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400162
한자 龍星里
영어공식명칭 Yongseong-ri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상북도 성주군 초전면 용성리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홍기옥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14년 3월연표보기 - 경상북도 성주군 초전면 용성동 개설
변천 시기/일시 1988년 5월연표보기 - 경상북도 성주군 초전면 용성동에서 경상북도 성주군 초전면 용성리로 개편
성격 법정리
면적 3.665㎢
가구수 204가구
인구[남/여] 372명[남 197명/여 175명]

[정의]

경상북도 성주군 초전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와룡(臥龍)의 ‘용(龍)’ 자와 성주(星州)의 ‘성(星)’ 자를 따서 용성(龍星)이라 이름하였다. 용성1리 자연 마을로 와룡, 운포(雲浦)가 있고, 용성2리 자연 마을로 뒷뫼[후산(後山)], 못안[지내(池內)]이 있다. 와룡은 마을의 입지가 용(龍)이 누워 있는 형상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운포는 마을이 형성될 당시에는 ‘새터’라 부르다가 금릉군 농소면[현 경상북도 김천시 농소면]에서 김도익(金道益)이 이주하고 운포라고 고쳐 불렀다. 윗마을이 와룡이므로 누운 용[臥龍]에게는 구름과 갯벌이 필요하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뒷뫼는 1777년(정조 1) 입향한 박재춘(朴在春)이 마을 위 산 모양이 인재(人材)를 양성할 수 있는 형세라고 하여 후산(後山)이라 이름하였다고 전한다. 못안은 뒷미못 안쪽에 있는 마을이라서 붙여진 이름이다.

[형성 및 변천]

1600년대에는 성주목 북산 소속이었다. 1895년(고종 32) 5월 관제 개혁 때 초전면에 편입되었다. 1914년 3월 행정 구역 개편 때 용성동으로 하고 초전면과 유곡면, 망성면의 일부를 합한 초전면의 법정동으로 편제하였다. 1952년 행정동을 용성1동과 용성2동으로 나누었다. 1988년 5월 조례 제1076호에 따라 동(洞)을 리(里)로 개정하여 초전면 용성리가 되었다.

[자연환경]

용성리는 와룡산(臥龍山)이 마을 전체를 감싸는 구릉지에 자리하고 있다. 구시천과 작은못천이 용성리를 관통하며, 주변에 농지가 펼쳐져 있다. 골짜기로는 종아지미골, 밤밭골, 성황당골, 오리밭골, 큰골이 있으며, 북산내지(北山內池), 와룡못[臥龍池], 뒷미못[후산지(後山池)], 작은못 등의 못이 있다. 마을 주변의 들에는 속리들, 운포들, 못밑들, 작은못들, 작은못밑들, 후산들 등이 있다.

[현황]

용성리초전면의 남단에 자리하여 북부와 동부는 초전면문덕리칠선리, 성주읍 금산리, 남부는 성주읍백전리용산리, 서부는 성주군 벽진면 가암리와 접한다. 2021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3.665㎢이며, 용성1리와 용성2리 2개 행정리에 204가구, 372명[남 197명, 여 175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지방도 제905호선이 남북으로 지나가며 들판이 넓게 펼쳐져 있어 논농사가 주로 이루어진다. 자연 마을인 와룡은 마을 서북쪽의 와룡산이 완만한 구릉에 둘러싸여 동향으로 자리하고 있다. 운포는 형세가 좋은 삼면의 산이 병풍처럼 감싸고 있는데 약 200년 전에 형성된 마을이다. 뒷뫼는 초전면의 최남단 마을로 생활권은 성주읍이라 할 수 있다.

운포 마을 뒤 산기슭 아래에 김백찬(金百燦)을 추모하기 위하여 1934년 후손들이 건립한 경서재(景棲齋)가 있다. 뒷미지 공원은 성주의 명소로 연꽃이 유명하다. 나무 데크를 설치하여 못 중앙까지 걸어 들어갈 수 있는 장점이 있어 사진작가들의 사랑을 받는 명소이자 매년 2만여 명의 관광객이 찾는 관광지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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