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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900817
한자 政治
영어공식명칭 Politics
분야 정치·경제·사회/정치·행정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지역 경기도 남양주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지현

[정의]

경기도 남양주시의 사회적 가치를 위해 권력을 획득하고 행사하며 지역 발전을 도모하는 총체적 활동.

[개설]

고대 사회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남양주 지역은 서울과 인접한 까닭에 수도 방어의 외곽 지대에 해당하는 군사적 요지였다. 경기도 남양주시가 속한 한강 유역은 특히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접점지였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남양주 지역은 수도 서울과 경기 서북부, 강원도, 경기 이남을 잇는 관문으로 교통과 상업이 발달한 지역이기도 하다. 남양주는 본래 양주군의 일부로 양주군 을선거구였으나, 1980년 4월 1일 양주군에서 분리되어 남양주군이 신설된 이래로 선거구에 변화가 생겼다. 남양주군은 양평군과 함께 선거구에 포함되었다가 1986년 단일 선거구로 선거가 이루어졌다.

[대통령 선거]

1948년 건국헌법은 대통령과 부통령을 국회에서 선출하도록 하였으므로 초대 대통령 선거는 무기명 비밀투표 방식으로 이루어진 간접선거였다. 건국헌법에 따라 1948년 5월 10일 국회의원 선거가 실시되었고 남양주 지역이 포함된 양주군 선거구에서 당선된 이진수가 대통령 선거에 참여하였다.

1952년에는 최초로 직접선거 방식을 통해 대통령과 부통령을 선출하였고 이승만이 제2대 대통령으로 재선하였다. 남양주시가 포함된 양주군은 95.7%의 높은 투표율을 보였다. 남양주를 비롯한 양주군에서는 이승만에 5만 3628표가 행사되었는데, 이승만의 유효 투표수는 약 524만여 표였다.

1980년에는 양주군에서 분리되어 남양주군이 신설되었다. 남양주군의 대통령선거인단은 구리읍, 미금읍, 와부읍, 별내면, 진접면, 진건면, 수동면, 화도면에서 사람을 뽑아 총 22명으로 진행되었다.

2022년 3월 9일 제20대 대통령 선거에서 남양주시의 유권자 수는 60만 8146명이었고, 45만 7081명이 투표에 참여하였다. 1번 후보 투표자가 23만 9179명, 2번 후보 투표자가 20만 3075명으로 투표수의 대부분[95.28%]을 차지하였다.

[국회의원 선거]

1947년 9월 17일 국제연합총회에서 유엔임시한국위원단을 한국에 파견한다는 내용의 결의안이 채택되었고 1948년 유엔임시한국위원단이 입국하였다. 북한 지역에서는 선거가 불가능하게 되었고 가능 지역인 남한에서 총선거를 실시하게 됨으로써 제헌국회의원 선거가 실시되었다.

당시 남양주 지역은 양주군 을선거구에 속하였는데 총 7명이 입후보하였고 그중 무소속 이진수가 양주군 을선거구 제헌국회의원에 선출되었다.

2년 간의 제헌의회의원 임기가 완료되고 1950년에 제2대 국회의원 선거가 실시되었는데, 이전에 미군정에 의해 집행되었던 제헌의회 선거와는 달리 우리 정부에 의하여 실행되었다는 의의가 있다.

1961년에는 5·16쿠데타로 인해 헌정이 일시 중단되고 군사정권이 수립되었다. 당시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처음으로 선거구를 지역구와 전국구로 구분하여 소선거구다수대표제와 비례대표제를 병용하여 채택하였는데, 남양주 지역이 속한 양주군은 의정부시와 함께 제4선거구에 포함되어 진행되었다. 이후 「선거법」이 개정되었고 1967년 새로운 「선거법」에 따라 국회의원 선거가 실시되었다.

1972년에는 선거구가 개편되어 남양주 지역이 포함된 양주군과 의정부시, 그리고 파주군이 묶여 제3선거구에 해당되었다. 총 5명이 입후보하였고 71.5%의 투표율을 보여 주며 박명근, 이진용 의원이 당선되었다. 현 남양주 지역을 포함하고 있던 양주군에서는 무소속의 이진용이 많은 지지를 받았다.

