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당씨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700753
한자 密陽唐氏
영어공식명칭 Milyang Dangssi|Milyang Dang Clan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경상남도 밀양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배태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본관 밀양 - 경상남도 밀양시
성씨 시조 당성
입향 시조 당성

[정의]

당성을 시조이자 입향조로 하는 경상남도 밀양의 세거성씨.

[연원]

밀양당씨(密陽唐氏)는 중국 진양(晋陽)[산서성]에 연원을 두고 있고, 송(宋)나라 휘종조(徽宗朝)에서 승상(丞相)에 올랐던 당각(唐恪)의 7세손 당성(唐誠)[1337~1413]이 시조이자 입향조이다.

당성은 본래 절강성(浙江省) 명주(明州) 출신으로 고려 말 원(元)나라에서 병란을 피하여 고려에 귀화하여 정동행성연사(征東行省椽史)가 되었고, 그 뒤 중랑장겸사평순위부평사와 판전농시사 등을 역임하였다.

1392년(태조 1) 개국원종공신(開國原從功臣)에 책록되어 밀양을 사적(賜籍)받았고, 예조·형조·공조의 전서(典書)를 역임하였다. 1398년 호조전서로 재직 중 노비소송에 패하자 노비변정도감을 비방하다가 파직되었으나, 곧 검교판한성부사에 제수되어 문서응봉사제조(文書應奉司提調)를 겸하였다. 1401년(태종 1) 태종에게 실직(實職)에 보임하여 줄 것을 청하여 개성부부유후(開城府副留後)에 제수되었고, 1409년 공안부윤 등을 역임하였다.

당씨의 본관은 밀양 외에도 청주(淸州)·남원(南原)·영광(靈光)·경주(慶州) 등 다섯 본(本)까지 기록하는 문헌이 있으나 모두가 세거지명(世居地名)에 불과하며, 오늘날에는 밀양 단본(單本)으로 알려졌다.

[입향 경위]

당성이 1392년 개국원종공신에 책록되어 밀양을 사적받아 관향(貫鄕)으로 삼게 되었고, 예부상서 박정수(朴廷秀)의 손녀와 결혼하여 산외 다죽에 정착하였다.

[인물]

중추원사(中樞院使)를 지낸 당몽현(唐夢賢)과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당몽량(唐夢良) 형제, 임진왜란 때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에 오른 당언량(唐彦良),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당숙손(唐淑孫), 부호군(副護軍) 당직(唐稷) 등이 밀양당씨의 인물로 유명하였다.

[현황]

밀양당씨는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1985년에는 194가구 869명, 2000년에는 300가구 1,013명, 2015년에는 1,014명으로 조사되었다.

[관련 유적]

모당천(毛唐泉)은 밀양시 산외면 밀양 죽원재사(竹院齋舍)의 표지석 바로 밑에 있다. 모당천은 고려 말 원나라의 횡포를 피하여 피난 온 모씨(毛氏)와 당씨(唐氏)가 거주하면서 식수로 사용하기 위하여 만든 샘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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