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700446
한자 密陽 官衙址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경상남도 밀양시 중앙로 348[내일동 376]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변광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훼손 시기/일시 1592년 4월연표보기 - 밀양 관아 임진왜란 때 화재로 소실
개축|증축 시기/일시 1611년 - 밀양 관아지 중창
개축|증축 시기/일시 2010년연표보기 - 밀양 관아지 복원
문화재 지정 일시 2009년 7월 16일연표보기 - 밀양 관아지 경상남도 기념물 제270호 지정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21년 6월 29일 - 밀양 관아지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개정에 따라 경상남도 기념물 지정 번호 삭제
현 소재지 밀양 관아지 - 경상남도 밀양시 중앙로 348[내일동 376]지도보기
성격 관아
관련 인물 이영|오응태|원유남|정존중
문화재 지정 번호 경상남도 기념물 제270호

[정의]

조선시대 경상남도 밀양에서 밀양도호부사와 관속들이 공무를 수행하던 관아의 터.

[개설]

밀양 관아지(密陽官衙址)에는 다양한 기능을 가진 건물이 존재하였다. 핵심 공간은 부사가 일상 행정 업무를 보는 동헌(東軒)과 관리나 사신의 방문 거처이자 망궐례를 행하는 객사(客舍)로 양분된다. 그 외 향반의 자문 기관인 향청(鄕廳), 군관청(軍官廳), 아전의 근무처인 인리청(人吏廳), 사령청, 관노방, 교방, 삼공형의 근무처인 부사(府司) 등이 있었다. 동헌의 편액은 ‘근민헌(近民軒)’으로 백성을 가까이 하여 돌본다는 뜻이며, 객사의 편액은 ‘요선관’으로 귀한 사람을 맞이한다는 뜻이다.

[건립 경위]

밀양 관아지는 1479년 밀양읍성을 지을 때 관아 건물로 100여 칸이 마련되었다고는 전하나 구체적인 시기는 알 수 없다. 이후 1592년 4월 임진왜란 당시 소실되었다가 1611년 중창되었다. 밀양 관아지는 1927년 경상남도 밀양시 삼문동밀양군청이 새로 지어지면서 밀양읍사무소, 내일동사무소 등으로 이용되다가 2010년에 옛 관아로 복원되었다.

[위치]

밀양 관아지밀양시 내일동 관아삼거리 위쪽에 있으나, 조선시대에는 삼거리 아래쪽으로 남천강까지 모두 관아의 영역이었다고 전한다.

[형태]

밀양 관아지는 동헌을 비롯한 아사(衙舍)가 100여 칸 있었는데, 정문인 응향문(凝香門), 정청인 근민헌, 부사의 거처인 북별실(北別室), 책방[비서]의 업무실인 매죽당 등이 남아 있다. 남문 안에 있던 객사는 남아 있지 않지만 밀양 영남루(密陽嶺南樓)는 객사의 일원이었고, 현재 영남루 북쪽의 천진궁(天眞宮)을 포함한 일곽 전체가 모두 객사터였다.

정문인 응향문 옆에는 밀양도호부사와 경상도관찰사 등의 선정비[불망비] 19기(基)가 세워져 있는데, 과거에 마을 입구나 도로변에 세웠던 것을 모아 놓은 것이다.

[현황]

밀양 관아지는 조선시대 관아의 웅장한 모습은 볼 수 없지만, 현재 아사터로 복원된 건물인 응향문, 근민헌, 납청당(納淸堂), 매죽당(梅竹堂), 북별실과 객사터의 영남루가 있다. 밀양 관아지는 2009년 7월 16일 경상남도 기념물 제270호로 지정되었다. 2021년 6월 2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개정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었다.

[의의와 평가]

밀양 관아지는 조선시대 경상남도 밀양 지역의 역사를 보여 주는 건축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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