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룡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400809
한자 呂又龍
영어공식명칭 Yeo Uryong
이칭/별칭 경원(敬元),여춘연(呂春淵)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북도 성주군
시대 근대/개항기,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집필자 김경남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98년 5월 27일연표보기 - 여우룡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19년 4월 2일 - 여우룡 성주읍 장터 만세 시위 운동과 벽진면 해평동 만세 시위를 주도하다 붙잡힘
활동 시기/일시 1919년 4월 28일 - 여우룡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8월을 선고받음
몰년 시기/일시 1960년 4월 22일연표보기 - 여우룡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92년연표보기 - 여우룡 대통령 표창 추서
출생지 여우룡 출생지 - 경상북도 성주군 벽진면 수촌리 지도보기
거주|이주지 여우룡 거주지 - 경상북도 성주군 벽진면 벽봉로 16[수촌리 876-1]지도보기
활동지 여우룡 활동지 - 경상북도 성주군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정의]

일제 강점기 성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가계]

본관은 성산(星山). 자는 경원(敬元), 이명은 여춘연(呂春淵)이다.

[활동 사항]

여우룡(呂又龍)[1898~1960]은 1898년 5월 27일 경상북도 성주군 벽진면 해평동[현 벽진면 수촌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2일 성주읍 장날 만세 시위 운동과 당일 밤 11시경 벽진면 해평동의 독립 만세 운동을 주동하였다. 1919년 4월 2일 성주읍 장날에는 이기정(李基定) 등이 3,000여 명의 시위 군중과 함께 독립 만세 운동에 참가하였다. 시위를 진압하기 위하여 성주경찰서 일경들이 시위 군중에게 총격을 가하여 사상자가 속출하였다.

이에 마을로 돌아온 여우룡·여왕연(呂旺淵) 등은 일제의 야만적인 발포 소식을 마을 사람들에게 전달하였다. 1919년 4월 2일 밤 11시경 여우룡을 비롯하여 여홍연(呂弘淵)·여왕연·여호진(呂鎬鎭)·여문회(呂文會)·도무환(都武煥) 등이 마을 사람들과 함께 시위에서 돌아오던 사람들을 재규합하여, 경상북도 성주군 벽진면 해평동에서 다시 독립 만세 운동을 전개하였다.

이때 일경에게 검거되어, 4월 28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여왕연과 함께 징역 8월형을 선고받았다. 이후 5월 20일 대구복심법원에 공소하였으나 기각되었고, 다시 6월 26일 고등법원에서도 기각되어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해방 후 15년이 지난 1960년 4월 22일에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1992년 대통령 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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