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산리 효자각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700995
한자 駕山里 孝子閣
영어공식명칭 Commemorative Pavilion of Gasan-ri
분야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경상남도 밀양시 부북면 가산리 204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신재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981년연표보기 - 가산리 효자각 건립
현 소재지 가산리 효자각 - 경상남도 밀양시 부북면 가산리 204 지도보기
원소재지 가산리 효자각 - 경상남도 밀양시 부북면 가산리 204
성격 정려각
양식 맞배지붕
정면 칸수 1칸
측면 칸수 1칸
소유자 순창설씨 문중
관리자 순창설씨 문중

[정의]

경상남도 밀양시 부북면 가산리에 있는 정려각.

[개설]

가산리 효자각(駕山里孝子閣)은 효자 설광욱(薛光旭)[1791~1822]의 효행을 기념하기 위하여 건립된 정려각이다. 정려각이란 효자, 열녀, 충신 등의 행적을 기리기 위해 마을 입구 등에 세운 건물이다.

설광욱은 본관이 순창(淳昌)이고, 설총(薛聰)의 후예이며, 옥천군파(玉川君派) 11대손이다. 순창설씨(淳昌薛氏)는 전라북도 순창군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이다. 설거백(薛居伯)을 시조로 삼고 경주를 본관으로 삼아 세계를 계승하다가 36세손 설자승(薛子升)이 순화백에 봉해지자 순창으로 분관하였다.

옥천군파(玉川君派) 시조는 옥천부원군 설계조(薛繼祖)[1418~1486]다. 설계조는 세조 때 정난 3등 공신에 추대되고 병조판서(兵曹判書)를 지내며 옥천부원군(玉川府院君)에 봉작된 바 있다. 그 후에 옥천군파의 일부 자손이 경상남도 밀양시 부북면 가산리로 이주하여 집성촌을 이루었다.

설광욱은 부모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였다. 나이 9세에 아버지의 상을 당하자 슬픔을 다하였다. 어머니가 병들어 눕자 종기의 고름을 입으로 빨고 대변을 맛봐 병세를 살폈고, 밤새 하늘에 기도하며 손가락을 잘라 피를 먹여 연명시켰다. 부모가 세상을 떠난 후에 각각 3년간 시묘하였다. 1894년 경상도 지역 유림이 연명으로 설광욱의 효행을 포정하기를 조정에 상소하기도 하였다.

[위치]

가산리 효자각경상남도 밀양시 부북면 가산리 밀양아리나에서 가산저수지 방향으로 조금 가면 보인다. 가산리 마을회관 옆에 있다.

[변천]

가산리 효자각은 1981년 건립되었다.

[형태]

가산리 효자각 주위는 토석 담장이 둘러싸고 있다. 대문은 없고 창살로 막혀 있다. 효자각은 정면과 측면 1칸의 맞배지붕에 골기와로 되어 있으며, 사면에 모두 홍살이 꽂혀 있다. 전면 상부에 ‘효자각(孝子閣)’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가산리 효자각 안에 들어 있는 효자비에는 ‘효자심재설공포적비(孝子心齋薛公褒蹟碑)’라고 적혀 있다.

[현황]

가산리 효자각은 건물 관리 및 주변 환경이 양호한 편이나 체계적 관리가 필요하다.

[의의와 평가]

가산리 효자각은 1인 정려각으로 조선 후기 이후 정려 건축의 전형적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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