영남루, 전통시장 등이 어우러지는 구도심의 경관을 유지하고 있다. 관아와 객사지 등이 복원되어 있고, 밀양 영남루[보물]를 비롯한 밀양 천진궁, 밀양 아랑각 등의 역사 유적이 남아 있다. 전통시장인 아리랑시장에서는 매월 2일과 7일에 밀양장이 정기적으로 열리고 있다. 교육기관으로 밀양여자고등학교가 아북산 남쪽 산록에 있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