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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900527
한자 延安 李氏
영어공식명칭 Yeonan Yi clan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경기도 남양주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권기중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입향조 생년 시기/일시 1628년 5월 25일 - 연안 이씨 입향조 이단상 출생
입향조 몰년 시기/일시 1669년 9월 19일 - 연안 이씨 입향조 이단상 사망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97년 - 연안 이씨 이단상 묘소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에서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 부평리로 이전
입향지 내곡리 -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 내곡리 지도보기
세거|집성지 내곡리 -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 내곡리
묘소|세장지 이단상 묘소 -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 부평리 지도보기 마명마을
성씨 시조 이무(李茂)
입향 시조 이단상(李端相)

[정의]

이무를 시조로 하고 이단상을 입향조로 하는 경기도 남양주시의 세거성씨.

[개설]

연안 이씨(延安 李氏)는 신라의 삼국 통일에 크게 기여하여 연안후(延安侯)에 봉해진 이무(李茂)를 시조로 하며, 경기도 남양주시의 연안 이씨는 조선 효종 때 대간과 부제학을 역임한 이단상(李端相)을 입향조로 한다. 오늘날 경기도 남양주에는 연안 이씨 이덕승의 8대조가 1800년대에 세웠다고 전해지는 동관댁이 있어 연안 이씨의 세거 양상을 확인할 수 있다.

[연원]

연안 이씨의 시조인 이무는 본래 당나라 출신으로 당 고종 때 중랑장을 역임하였으며, 나당연합군이 백제를 침략할 때 소정방의 부장으로 신라에 들어왔다고 전한다. 이무는 황해도 연안 지역을 방어하였는데, 측천무후 집권 시 신라에 귀화하였다. 김유신의 주청으로 연안후에 봉해졌으며, 식읍 1천 호를 받았다. 이에 이무의 후손들은 연안을 본관으로 정하였다. 그러나 시조 이후의 계보는 전해지지 않아, 이무의 후손들은 고려 시대에 현달한 조상을 중심으로 10개의 분파를 형성하였다. 이때 형성된 분파는 여러 개의 세부 지파로 분리되었다.

이처럼 삼국 시대에 기원하여 고려 시대에 여러 분파가 생기게 된 연안 이씨는 조선 시대에 들어 255명의 문과 급제자를 배출하였으며, 9명의 정승, 7명의 대제학, 7명의 청백리 등을 배출할 만큼 문중의 영향력이 대단하였다.

[입향 경위]

연안 이씨가 경기도 남양주시 지역에서 활동하게 된 것은 17세기에 대간(臺諫)과 부제학(副提學)을 역임하였던 이단상(李端相)[1628~1669]에서 비롯한다. 이단상연안 이씨 소부감판사공파(小府監判事公派) 이현려(李賢呂)의 후손으로 인조 때 정시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정랑과 대간 등의 관직을 역임하여 자신의 정론(正論)을 가감 없이 밝혔다. 이단상은 학문이 뛰어나 송시열·송준길·박세채·김수항 등과 교유하였으며 『대학집람(大學集覽)』·『사례비요(四禮備要)』 등의 명저를 남겼다. 이단상은 여러 차례에 걸쳐 조정에서 관직을 임명하였음에도 모두 사양하고, 경기도 양주군 동강(東岡)[현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 내곡리]에 은거하며 학문과 인재 양성에 힘썼다.

이단상의 아들 이희조(李喜朝)도 아버지와 함께 학문이 매우 뛰어났다. 이희조는 송시열의 문인으로 의금부도사, 공조좌랑을 거치고 진천현감이 되어 선정을 베풀었다. 또한 나라를 위하여 죽은 사람들의 사당을 세워 민심을 격려하였으며, 이후 대사헌과 이조참판 등을 역임하였다. 이희조 또한 32권 분량의 『지촌집(芝村集)』을 저술하였다.

이처럼 이단상이희조 부자는 지금의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 내곡리에 은거하여 학문을 수양하였고, 이를 기반으로 조선 시대 유학 발전에 기여하였다. 이때 이후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 내곡리 지역에는 이단상의 후손들이 거처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이는 이희조와 아우 이하조 등의 묘역이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에 있는 것을 통하여 확인할 수 있다. 다만 이단상의 묘소는 본래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에 있는 연안 이씨 6대조 이석형(李石亨)의 묘 근처에 있었으나 1997년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 부평리 마명(馬鳴)마을로 이장되었다. 이단상의 묘소 근처에는 아들인 이희조, 이하조 등 후손들의 묘가 있다.

[현황]

1978년 간행된 『양주군지』에 따르면 경기도 남양주시 지역에 거주하는 연안 이씨는 모두 86가구, 총 340여 명이며, 주로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와부읍에 거주하고 있었다. 2015년 실시한 인구 조사에 따르면 경기도 남양주시에 거주하는 연안 이씨는 총 2,341명이다.

[관련 유적]

경기도 남양주시의 연안 이씨와 관련된 대표적인 유적은 동관댁(東官宅)이다.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 내곡리 286에 있는 동관댁은 일명 ‘여경구 가옥’이라 불리며, 국가민속문화재로 지정될 정도로 조선 후기 건축 양식을 잘 간직하고 있다. 동관댁은 만석꾼의 후손이었던 연안 이씨 이덕승의 8대조가 1800년대에 지었다고 전해진다. 실제로 동관댁을 조사한 결과, 건축 양식이 18세기의 기법과 형상에 따라 만들어진 것으로 판정되기도 하였다. 동관댁은 안채와 사랑채·행랑채 등이 분리되었으며, 사랑채가 조금 앞으로 돌출되어 있어 대문으로 들어온 사람은 안채를 바로 보지 못하였다. 이는 반가, 즉 양반집의 대표적인 건축 양식이라 할 수 있다.

그 밖에도 연안 이씨와 관련하여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읍 신월리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 부평리 마명마을 및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 내곡리에는 연안 이씨의 묘역이 조성되어 있다. 마명마을에는 이단상의 묘역이 있는데, 묘역 제일 아래에는 이단상의 신도비가 있다. 신도비 또한 이단상의 묘를 이전할 때 함께 옮겨진 것으로, 비문은 1701년 9월 송시열이 직접 찬하고, 김창협이 글을 썼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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