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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900680
한자 巨淵
이칭/별칭 월초,월초거연
분야 종교/불교,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종교인
지역 경기도 남양주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김태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58년연표보기 - 거연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00년 - 거연 수국사 창건
활동 시기/일시 1906년 - 거연 불교연구회 설립
활동 시기/일시 1906년 - 겨연 명진학교 설립
활동 시기/일시 1907년 - 거연 수국사 현왕도 제작
활동 시기/일시 1913년 - 거연 봉선사 주지로 추대
활동 시기/일시 1927년 - 거연 봉선사에 홍법강원 설립
몰년 시기/일시 1934년연표보기 - 거연 사망
성격 승려
성별
대표 경력 봉선사 주지

[정의]

일제 강점기 경기도 남양주에서 활동한 승려.

[활동 사항]

거연(巨淵)[1858~1934] 성은 홍씨이고, 호는 월초(月初)이며, 1858년 서울특별시에서 태어났다. 15세에 경기도 양주군 진건면 송릉리[현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읍 송능리] 봉인사(奉印寺) 부도암(浮圖庵)의 승려 환진(喚眞)에게 득도하고, 32세까지 제방강원·선원에서 수행하였다.

거연이 불교계에서의 활동에 매진하기 시작할 무렵의 고종은 사직(社稷)을 보존하기 위하여 노력하는 과정에서 불교계의 힘을 얻고자 하였다. 고종은 1879년 삼전(三殿)의 안녕과 탄신을 위하여 금강산 건봉사(乾鳳寺)를 원당으로 정하고 일체 잡역을 혁파하였으며 1885년 4월에는 승려들의 입성 금지령을 해제하였다. 또한 동대문 밖에 있는 수사찰 원흥사(元興寺)가 1902년에 대법산이 되었고, 원흥사에 전국의 사찰을 관리하는 사사관리서(寺社管理署)가 설치되었는데, 이러한 조치는 왕실의 후원을 통하여 불교계의 지원을 받으려는 의도에서 비롯되었다.

그러한 시대적 맥락 속에서 거연 또한 경상북도 청도군의 운문사(雲門寺) 사리굴(舍利窟)에서 백일기도를 드려 당시 동궁(東宮)이었던 순종을 낫게 한 공덕을 인정받아 총 26만 8000냥의 시주를 얻어 1900년 경기도 고양군 은평면 갈현리[현 서울특별시 은평구 갈현동] 수국사(守國寺)의 불사를 완성하였다. 그러나 왕실 후원 및 사사관리서를 통한 관리 등 대한제국이 시행한 불교 관련 정책이 1904년 무위로 돌아가자, 거연은 일본 정토종의 지원을 받아 1906년 보담(寶潭)과 함께 불교연구회를 설립하였다. 그리고 동대문 밖 원흥사에 명진학교[현 동국대학교]를 열어 승려 교육에 힘썼다.

한편 왕실에서는 불보살의 위신력으로 가피(加被)를 입고자 하는 시도도 있었으며, 1907년 거연이 화주(化主)가 되어 제작 및 봉안한 수국사 현왕도(現王圖)는 그러한 노력의 결과물 중 하나였다. 수국사 현왕도는 강재희(姜在喜)가 대시주가 되어 ‘대황제폐하 성수만세(聖壽萬歲), 황태자전하 경수천세(慶壽千歲), 황태자비전하윤씨 보령천추(寶齡千秋), 황귀비전하엄씨 보수제년(寶壽齊年), 의친왕전하 보수무강(寶壽無疆), 의친왕비전하 보록장춘(寶籙長春), 영친왕전하 보소여해(寶笑如海)’ 등을 기원하기 위한 것이었다. 편수(片手)로 보암긍법(普庵肯法)과 두흠, 금어(金魚) 범화정운·운호재오·행언이 함께 그렸다. 규격은 가로 248.3㎝, 세로 150.8㎝로 현왕도로서는 매우 큰 규모에 속하고, 일반적인 현왕도와는 달리 가로로 긴 화폭이 특징이다.

그 뒤 거연은 1913년 경기도 양주군 진접면 부평리[현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 부평리]에 있는 봉선사(奉先寺) 주지로 추대되었다. 1927년에는 사재를 들여 개운사(開運寺) 강원(講院)의 설립에 힘썼으며, 1934년 봉선사에 홍법강원(弘法講院)을 설립하여 승려 운허(耘虛)를 강사로 삼아 승려 교육에 힘쓰다가 1934년 4월 봉선사에서 입적하였다.

[묘소]

1934년 거연이 입적한 후 부도가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 부평리 255 봉선사 경내 부도전에 마련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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