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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900526
한자 綾城 具氏
영어공식명칭 Neungseong Gu clan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경기도 남양주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권기중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본관 능성 - 전라남도 화순군 능주면
묘소|세장지 능성 구씨 묘역 - 경기도 남양주시 금곡동 산93 지도보기
성씨 시조 구존유(具存裕)
입향 시조 구수영(具壽泳)

[정의]

구존유를 시조로 하고, 구수영을 입향조로 하는 경기도 남양주시의 세거성씨.

[개설]

구존유(具存裕)를 시조로 하는 능성 구씨(綾城 具氏)는 조선의 대표적인 무관 벌열(閥閱) 가문이다. 경기도 남양주에는 인조반정을 주도하고 대표적인 세도가였던 구굉능성 구씨 도원수파의 인물이 세거하였다.

[연원]

능성 구씨의 시조는 구존유이다. 구존유는 고려에서 문과 급제하여 삼중대광검교상장군(三重大匡檢校上將軍)을 지냈다. 전라도 능성현[현 전라남도 화순군 능주면]에서 거처한 신안 주씨의 시조인 주잠(朱潛)의 딸과 혼인함으로써 능성에 자리하였다. 이때부터 능성을 본관으로 하는 능성 구씨가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능성 구씨는 조선에 들어와서 중앙의 요직에 진출하여 벌열 가문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문과자 급제자 수는 모두 54명으로 다소 적으나, 9명의 공신이 배출되었고 3명의 부마, 1명의 왕비 등 왕실과의 혼인을 통하여 벌열 가문이 될 수 있었다. 또한 조선 후기 주요 무관직의 세습을 통하여 주요 세력이 될 수 있었다. 조선에서 363명의 무과 급제자를 배출하였으며 특히 인조반정 이후부터는 주요 무관직을 훈척에게 맡기게 되어 능성 구씨 또한 무관직 벌열 가문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선전관이 24명 배출되었고, 국왕의 친위 조직인 별군직도 9명이 등장하였다. 이처럼 능성 구씨는 공신과 외척, 무관직 벌열 가문으로서 조선의 대표적인 가문이었다.

[입향 경위]

경기도 남양주시에는 능성 구씨 도원수파 구수영의 후손들이 주로 세거하고 있다. 세거하고 있음은 경기도 남양주시 금곡동에 주로 분포하여 있는 능성 구씨 묘역을 통하여 확인할 수 있다. 능성 구씨 묘역에는 구수영, 구수영의 증손인 능안부원군 구사맹, 구사맹의 아들인 능성부원군 구굉, 구희경, 구상정의 묘가 있다.

입향조인 구수영은 성종 즉위 시 원종공신(原從功臣)이 되었으며, 오위도총부도총관과 판의금부사 등을 역임하였다. 이후 경기순무사로 외직에 나갔다가 중앙으로 복귀하였는데, 마침 중종반정이 발생하자 이에 가담하여 정국공신(靖國功臣) 2등에 책록되었으며, 능천부원군(綾川府院君)에 봉해졌다.

구수영의 4대손 구굉(具宏)은 인조반정 시 정사공신(靖社功臣) 1등에 책록되었다. 인조반정은 능성 구씨의 위상이 높아지게 된 주요한 계기가 되었는데, 구굉은 인조반정에서 김류(金瑬)·이귀(李貴) 등과 함께 인조를 추대하였다. 이후 구굉은 1624년(인조 2) 이괄의 난 때 인조를 호종하여 충청남도 공주로 피난하였고,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을 수비하였다. 구굉은 총융사, 어영대장, 훈련대장, 한성판윤과 삼도수군통제사, 병조판서 등 고위 무관직을 역임하였다. 이처럼 인조반정 이후 구굉이 고위 관직을 역임하면서 구굉을 중심으로 구사맹의 후손들이 남양주시에 세거를 형성하며 가계를 계승하게 되었다.

구굉의 부친인 구사맹은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거쳐 의정부 좌참찬을 역임하였다. 구사맹의 딸은 선조의 5남이자 추존왕인 원종의 비가 되었고 구사맹능원부원군에 책록되었다.

[현황]

1992년 간행된 『양주군지』에 따르면 1970년대 경기도 남양주시 지역에 거주한 능성 구씨는 모두 80가구, 약 300여 명이며 주로 경기도 남양주시 와부읍에 세거하였으며,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읍·화도읍에도 일부 거주하고 있었다. 2015년 인구 조사 결과 경기도 남양주시에 거주하는 능성 구씨는 총 1,731명이다.

[관련 유적]

경기도 남양주시 금곡동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 장현리,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묵현리 등지에는 능성 구씨의 묘역이 있다. 그중 능성 구씨의 중심 인물이라 할 수 있는 구사맹구굉, 그리고 후손의 묘는 대부분 경기도 남양주시 금곡동에 모여 있다. 입향조인 구수영의 묘역도 경기도 남양주시 금곡동에 있는데, 본래 경기도 양평군 서종면에 있었던 것을 1914년 이건하였다.

각각의 능성 구씨 묘역에는 각 인물의 신도비도 존재한다. 구사맹의 신도비는 1635년(인조 13)에 세워진 것으로 비문은 이식(李植)이 지었다. 구굉의 신도비는 1660년(현종 원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송시열이 비문을 짓고, 송준길(宋浚吉)이 글을 썼다. 비신의 중앙에는 직경 5~10㎝ 크기의 탄흔 자국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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