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400096
한자 龍溪里
영어공식명칭 Yonggye-ri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상북도 성주군 용암면 용계리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경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14년 3월연표보기 - 경상북도 성주군 용두면 용계동 개설
변천 시기/일시 1934년 2월 1일연표보기 - 경상북도 성주군 용두면 용계동에서 경상북도 성주군 용암면 용계동으로 개편
변천 시기/일시 1988년 5월연표보기 - 경상북도 성주군 용암면 용계동에서 경상북도 성주군 용암면 용계리로 개편
성격 법정리
면적 5.11㎢
가구수 56가구
인구[남/여] 92명[남 55명/여 37명]

[정의]

경상북도 성주군 용암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용계(龍溪)의 어원(語源)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인근에 자리한 용두산봉(龍頭山峯)과 관련한 지명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용계리의 자연 마을로 배만[뱀원·사원(蛇院)]과 바깥배만[새마·신기(新基)·새마을]이 있다.

배만은 용암면 소재지에서 남동쪽 고령군 다산면으로 연결되는 지방도 제905호선을 따라 약 4.1㎞ 지점의 갈림길에서 북동쪽 도로를 따라 약 500m 지점에 있는 마을이다. 통일 신라 이후 1897년(고종 34) 역원제(驛院制)가 폐지될 때까지 성주에서 현풍으로 드나드는 관원들의 숙박지였던 뱀원이 있었는데, 여기에서 유래하여 마을 이름을 뱀원이라 하였으나 음이 변하여 ‘배만’으로, 또 원음(原音)인 사원(蛇院)으로도 부르게 되었다고 전한다. 조선 선조(宣祖) 때 창원에서 입향한 김춘인(金春仁)의 후손이 살고 있는 김해 김씨(金海金氏) 집성촌이다. 새마는 산지 골짜기 배만 마을에서 남쪽으로 지방도 제905호선 건너편 용암지 북쪽에 새롭게 자리 잡은 마을이다. 지금으로부터 70여 년 전 대홍수로 인하여 배만 뒷산이 무너질 위험에 처하자 산 밑에 살던 주민들이 이곳으로 옮겨 오면서 마을 이름을 본 마을인 배만에 대칭하여 바깥배만이라 부르기도 하고, 또 새로 생긴 마을이라 새마, 신기, 또는 새마을이라고도 부른다.

[형성 및 변천]

통일 신라 이후 두의곡방(豆衣谷坊)에 속하였다. 1895년(고종 32) 5월 관제 개혁 때 현재의 군 명칭인 성주군(星州郡)으로 확정하고 방(坊)을 면(面)으로 개편하였다. 1914년 3월 행정 구역 개편 때 용계동으로 하고 두릉면과 대동면(大同面)을 합한 용두면의 법정동으로 편제되었다. 1934년 2월 1일 용두면과 성암면을 합쳐서 용암면으로 하였다. 1988년 5월 조례 제1076호에 따라 동(洞)을 리(里)로 개정하여 용암면 용계리가 되었다.

[자연환경]

용계리는 남쪽에 고령군과 경계를 이루는 외곡산[304.7m]에서 북서쪽으로 이어지는 높이 약 300m 내외의 산지들로 이루어져 있고, 북쪽에는 150~200m 높이의 산지가 분포한다. 용계리에 분포하는 산지를 남동쪽에서 북서 방향으로 가로지르며 용계천이 흐르고, 용계천을 따라 길게 경작지로 이용하는 곡저 평야가 발달하였다. 남동쪽은 경상북도 고령군과 경계를 이루며 배만재 또는 사원현(蛇院峴)이라 불리는 고개가 있다.

[현황]

용계리용암면의 동남쪽에 자리하여 동부와 남부는 경상북도 고령군의 다산면과 성산면, 서부와 북부는 용암면 선송리와 접한다. 2021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5.11㎢이며, 용계리 1개 행정리에 56가구, 92명[남 55명, 여 37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문화 유적으로 김춘인(金春仁)의 사적(史蹟)을 기록한 김춘인 신도비(金春仁神道碑)와 김춘인을 향사하는 첨모재(瞻慕齋), 김성우(金聲宇)와 그 아들을 추모하는 청류재(廳流齋), 김성주(金聲周)와 그 아들을 추모하는 묵은재(黙隱齋), 김성한(金聲漢)을 추모하는 봉강재(鳳岡齋), 김원(金源)과 그 아들을 추모하는 용계재(龍溪齋) 등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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