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두1리 새출 산제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401189
한자 鳳頭一里-山祭
영어공식명칭 Bongdu1ri Saechul Sanje
분야 생활·민속/민속,문화유산/무형 유산
유형 의례/제
지역 경상북도 성주군 금수면 봉두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여수경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중단 시기/일시 일제 강점기 - 봉두1리 새출 산제 중단
중단 시기/일시 1990년대 - 봉두1리 새출 산제 성주 댐 건설로 당목이 수몰되면서 중단
중단 시기/일시 2000년대 - 봉두1리 새출 산제 마을 인구 감소와 노령화 등으로 중단
재개 시기/일시 1970년대 - 봉두1리 새출 산제 마을의 젊은이들과 출향인들이 사고사하여 석장승 1기를 세우고 재개
재개 시기/일시 1991년 - 봉두1리 새출 산제 마을 입구 석장승 2기를 세우고 재개
의례 장소 석장승 - 경상북도 성주군 금수면 봉두1리 마을 입구 도로변지도보기
성격 민간 신앙|동제
의례 시기/일시 음력 정월 4일 0시
신당/신체 석장승

[정의]

경상북도 성주군 금수면 봉두리 새출 마을에서 지내던 마을 제사.

[개설]

봉두1리 새출 산제경상북도 성주군 금수면 봉두리 새출 마을에서 마을의 안녕과 건강을 위하여 음력 정월 4일 0시 도로변 장승에 지내던 마을 제사이다.

[연원 및 변천]

봉두1리 새출 산제에 대한 정확한 연원은 알 수 없으며, 마을 입구에 있는 당목에 제를 올렸다. 당목은 산신이라고 불렀으며 호랑이를 신격화하였다. 동제는 일제 강점기 중단되었지만, 1970년경 마을에 일어난 ‘소년 죽음’으로 재개하게 된다. 소년 죽음은 마을의 젊은이와 출향한 젊은이들이 사고나 병으로 죽는 사건을 칭하는 것으로 당시 경상북도 김천의 풍수지리가는 마을 입구에 석장승을 세울 것을 권하였다. 당시 주민들은 농로 공사에서 확보한 화강석 1기에 앞뒤로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을 각석하여 마을 입구에 세웠으며, 더불어 마을에서는 젊은 초상이 사라지면서 안정을 찾게 되었다.

이후 1992년 성주 댐 조성으로 인해 경상북도 성주군 금수면 봉두리 자연 마을 바깥 새출과 함께 마을의 입구가 수몰되면서 중단되었다. 하지만 이듬해 마을 입구에 석장승 2기를 세우면서 재개되었지만, 2000년대 이후 댐 조성과 함께 사람들이 떠나면서 현재는 중단된 상태이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출향인의 요청으로 마을 주민들이 동제 재개에 대해 논의 중이다.

[신당/신체의 형태]

봉두1리 새출 산제 제당은 1991년 11월에 세워진 석장승 2기이다. 석장승 전면에는 ‘동대장군(東大將軍)’과 ‘서대장군(西大將軍)’이라 각각 각석되어 있다. 경상북도 성주군 금수면 봉두리 새출 마을의 과거 신당은 마을 뒷산에 있었다고 전해지는 동제 바위였다.

[절차]

동제 초기에는 제일 이듬해 섣달 보름 동회를 거쳐 제관 1명을 선출하였지만, 2000년대 중단되기 전까지는 이장이 전담하여 개최하였다. 제관의 선출 기준은 제관의 생기복덕과 마을의 궁합을 고려한다. 제관으로 선출된 자는 3~4일 정도 금기를 실천하는데, 아침저녁으로 목욕함과 동시에 육고기를 먹지 않고 험한 것을 눈에 담지 않는다. 제일이 되면 석장승 주변으로 황토를 뿌리고 금줄을 두른다. 이 과정이 마무리가 되면 제가 끝날 때까지 동네 밖으로 나갈 수 없고, 외부인도 들어올 수 없다.

과거 동제를 크게 지낼 때에는 돼지 한 마리를 잡기도 하였지만, 1990년대 이후에는 돼지고기와 백떡, 밥과 국, 삼실과, 삼채소 등으로 제물이 간소화되었다. 제일 밤 11시경이 되면 제물을 준비한 제관 부부가 함께 장승으로 가서 진설한 뒤 제를 올릴 준비를 한다. 이때 새마을 지도자와 청년회장 등이 동참하기도 한다. 0시가 되면 동제를 올린다. 제의 절차는 절과 술을 올리는 유교식 기제사와 같다. 마지막 소지를 올리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현황]

봉두1리 새출 산제는 일제 강점기에 중단된 이후 1970년대 마을 우환으로 재개되었다. 이후 1990년대 함께 동제를 지냈던 바깥 새출 마을이 수몰되면서 중단되었고, 이후 석장승을 세운 뒤 재개되었다. 하지만 2000년대 마을의 고령화와 인구 감소 등으로 인하여 다시 중단되었다. 현재는 석장승 2기만 성주 댐 도로변에 있다. 석장승 주변으로는 개인적인 비손을 위하여 술을 올린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마을 주민과 출향인들은 지속적으로 동제를 재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중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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