1980년 4월 1일 양주군에서 구리읍, 미급읍, 진접면, 진건면, 화도면, 수동면, 와부면, 별내면의 2읍 6면이 분리되어 남양주군으로 신설되었다. 이에 따라 선거구에 변화가 발생하였고 남양주군은 양평군과 함께 제8선거구에 포함되었다. 후보에는 총 6명이 입후보하였고 선거 결과 민주정의당 김영선 의원과 한국국민당 조병봉 의원이 당선되었다.

1988년에는 남양주군의 행정구역에 변화가 발생하였는데, 1986년 남양주군 소속이었던 구리읍이 시로 승격되고 분리되었다. 남양주군은 다소 축소되어 단일선거구로 선거가 치루어졌고 총 6명이 입후보하였으나, 무소속 이용곤이 등록 무효가 되어 5명의 후보가 경쟁하게 되었다. 선거 결과 민주정의당 이성호 의원이 당선되었다.

1989년 미금읍이 시로 승격되면서 남양주군으로부터 분리되자 남양주군은 인구수가 부족하게 되었고 이에 미금시와 남양주군을 단일선거구로 하여 선거를 치렀다. 이성호 의원이 재선되었다. 1995년에는 미금시와 남양주군이 통합되어 3읍 6면 6동의 현 행정체계를 갖추게 되었다.

17대 국회의원 총선을 앞두고 기존의 남양주시 선거구가 남양주시 화도읍, 수동면, 호평동, 평내동의 갑 선거구, 진접읍, 오남읍, 별내면, 별내동의 을 선거구로 나뉘었고, 20대 총선을 앞두고 남양주시 갑의 금곡동, 양정동, 와부읍, 조안면 지역과 을 선거구의 도농동, 지금동, 진건읍, 퇴계원면[현 퇴계원읍] 지역이 분구하여 병 선거구가 신설되었다.

[지방 자치 선거]

한국에서 근대적 지방자치제도는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1949년 7월 4일 「지방자치법」이 제정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지방자치법」은 자치단체의 종류를 서울특별시·도·시·읍·면 다섯 가지로 규정하였는데 지방의회는 직선으로, 시·읍·면장은 의회에서의 간접 선출로, 도지사와 서울시장은 대통령이 임명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5개월 만에 정부는 지방의회 구성을 연기하였고 1952년 지방의회 의원 선거 실시를 결정하여 4월 25일 시·읍·면의회 의원 선거와 5월 10일 도의회 의원 선거를 각각 실시하였다. 다만 이 지방선거는 전국적으로 실시되지 못하였다. 완전히 수복되지 않은 경기도와 강원도, 그리고 서울특별시를 제외한 나머지 지역에서만 실시되었으므로 당시 남양주 지역이 속해 있던 양주군에서는 지방의회 의원 선거가 실시되지 않거나 연기되었다.

1990년 지방자치제에 관한 전반적인 사항이 합의되면서 개정된 「지방자치법」에 의해 1991년 지방의회 의원 선거가 실시되었다. 1990년 4월 15일 초대 남양주군의회와 미금시의회가 개원하였다. 기초의회 의원 선거에서 남양주군은 총 10명 선출에 25명이, 미금시는 총 7명 선출에 20명이 등록하였다. 이어 광역의회 의원 선거에서는 남양주시에서 6명, 미금시에서 7명이 등록하였다.

1993년 문민정부가 출범하고 「지방자치법」이 개정되면서 광역·기초단체의 단체장과 의원 선거가 동시에 실시되었다.

1995년에 남양주군과 미금시가 남양주시로 통합되어 읍·면·동이 공존하는 도농 통합형 도시로 승격되었다. 1995년 7월 2일 남양주시의회가 개원하여 기초의회 의원 18명으로 출범하였다. 시장 선거는 미금권역에서 압도적인 지지를 받은 김영희가 남양주시 초대 민선시장에 당선되었다.

2022년 현재 제9대 남양주시의회가 개원하였고 의원은 총 21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참고문헌]
  • 『남양주시지』 5(남양주시지편찬위원회, 2000)
  • 남양주시의회(https://www.nyjc.go.kr)
  • 남양주시청(https://www.nyj.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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