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송맹경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103206
한자 宋孟璟
이칭/별칭 백규(伯圭)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기도 성남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윤종준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미상
몰년 시기/일시 미상
묘소|단소 송맹경 묘 - 충청남도 서천군 기산면 광암리
대표 관직 의주목사

[정의]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하대원동에 묘가 있었던 조선 중기의 관리.

[개설]

송맹경(宋孟璟)은 의주목사로 재임 중 노모인 광주 이씨가 체직(遞職)시켜달라는 건의가 받아 들여지지 않을 만큼 중요한 직책을 감당한 인물이다.

[가계]

송맹경의 본관은 여산(礪山)이고, 자는 백규(伯圭)이다. 할아버지는 사복시정(司僕寺正) 송윤은(宋胤殷)이며, 아버지는 정주목사(定州牧使)를 지낸 증 병조참판(兵曹參判) 송수(宋壽)이다. 동생인 송말경(宋末璟)의 손자가 송언신(宋言愼)이다.

[활동 사항]

송맹경은 무과(武科)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거쳐 장흥부사(長興府使)로 있다가 1538년 길주목사(吉州牧使)로 나가 백성의 구황(救荒)에 힘썼다. 이듬해 병조(兵曹)에서 뽑는 장수(將帥)에 합당한 인물로 뽑혔으며 1541년 제포첨절제사(薺浦僉節制使)를 거쳐 제포만호(薺浦萬戶)가 되었다. 제포만호로 근무할 때 대마도와의 외교관계에도 관여하였다. 1544년 경상도 수군절도사로 나가 근무에 충실했고, 1548년 의주목사(義州牧使)로 있을 때 가정을 돌보지 않고 임무에만 충실하니 공의 어머니인 광주 이씨(廣州李氏)가 생전에 자신이 이미 늙고 병들어서 아들의 얼굴이나 볼 수 있도록 체직시켜 달라고 임금께 상언(上言)을 하였는데, 우의정 정순붕이 의주(義州)는 나라의 서쪽을 지키는 중요한 관문이어서 변장(邊將)을 맡길 만한 사람이 많지가 않고, 적임자가 없다고 하여 이루어지지 못했다. 1551년 병사(兵使)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오위도총부(五衛都摠府) 부총관(副總管)을 역임하고 75세에 사망하였다.

[묘소]

송맹경의 묘는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하대원동(下大院洞)에 있었으나, 광주대단지 개발로 1970년 8월 충청남도 서천군 기산면 광암리로 후손들이 이장하였다.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